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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요즘책방. [올바르게 풀어쓴 백범일지]. 김구. 배경식 편역. 너머북스.2008

혜성처럼 2021. 12. 1. 23:13

 

 

세상에나 민족의 이  위인을 이제사 만나 뵙다니 !!

어린시절 그 싸구려 위인전으로라도 읽어본적 없었던게 죄송해졌다. 

백범일지는 워낙 유명하니까 도서관에 여러버전이 있지만

너머북스 이 책이 손에 들어온 건 그런 중에 천만 다행이랄까

1947년 김구 스스로가 출간한 초간본 이후 62년만에 나온 이 버전이

진정 그간의 사료 연구의 성과를 망라한 최고 최적의 편역본이라는 

역자의 자부심 가득한 서문을 일고 나니

한편으로는 차라리 다행이었지 않나 변명해보는 거다 ㅎ

 

인간 백범의 재발견을 위한 첫 탐사 

 

일종의 역자 서문일텐데 꽤 길어서 놀랐다.

그만큼 많고 많은 기왕의 백범일지들과의 차별점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으리라. 

거기에 얽힌 편역자의 수고의 가치가 또한 이 책의 가치일테니까!

 

우선은 그렇게 유명한 백범 김구 선생이고 백범일지란 책일진대

실상 백범일지는 물론이거니와 백범 선생에 대해 제대로 아는이가 없다는 개탄스러운 현실.

나도 정말 찔렸다. 

백범일지가 일지志가 그 일지日誌 가 아니란다 ㅎㅎㅎㅎㅎ

아놔,,,

백범이시여 이 무식한 후대를 용서하소서

 

백범은 상해 임정 시절 언제 죽을 지 모르는 독립운동가로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들을 위해 

유언처럼 쓴 글이라고 한다. 

때문에 이는 글쓴이 백범 김구의 회고록이며 자서전이기도 하고 후대를 위한 평론집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자랑스런 독립운동역사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니 그의 행적과 모든 말이 그대로 역사다.

그래서 이 책은 자체로 역사서이기도 하다. 

 

과연 책의 몰입감은 엄청나다. 

백범 김구가 어린시절 감당못할 말썽을 저질렀던 어린 시절에서부터 공부에 뜻을 두고 열심히 매달렸던 이야기. 

운명처럼 동학을 만나 새 세상을 꿈꾸게 되는 과정 한 장 한장이 감칠맛나게 재미지고 흥미진진하다.

김구가 이렇게 성장하는 동안 김 구 주변의 부모님들과 여러 인물들의 모습도 어우러져 

한편의 대하드라마를 보는 기분도 들었다. 

 

김구의 일생을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들여다 볼수 있는 데에는 매 장 끝마다 더 깊이 읽기 코너로 편역자의 해석과 추가 정보가 기록되어있는 덕도 크다. 

사진기록도 충실하고 . 

저자의 말대로 최고의 백범김구 편역서다!

 

상권

 

백범일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

늘 죽음을  염두해두어야 하는 독립투사가  아들들에게 남긴 유서라 할 수 있는 상권

윤봉길 의사의거 이후 중국 내 임시정부의상태가 위태로운 사정을 만나 다시한번 신변과 독립운동 위업을 정리하는 또 한편의  유서인 하권

 

상권은 그래서 총 8개의 장에 김구의 출생부터 운명의땅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를 세우기까지의과정이담겨있다.

그 시작을 여는
인과 신 두 아들에게' 는
아비의 파란만장한 기록과 삶의여정을  고국의 두 아들에게 전하며 책 전체의 서문같은 것. 


● 내가 진심으로.바라는 바는 너희 또한 대한민국의 한 국민이니,

   동서고금의 수많은 위인중에서 가장 존경할 만한 이를 골라서

    스승으로  섬기라는 것이다.(p34)

 


1.상놈의 한을 품고 자란 어린 시절

김구의 어린 시절 이름은 창수.
역적의방계후손으로 동네 유지양반들로부터 괄시를 받았던 집안 내력
한편으로는 경주김씨후손들이 제법 집성촌 비스무리 대가를 이루고 살았던 것도 알수 있겠다.
어린시절에 피우는말썽수준이 거의범죄급이었다는 놀라움ㅎ
그런 어린 김구에게 늘 든든한 방패막이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훗날 김구가 자식들에게와 국민들에게 보인 모습이 아니었을까
가난속에서도 글공부에도전했던명민한 머리를가진사람이었나 보다.
비록 과거에는 실패했지만
이를 계기로기울어져가는나라꼴의 일면을 보기도한다.

