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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을 살리는 환경책 045. 9월이여, 오라. 아룬다티 로이. 녹색평론사.2004 본문

책/다음을 살리는 환경책 145(환경정의)

다음을 살리는 환경책 045. 9월이여, 오라. 아룬다티 로이. 녹색평론사.2004

혜성처럼 2021. 11. 18. 21:40

아룬다티 로이 정치평론

[9월이여, 오라] (박혜영 옮김)

 

 

드디어 만나는구나. 

이 위태로운 지구별 생태계에 9월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목차에 반가운 이름이 있다. 

노암 촘스키

위대한 언어학자라는데 그건 언어학계에서 알아야 할 사정이구

내겐 자기 조국 미국더러 제국주의라 비판해대는 저항지식인의 상징. 

한국에 리영희 교수가 있었다면 서구에는 노암 촘스키로 내겐 각인되었었던..

 

 

책은 작고 또 가볍다. 

기대된다. 

얼른 읽어야지.

 

 

홍수 앞에서

 

이제 시작이다. 

저자 아룬다티 로이는 첫소설 [작은 것들의 신]으로 순식간에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인도 작가이다. 

책 한권으로 돈과 명예를 얻어 앞으로의 인생에 탄탄대로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당시 나르마다 댐건설 반대 투쟁 현장을 목격하면서 그녀의 삶과 모국인 인도 안에서의 평판이 180도 전환된다. 

목차에서도 힌트가 있었던 것을 이 서론 겸 첫 장을 읽고서야 이게 나르마다를 포함한 인도의 댐건설 반대가 주된 메세지인 것을 알았다. 

 

다음을 살리는 환경책 리스트를 통해 감격스럽고도 감사한 두 가지. 

첫째, 미국 혹은 영국 혹은 프랑스 등의 서구권 위주의 명사들 뿐 아니라 아프리카, 인도 등 제3세계 국가들의  위대한 작가들도 만날 수 있다는 것. 

오늘은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를 통해 인도인의 치열한 삶을 들여다 볼수 있다. 

그간 유튭 등을 통해 겐지스 그 더러운 강에서 빨래를 하고 화장실 문화가 미개한 것들을 함께 비웃었던 것을 반성하게 됐다. 

둘째, 다양한 주제를 말 그대로 심도있게 파고들수 있다. 

나무, 흙, 공기, 똥 , 지렁이, 자동차, 육식, 물, 갯벌, 음식 습관, 아이들 간식, 전기, 환경호르몬 .

[9월이여 오라]는 이제 댐에 대해서 집중 파헤칠 것이다. 

어린 시절 사회 교과서에서 전기를 얻는 여러 방법 중 수력발전은 값이 싼 반면에 건설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더라 이런 단편적인 지식만 배웠던 기억이 나나다. 

그러나 70년대 80년대 우리네 지식인들도 수몰지역민들의 투쟁과 애환을 그들의 문학으로 고발한 작품들을 접했는데. 

나는 문학작품 속 단편적인 장면들로만 보았는데 이를 집중다룬 소설들이 많이 있다. 

이 책에선 댐 수몰민 보상은 커녕 피해자 상황 집계조차 턱없는 상황인 것에 저자가 분노하는 모습이 나온다. 

단순히 땅과 집을 잃은 사람들 뿐 아니라 댐 이전의 강과 숲에서 공생해오던 수많은 1차산업인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새만금 간척지 조성으로 인해 갯벌을 직장 삼아 살아온 수많은 어민들의 피해가 떠오른다. 

정부에서 보상 얘기가 나오면서 어민들을 상대하려다보니 서류를 갖춘 어민들 대상으로 보상에 비협조적이고 게으를 수 밖에 없던 관계 기관들의 모습. 

수십년을 뻘에서 조개를 캐서 그거 머리에 이고 지고 장에 나가 팔며 자식들 키워온 , 허리 꼬부라진 숱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눈물나는 이야기들. 

 

작가는 인도 정부가 댐건설을 통해 부당한 정경유착의 비리를 벌인 것만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이 이지경인데도 인도 지식인사회가 침묵했던 것에, 여전한 카스트 제도하에 하층 계급의 사람들에 대해 인간취급도 안하는 뿌리깊은 인도의 반인간적인 문화에 분노를 표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댐 건설 저지를 통해 기층민들의 생존권을 지키고 자연을 지키려고 싸우는 댐건설 반대 운동 단체들의 헌신적인 모습도 볼 수 있다. 

 

나는 이게 1999년 그러니까 20세기의 끝자락 , 지금부터 아주 한참 전에 있었던 일들이란 것에 그저 안도하는 비겁쟁이다. 

나는 간도 심장도 쪼만한 인간이라 이 뜨겁고도 지옥같은 현실을 감당할 능력이 안된다ㅠ

나이가 들수록 난 진실이 아프다 ㅠㅠ

 

 

●그러나 작가는 그렇게 쉽게 외면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저주받은 운명이다. 작가라면 늘 아픈 눈을 뜬 채로 있어야 한다. 

날마다 추악한 모습들의 목격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낡아빠진 뻔 한것들을 새롭게 이야기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

사랑과 탐욕, 정치와 지배, 권력과 권력의 결여 이런 것들에 대해서 되풀이하여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안된다. (p 5)

 

●(내가 알게 된 그것은 ) 한 정부가 민주주의란 그럴듯한 가면을 쓰고, 국가이익이라는 이름 미에서 어떻게 교묘한 바익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망가뜨리고 있는가를 가차없이 폭로하고 있었다. (p 7)

 

●국가도 용서받을 수 없지만  지식인 공동체도 용서 받을 수 없다. (p 11)

 

●쫓겨난 사람들의  일부는 한번 쫓겨나면 나중에 서너차례나 더 쫓겨난다. 

한번 구르기 시작하면 멈추어 쉴 곳이 없는 것이다. (p 12)

 

●자급자족하면서 자유로운 삶을 누리던 존재에서 더욱 가난해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세계의 변덕에 매달려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된다는 것- 그 느낌이 어떤 것이겠는가? (p 13)

)

 

●만일 우리가 지금 이 지점에서 현실을 외면해버린다면, 우리의 예술은 별로 이야기할 만한 것이 못 될지 모른다. (p 19)

 

작가와 세계화

 

[9월이여 오라]는 정치평론 모음이다. 

아까 '홍수 앞에서' 를 포함해서 모두 8개의 장은 각기 다양한 시대와 매체를 통해 발표된 기고문, 혹은 연설문들이다. 

이번 장에서 저자는 세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첫째, 현실 앞에  작가의 사명, 그 본질적 기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기서 언급되진 않았는데 우리 대한민국에선 익숙한 단어, 양심이다. 

둘째, 인도라는 현실 

        그리고 현 인도 정부가 펼치는 세계화란 정책의 허구에 대해 신랄한 비판. 

셋째, 그래서 작가인 자신이 허울좋은 세계화 정책을 펼친다고 하는 인도 정부를 비판하는 저항이 

      작가를 넘어선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사명인 것을 말하고 있다. 

 

멋있다. 

내내 밑줄 좍좍 그어댈 명언들을 쏟아놓는다. 

 

● 우리가 감내하기 어려운 것은 (인도라는 현실의 ) 그 정신분열적 성격입니다. (p 22)

●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그 국민을 향해 선전포고도 없이 전쟁을 거는 나라에서 작가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성가신 책무를 걸머지는 일입니다. (p 22)

●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작가는 이 힘들게 얻은 자유를 오용하면 그 유일한 결과는 나쁜 예술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p 23)

● 작가는 스스로 물어보고 