 


2.아기접주의 꿈과 좌절


과거에도실패하고 딴엔 관상과풍수지리도 익혀보는 등
어린 김구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것인가에대해 고민이치열했던 모습을알수 있다.
그러다가 동학을.만난다.
일신의 운명과 나라에 대해서관심이많았던그에게 동학사상은 빛처럼 다가왔으리라.
김구는 직접동학2대교주를 만나
접주첩지도직접받는 영광을얻는다.
그의 동학활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동학의 비극속에서 김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것은 
어린 김구를 아끼는 많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동학진압애 혁혁한 공을세운 관군중에 안태훈과 김구의 인연은
극적이기 까지하다.
안태훈이 바로안중근의 아버지
김구는 안태훈 덕분에 목숨도보전하고 가솔들도 안돈시킬수 있었다.
안태훈과의 만남은 김구를 계속운명으로 이끈다.
안태훈의 가객중 고능선과 만났고
이를 통해 김형진과 청국기행에나서게 된것이다.
비록 기억의.왜곡이 있긴 해도
편역자 배경식의 꼼꼼한 부연설명이 있어

김구의 행적을 보는데는 부족할 게없다.

 

 

 


이렇게 적재적소에 딱 알맞은 사진자료와 보충사료를 덧붙혀준다.
참 정성가득한 편집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요 

고민은 즐거움의 뿌리이니, 

자네는 너무 상심말게"

( p103. 고능선)

 

3.청국 시찰과 단발 의병

 

 안태훈 집의 가객생활중에 만난 또하나의 인연  김형진.

김구와 함께 청나라를 여행한 기록을

「노정약기」란 책으로 남겼다.

3장은 김형진과 함께한 청국 여행의 극적인 이야기와 더불어 김구가 일생의 스승이라 추앙했던 고능선의 손녀사위가 되는 데 불발된 안타까운 개인사까지 다채롭게 실려있다.

청국 무관과 의형제를 맺었고

서간도 일대 의병세력들의 강계성 침공작전에 함께 하기도 한다.

김구는 집에 귀환했다가 다시 청국 여행을 시도한다 

 

4.치하포 사건과 법정 투쟁

 

백범일지 분량은 여전한 초반부이지만서도 이 4장만큼 박진감 넘치고 무협지같은 스토리가 또 나올까 싶을 만큼

너무도 흥분되고 짜릿한 장이었다.

 

청국여행을 시도했다가 을미왜변소식을 들은 김구는 여행을 포기하고 귀환하게 된다.

나라 사정이 급박하니 조국을 먼저 돌아보려는 충정이었다.

 

영웅의 무협지와 같다고 하는 장면의 시작은 차하포 대동강 하류에서의 표류사건이다.

강의 얼음 덩어리들과 서해바다의 조수물에 휘둘리는 나룻배승객들 중에서 리더쉽을발휘하여 얼음강을 헤치고 무사정박한 일.

그리고 그곳 객점에서 조선인으로 위장한 일본인 한명을 국모시해세력으로 오해하고 살해한다.

살해 전후의모든 과정은 흡사 고대 위인전의기이한 영웅호걸 같았다.

 

이윽고 김구 곧 김창수란 이름이 황해도와 인천 그리고 경성의 궁궐에까지 널리 전해졌는데

관할 재판부서의 조선인 관료나 감옥 내 간수 죄수를 넘어서 인천항 일대 일약 스타로 군림한 모든 광경은 흥미진진함을 넘어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로다!

 

재판정에서 조선인 관료 앞에서나 일본인앞에서 기세 당당한 김구.

아들의 옥바라지를 위해헌신하던 부모는

온 인천주민이 인정하는 영웅아들을 둔 덕에 주위로부터 함께 칭찬과 보살핌을 받기까지하고.

 

김구에 감화된 김주경이란 인물도 감동이다.

그 많던 가산을 탈탈 털어 여덟달 가까이 한양에서 김구 구명운동을 하더니

재산이 떨어지자 김구와 아쉬운 이별을 하고선 또 여러 기행들을 하고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김구는

주위 모두에게서 기대된 그 지략과 담대함으로 마침내 인천 감옥소를 탈출한다.

역자의 해설에 따르면 한국근대 최초의탈옥사건 주인공이라고 ㅎ

 

5.방랑과 모색의 시기

 

 

인천 감옥소 탈옥 후 2년 가까운 기간동안 김구의 행적이 나온다.

이 기간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전국 곳곳 감방 동기들을 만난 일

두번째는 충남 마곡사 승려의 신분으로 부모님과 재회한 일.

세째는 김주경 등의 의인을 통해 훗날 김구를 애국지사로 양성키로 한 양반 의적들의 만남이다.

 

김구는 어딜 가나 의인으로서 존경받았다.

그의 화려한 전적을 자랑하지 않았어도

그의 모든 행동거지에서 

진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호인의 품성이 흘러나왔던가보다.

실제로 김구는 매사에 진실하고 겸손했으며 충직하게 행동했다.

 

우리 역사에서 상해임시정부는 큰 의미를 지닌다.

보통 그정도로 외교권과 주권을 강탈당하고 

나라에 일본군이 설쳐댔으면 이미 나라는 끝장난 거라 볼 법도 했다.

그러나 임정의 존재와 그 활약은 서구제국주의자들 안에서도 조선의 위치에 대해 함부로 여기지 못할 근거가 되어주었다.

무엇보다 조선 독립후 조선이 엄연한 주권국가로 설 수 있는 보다 확실한 법적 근거가 되어주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를 무시한 미군정 세력이다!

소련도 해방전 최대 독립운동세력 연안파를 끝끝내 숙청했지.

 

암튼 그런 대단한  임시정부의 초대대통령이자 마지막 대통령이 김구시다!

백범 일지 중에 이  5장을 읽으며

그가 과연 한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감이로구나 인정하게 되었다.

+

그의  박진감 넘치는 인천감옥소 이야기 4장까지도 그런 생각 안들었었는데 말이다.

 

 

6.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

 

방랑과 모색의 시기는 끝났다.

백범 김구는 이제 황해도를 대표하는 민족인사의 위치에 올라선다.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첫아이를 병에 잃는 가족사도 있다.

 

이 시기 기록은 김구 개인사였음에도 우리 민족의 격변의 역사 그대로다.

 

우선 김구와 안창호 그리고 안중근과의 인연.

우선 안창호와는 사돈(정확히는 안창호의 매제)가 될 뻔하다 어긋난다.

황해도 일대를 주름잡는 명망있는 교육운동가 김구는 어느날엔가는 일본경찰에 체포구금된다.

안태훈 진사의 아들 안중근이 러시아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일로 김구 역시 신문을 받은 것이다.

김구는 또 이재명 의사와도 인연이 있다.

매국노 이완용 살해를 기도하다 실패하고 순직한 열사.

그러나 처음엔 그 의도를 폄하하고

권총이란 무기를 압수하고 그를 만류했었다고 한다.

 

김구의 교육운동 행적에 무수한 사립학교의 건립현황을 보게된다.

대학졸업무렵에 관심갖던 주제가 사립대학건립운동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 시기 사립학교들은 이렇듯

우후죽순처럼 교육으로 나라를 다시 세워보고자했던 순수한 애국애족의 의지였거늘!

 

비록 기독교가 큰 역할을 했지만 ( 당시 한국 기독교의 특이점!) 

양반 세력들의 역할도 무시못함을 본다.

힘있는 자는 힘으로

돈있는자는 돈으로

지식있는 자는 지식으로

신앙있는 자는 신앙으로. 

 

말그대로 거족적인 민족운동이었다!!!

 

7 서대문 감옥의 국사범 강도

 

김구의 행보는 계속 국사책의 생생한 현장이다 .

 

● 나는 나라 없는 설움에 가슴이 아팠다 (p 329)

● 나라가 망하기 전에 국내외를 망라한 정치적 비밀결사가 조직되었으니 , 곧 신민회이다. 

 

이 장에서는  총 세 분야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김구가 일본 경찰에 의해 다시 체포된 일. 

재판을 받고 서대문 감옥에까지 갇히게 된 과정

그리고 감옥에서 새로운 인생교육을 받으며 다시금 일취월장 성장하는 민족의 선각자 김구의 모습이다. 

 

우리는 신민회 관련 두 개의 일제 조작 사건 이름을 알고 있다. 

안악사건, 그리고 105인 사건. 

여기 연루(?!) 된 사람들은 이후 백범일지에서 계속 언급되는 이름들이니 미리 잘 새겨둬야하리. 

안창호, 양기탁, 안태국, 이승훈, 전덕기, 이동녕, 주진수, 이갑, 이종호, 최공확 김홍량.

이승훈 선생의 이름이 반갑다 ㅎ

남강 이승훈. 

중학교 때 이분 전기 읽고 감상문 숙제를 냈더랬다 ㅎ

숙제의 힘은 놀라워라 ㅎ

그리고 안명근이다. 

안태국은 이 안명근 그리고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아무튼 5년의 수감생활동안 선비같이 대쪽만있던 김창수는 담대함까지 얻으며 이름을 김구로 바꾼다. 

백범이 그 白虎이 아니라 이 白凡인줄 이번에사 알았다 ㅎ

 

● 백정이나 범부들이라도 애국심이 지금의 나 정도는 되어야 완전한 독립국민이 될 수 있겠다는 간절한 소망 때문이었다. (p 410)

 

 

8- 고국탈출

 

여기까지가 상권의 마지막이다.
원래15년형을 선고받았는데 일황 부부의 연달은 사망으로 사면을 받아 1/3로 줄어든 형기.
서대문형무소에서 보낸 3년후 이제 남은 2년만 무사히 잘 보내면 출소한다.
그러나 김창수로  탈옥해나온 인천 감옥소로 다시 이감되는 김구의 기막힌 상황.
거기서 유일하게 김창수를 알아본 동료재소자의 만남 또한 김구 인생 역정에 장난같은 극적인 순간 중의 하나다.
감격의 출소와 3•1운동의 발발.
나는 늘 궁금했던 게 (그럼서 알아볼 성의가 없었다니 ^^;;;)
3•1 운동의 성과가 상해임시정부 성립으로 이어지는 그 세밀한 과정이었다.
분명 태화관에서 성명서를 읽은 민족대표33인이란 사람들은 바로 경찰에 투항했고
일재로선 당시 불령선인들에 대해 요주의 해오고 있던 정황은 알고 있어서다.
 
그러나 신간회 소속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해외에서의 독립운동을 준비해왔었고 그것이 3•1운동이 기폭제가 되어 거족적인 핵심역량이 상해에 집결한 계기가 되었음을

이번 8장을 통해 알수 있었다.

 

조선 출국전까지의 짧은 출소 생활동안 김구는 다시한번 민족지도라로서의 역량을 다지는 기회로 삼는다.

동산평농장에서 마름으로 부임하는데

도박과 비위로 범벅된 동산평 마을 민심을 다지고 질서와 화합의  기틀을 다져놓으며 마을 분위기를 일신시킨다.

흡사 일제판 새마을운동이라 할 수 있을듯.

도박과 무기력으로 침체된 농촌마을에 공평과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맞보게 해준 민족민중지도자 김구의 면모를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김구는  곧바로 치밀하게 조선을 뜰 준비를 한다.

그만큼 구국운동에 대해 평소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대처였으리라.

그리고 우리가 알다시피 김구의 임정시절 그 시작은 미약했다고 할 수 있다.

나이 마흔의 임정 경무국장.

그니까 오늘날로 치면 장관도 , 국회의원도 아니고 그저 서울경찰청장정도?

하권에선 이제 김구의 창대한 독립운동사가 펼쳐지리라

 

 

하권

 

 

하권을 쓰면서

하권집필시기를 소개한다.
임시정부가 여러번 옮겨졌는데  중일전쟁기에 마련한 중경 청사에서 자신이 직접 겪은 항일투쟁의 기록을 남기고자하는 마음에쓴 글이다.
백범의 나이 67세 때이다.
 
 

9_임시정부에 운명을 맡기다

 

임시정부와 김구.

김구와 임시정부.

이 둘은 떼어놓을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우리 민족독립운동의 한몸같은 상징이자 구심.

 

찻 시작은 경무국장부터
국무령 혹은 주석으로 마친 임정활동.
 
경무국장 활동기를 보면 상해임시정부가 처한 국제정치상황이얼마나 긴박한지 제대로실감한다.
프랑스 외교령 부지안에 마련한 임정청사.
거기서 꼼짝을 못하는 임정간부들.
안그랬다간 호시탐탐 임정 요인들을 노리는 일제 끄나풀과 밀정들의 밥이 될테니깐.
그러함에도 밀정을 처단하고 동지들을 지켜내는데 용의주도한 백범의 활약.
아마도 백범이 그간에 인천과 서대문감옥이라는 인간백화점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은 효과이지않을까싶다.
 
보안업무만 아니라 외교와 동포사업에서도 
백범의 활약상은 놀랍다.
비록 임정의 초반 모습은 프랑스 공관원들이나 중국 인사들의 동정적 지원에 그치지만
그나마도 가능했던 것은 김구가 임정과 더불어 접촉하는 외국 인사들에게 신의를 샀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백범은 (아마 국무령에 오르고 난 이후부터인듯한데)
해외동포들에게 꾸준히 임정의 활동내역을 편지로 보고 한다.
이는 임정의 위상에 대한 지지와 실질적 지원으로 이어진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임정은 명실상부한 해외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다.
그것이 가능하도록 상해에서 버텨준 백범.
 
그리고 임정의 상황이 반전된다.
그 사건을 모르면 대한민국 사람 아니다 ㅎ
 
이 9장에서 특기할 점은
3•1 운동 당시의 민족 정서와 분위기를 증거한 일.
을미왜변이 나고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또 경술국치가 일어났는데도 사실 민간에서는 나라 잃은 실감을 못했더라고.
그랬을거 같다.
울 나라가 왜놈에게서나 떼놈에게서나 당하고 살아온 부지기 세월.
또 뭔 시련이 있나보다.
이럴 때 없는 놈, 아랫것들이 더 고생이지
뭐 이런 분위기였으리라.
 
그러나 감히 왜놈이 우리 나랏님을 독살하고
칼찬 군인들이 떼로 돌아다니면서 공포를 조성하는 분위기에서 제대로 나라 잃은 실감을 하였으리라.
저그 왜놈들과는 다른 우리 민족끼리의 일에 감놔라 배놔라 간섭도 모자라 실제로 총질칼질 해대는 왜경과 일군의 행패를 보며,
거기 소위 배웠다는 그리고 한자리 했었다는 양반님네들도 줄줄이 잡혀가는 분위기 흉흉함에 
일반백성들도 체감 제대로 했으리라.
 
오늘날 
일본이 다시 쳐들어온다면,
일본이고 중국이고
오늘의 내 자유, 내 일상을 망가뜨리는 놈들이 쳐들어온다면
나는 백범처럼
여기 나온 그 무수한 의인들처럼 일어설 수 있을까
 
 
● 이 무렵.내가 연구하여 실행한 사무가 하나 있으니, 바로 편지 정책이다.
당시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정부의 사업발전은 고사하고 이름마저 보전할 길이 막막했다.
하지만 임시정부가 해외에 있는만큼 임시정부의 운명은 해외동포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p489)

 

● 미주, 하와이 , 멕시코, 쿠바의 만여명의동포 (p491)
 

● 나는 그때부터 우리 민족에게 생색될 일이 무엇이며, 또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를 연구했다.(p493)

 
 
 

10_살신성인, 이봉창과 윤봉길 의거

 
 

 

백범일지에서 김구의 인천 감옥소 활약만큼이나 전율이 일게 만든 장면들이다.

우리 민족 항일투쟁의 역사에 물론 아름다운 명장면 많다.

봉오동전투, 청산리대첩 등등.

 

그리고 여기 나온 이봉창, 윤봉기 의거의 그 의의에 대하여 또 말해도 입 안아프고 백번 천번 반복해 마땅하다.

 

내가 여기 덧붙히고 싶은 또 하나의 의의라면

우리 민족의 항거와 투쟁이 비단 우리 민족내부와 일제 당사자에게만 경각심을 주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

 

봉오동전투와 청산리 전투 때부터 이미 중국은 당시 일본에 대한 패배주의를 떨치고 다시금 항일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왜아니 그러겠는가

중국 입장에서 조선은 품어주고 보듬어줘야할 동생국가로 무시해왔는데

자기네는 연전연패, 청나라말기부터 일본에 내내 끌려다녔는데

이 조선 빨치산들은 대단한 무기도 없고 국가적 지원도 없는데 기세등등하던 일본군에게 엄청난 타격을 가했다는 사실에 얼마나놀랍고 자존심 상했겠는가!

 

그러다 일본이 살기등등해서 힘없는 조선인부락에다 치졸한 보복학살을 감행하고(간도 참변)

독립군 섬멸과 회유도 극에 달하니

쪼그라드는 임정 살림을 보며 다시금 회의주의가 고개를 들무렵,

이제 군대가 못하니까 

일 개인이 몸을 던져 일제에 대항을 계속한다.

그것도 일본 군국주의 핵심 세력 코앞에서 말이다!

군대야 군대로 막는다치지만

미꾸라지처럼 틈바구니로 끼어드는 자살테러를 어찌 막을 수 있나

조선민족이 그리고 그안에서 임정이 이렇듯 끈질기게 악발이처럼 대일항전을 계속하는모습을 직관한 중국은 오죽했으면

이봉창의사의 거사 불발을'불행히도 '실패했다고 언론에 실었을까 ㅋ

늘 대국이라는 거만함에 그 자신감에 차있던 중국으로선 자신의 속국이라고 얕잡아봤던 이웃 조선에게 큰 코 다쳤을거다 ㅎ

 

그나저나 일본으로서는 더더욱 간담이 서늘했을거고

일본입장에선 이제 김구와 임정이 얼마나 눈엣가시였을까

 

아 이봉창의사시여

윤봉길 의사시여

 

● 동경사건을 본 청년들은 김구의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무슨 연고가 있을 줄로 생각한 모양이었다(p506)

 

 

 

 

11_피신과 유랑의 세월

 

이봉창 윤봉길 의상이 의거장면도 극적이었겠으나 

일단 우리는 김구의 사후 대처의 긴박한 장면 위주로 보게 된다.

 

충격의 홍구 의거!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국무령의 긴급 성명.

이봉창과 윤봉길의 거사는 임정의 작품이었다!

 

거사 성공과 동시에 임정 요인들은 대피를 한다.

그리고 성명을 발표한거다.

당한 일본도 놀랐겠지만 중국과 해외 동포사회가 발칵 뒤집어졌으리라!

 

동포들에게는 그간 나라잃은 백성으로 서러웠던 차에 조선인 혹은 대한인 그 이름이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그러나 김구의 사정은 더욱 급박해진다.

김구를 조여오는 일제의 손길.

딱 영화 속 첩보작전이었다.

미국 선교사부부, 중국 저보성 등 한미중 삼국이 연합하여 김구 보호하기.

 

그러다 끝내 총탄에 맞고 쓰러지는데 원흉은 되려 혁명운동에 함께 했다던 동포였다는!

천우신조였다.

김구의 하나님이 보우하심이었다 ㅠ

그러나 이후 해방조국에서 다시 맞이한 동포의 총탄과 김구의 결말을 생각해보면 ㅠ

애국가 가사처람 하나님이 보우하신 대한사람 대한으로 가는 거 맞았던가? ㅠ ㅠ

 

이후 가흥과 남경 일대에서 피신생활을 보내는 김구.

이때 중국 수반 장개석과의 만남에 밑줄 쫙!

광복군 창설의 기반이 될 낙양군관학교 한인특별반 양성을 합의하다.

 

 

12_중경시대

 

 

p572

 

 

애초 김구가 저술한 백범일지의 초안은 여기 중경시대로 끝이 난다.

중일전쟁의 혼돈속에서 여기 저기 떠돌다 중경에 도착한 게 1938년이었다. 

여기서 김구는 임정 조직개편과 광복군 창설 등 많은 업적들을 이룬다.

말그대로 숨가쁘게 달려온 시절이었으리라.

이 시기 나라와 해외정세가 변하는 시국을 예의 주시하는 김구.

무엇보다 열강이 대한민국을 주목하면서 독립을 언급한 것이 임정과 독립운동세력의 크나큰 성과였다.

이제 조국광복 이후를 그려보는 김구로서는 한 시기를 정리할 필요를 느꼈나 보다.

그 일을 할 사람이 김구 말고 또 누가 또 있겠는가!

해외 독립운동의 구심이 그였으니까!

다만 중경 밖의 항일무장단체들의 흐름은 여기 편입되지 못한것이 안타깝다.

중경과 중국 정부 안에서 정보와 인적 교류의 한계 때문이었겠지.

 

이 장에서 특기할 것은 김구와 임시정부의 지난한 피난생활.

처음 상해 임시정부가 32년 홍구의거 이후

우선 임정 요인들이 대피한다.

 이후 중일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상해와 남경 일대에서의 임시정부가 계속 거처와 활동기반을 움직인 모습이 내 눈길을 끈다.

한나라의 정부다.

그 안에는 정부 수반과 각료들.그리고 행정 직원들이 있다.

그리고 또 거기 딸린 수많은 식속들.

김구 백범일지에는 그 식속들이  대가족이란 이름으로 명명되어있다.

김구 본인도 몸을 피하느라 긴장해야 했지만

전란중에 대가족의 안위를 챙겨야하는 사정도 만만치 않다.

여기에 대한독립운동의 선봉장 김구를 높이보는 중국정부의 각별한 호의가 있었다.

중국도 지금 일본과 전쟁 치루느라 정부를 남경에서 중경으로 옮기기 바쁜 와중에도 김구의 요구에 일절 거절이 없었다.

그렇게 나라의  정부가 움직여간 여정.

상해를 떠나 남경에서 장사로 광주로  그리고 중경.

여기 정부의 대가족은 더 바쁘게 움직였다.

가흥-남경-장사-광주-고요-계평-유주 -기강-토교.

 

어느 때고 김구의 여정이 평탄한 적 있었겠으랴만

중경에서의 김구 가족사는 특히 애달프다.

김구의 젊은 시절부터 고락을 함께 해온 어머니의 운명.

그리고 여기 이 장에선 나오지 않았지만 맏맏아들의 죽음.

 

한국독립당의 창당.

지리멸렬했던 독립운동제당사회단체 통일운동은 결국 한국독립당으로의 흡수와 재편

그 이합집산으로 결말이 난다.

그랬다.

한국독립당이다.

김구가 안두희에 쓰러지기 전까지 당수로 있었고

해방후 조선에서 가장 영향력있던 제일당!

김구.이동녕.이시영.공진원.김의한.

홍진.조소앙.조시원.이청천.김학규.유동렬.안훈.송병조.조완구.엄항섭.김봉준.양묵.조성환.밗잔익.차이석.이복원

 

 

드라마 도깨비 속 도깨비 공유의 집.

흥선대원군이 살았던 운현궁에 속한 양관건물이다.

그니까 이 건물도 엄연한 사적이다.

저기 은탁이랑 도깨비랑 저승사자가 꽁냥거렸던 정문 옆에 한국독립당 간판을 걸고 김구가 집무를 보았다.

 

그리고 김구는 여기에서 죽지는 않았다 ㅜ

 

아 광복군!

미 OSS와 국내진공작전을 위한 공동훈련.이를 훌륭히 감내해낸 대한의 전사들.

그러나.....

 

하권이 끝났다

 

 

계속

 

 

13_해방 전후의 임시정부

 

백범일지 상•하권에 이어 해방후 추가된 '계속' 권은 김구의 구술로 작성되었다고 한다.

해방직전 광복군 창설과 훈련과정이 상세히 묘사된다.

그리고 해방되어 귀국하기까지 중경생활을 추억하고 정리하는 후일담.

 

김구가 광복군 창설의 일화와 일황의 항복소식을 들었을 때의 참담함을 세밀히 나누는 심정이 나도 이해가 갔다.

우리의 손으로 쟁취할 자주독립이었거늘

미소연합국의 전리품이 되어버린 조국 광복이라니!

그로인해 미 군정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임시정부.

임시정부 수반과 각료가 아닌 개인자격으로 입국허가를 받고 고국에 왔을 때 김구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김구 개인적으로는 3•8선 이북에 놓인 고향땅에 마음놓고 가보지도 못하는 분단된 조국이라니!

 

그러니 나같아도 원자폭탄이 9월에만 떨어졌어도!

일황이 조금만 늦게 항복했어도 

조선독립에 임정의 지분은 공공연했을 것 아닌가!ㅠ

고국에 들어오니

다시 한번 민족주의 사회주의 중도주의 어쩌구 저쩌구

그리고 민족주의 안에서도 김구계열이니 이승만 계열이니 어쩌구 저쩌구 ㅠ

이러자고 내가 그 고생을 해서 독립운동을 했던가 하는 한탄을 어찌 아니 했을까 ㅠ

 

정말 정말 해방 후 한국사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슴이 미어 터질 것 같다 ㅠ

 

암튼 

김구도 놀라고 제반 열강 인사들도 감동케 한 광복군 한 병정의 이야기.

 

김구는 이 광복군 창설식에 그렇게 공을 들였다.

전 세계여 보라!

조선이 일본에 대항할 독립전쟁의 군대가 우리에게 있다라고 과시해야 했으니까!

일제의 조선지배는 끝끝내 극복되어야할 세계사의 숙제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화려한 창설식 이후 몇달동안은 유명무실한 상태였다고 한다.

창설식의 낭창한 일성은 그냥 일성에 끝나는 순간인듯한 나날들이었다.

김구 마음이 얼마나 초조했을까

 

그러더 어느날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애국가를 부르며 임시정부청사로 행진해 들어오는 일단의 청년부대원들.

중경 시내가 떠들썩했다고 한다.

이들은 당시 중일전쟁 한복판에서 일본군에 속해있던 조선 학도병들이었다고.

 

그중에 한 청년의 사연이 김구와 온 좌중의 심금을 울렸다.

학도병에 징집되자 부모가 말하길

어차피 왜놈이 벌인 전쟁에 나가 개죽음 당할바야

중국서 활약 중인 조선 임시정부의 존재를 말해주며 

왜군을 탈출하여 임정에 합류하고 독립전쟁을 위해 영광스럽게 죽으라 했다더라고.

 

그 청년의 고백 중에 우리 역사도 모르고 조선말도 잘 모른다던 청년.

그런 청년에게 조국과 민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을까?

이럴때 여명의 눈동자 하림의 고뇌 장면이 떠오른다.

하림도 딱 이 청년만한 나이로 일제하에 태어나 일제가 무엇인지 조국독립이 무엇인지 광복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고 자랐더라고.

 

그렇게 조선 민족에게 점차 잊혀져갈수 밖에 없던 조선이란 이름.

조국 광복의 의미.

그러나 숨죽이고 살았던 그 부모는 아직 시퍼렇게 붙들고 있었던거다.

우리가 원래부터 일본놈 세상에서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던 거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임시정부가 나라밖에서 서 싸우고 있다더란 그 사실 하나에 매달리고 있었던거다.

일제말 민족말살정책기.

조선은 그렇게 암흑기라 했으나

임시정부 그 이름만으로도 어둠속의 조선 민중에겐 희망이 되어있던것!

 

아 임시정보

아 김구시여

 

14_고국에 돌아와서

 

그래도 꿈에 그리던 고국이다.

치욕스럽게 임정 간판 떼고 백의종군하듯 귀향길이었지만

원수 일본놈들은 물러가고

조선 민중이 활개치는 내 나라 내 땅을 밟는다는 기쁨.

 

 

비록 경쟁자들은 임정을 폄하하고 

질시섞인 눈으로 바라보며 경계했지만

임정과 김구 이름자들에 대해 가장 순수하게 환호한 세력은 하늘 곧 민중이었다.

 

해방후 조선 인민들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오늘날 이 광영과 환희가 누구 때문이었는지를.

지난날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은 새벽을 기다리며

그 깜깜한 암흑속의 조선에서 한줄기 빛이 되어준 임시정부.

김구 그 이름.

그전에  발없이 날개 없이 퍼져나간 윤봉길 이봉창의 이름도.

이제 나라꼴이 요상해져서 일본놈 대신에 눈 퍼런 미군이 설치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것도 김구가 나서면 잘 해결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아니 우리 민중이 보기에 김구선생은 해외에서 넘 고생을 하셨다 .

우선은 고향 조국에서 마음껏 해방을 만끽하시라

그렇게 열렬히 뜨겁게 사랑해주고 믿어주던 각처의 민중들 ㅠ

 

 

 

그러니 친일파 이것들이 얼마나 김구가 미웟을까!

김구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할 수록

나는 이승만이 용서가 안된다.

심지어 이승만에게서 이명박이 보이기까지 ㅠ

 

그래도 이승만은 건국정부에 기독교 정책을 안착시킨 공이라도 있지.

이명박 너거는 유다보다 나쁜놈이여!

유다는 양심이라도 있었지!

탐욕으로 꽉차서 예수이름에 먹칠을 한

민족의 원수!

4대강의 원수(

 「4대강 사업의 진실과 거짓 강은 살아있다 」읽고 있는 중.)!!!

 

그래도 이승만 그대도 민족의 원흉이여 ㅠ

분단의 주구이다!!

 

 

나의 소원

 

이제 대단원의 마무리.

그것은 김구의 그 유명한 시국선언문

'나의 소원' 이다 .

 

"대한독립이오."

"우리 나라의 독립이오."

"우리 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애국자의 이 간절한 일성은 8•15광복 이전에 가진 소원이었을까?

아니다!

 

김구는 분명 해방되고 서울에 와서  한 말이다!

그러니까 8•15 해방은 맞았어도 진정한 민족의 독립은 이루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우리민족의 미국과 소련의 군정기였으니까 군정이 끝났으니까 김구의 소원은 이뤄진 것일까?

아니다!

김구는 소원,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은 아직도 미완성이다!

우리가 분단되었기 때문이다!

분단된 상태에선

민족의 진정한 자주와 자유와 번영이 불가능하다.

분단 상태 그 자체가 민족의 질곡이 되어

우리의 번영과 자주를 가로막고 있으니까!

 

오늘날 통일의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만 따지려드는 세력이여!

 부디 김구가 마지막까지 붙들었던 민족통일의 염원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여기 '나의 소원' 을 읽고 헤아려보라!

 

너무나 아름다운 김구의 나라.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입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주는 것으로 낙을 삼는 사람' 

'선비같고 점잖은' (p649) 

우리 민족의 나라는 인후지덕이 있는 나라(p649)

사해동포의 크고 아름다운 목표를 향하여 인류가 향상하고 전진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요 마땅히 할 일이나, 

이것도 현실을 떠나서는 안되는 일이다.

현실의 진리는 민족 모두가  최선의 국가를 이루어 최선의 문화를 낳아 길러서, 다른 민족과 서로 바꾸고 서로 돕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민주주의요,

이것이 현단계에서는 가장 확실한 진리다.(p639)

 

그렇게 꿈꾸었던 김구의 나라가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이다.

5•18 광주와 87년 민주화 항쟁을 겪으며 마침내 이룩한 민주화의 꿀물을 빨고 있는 어린 세대들은 

김구가 그렇게 온 목숨 걸고 간절히 꿈꾸고

또 꿈에나 가능할까 기대도 못했던 세상에 있음을 가슴에 새겨야 할지니.

꿈은 이루어졌다☆

그 꿈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해야할텐데

 

 

 

●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람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혹하거나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ㄴ소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p640)

● 교육의 기초가 되는 것은 우주와 인생과 정치에 대한 철학이다.(p645)

 

● 가까이 이조시대를 보더라도 홍문관 사간원 사헌부 같은 것은 국민중에 현인의 의사를 국정에 반영하는 제도로 멋이시는 제도요, 과거제도와 암행어사 같은 것도 연구할 만한 제도다.

역대의 정치제도를 참고하면 반드시 쓸만한 것도 많으리라 믿는다.

이렇게 남의 나라의 좋은 것을 최하고 내 나라의 좋은 것을 골라서 우리나라의 독특한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도 세계의 문운에 보태는 일이다.(p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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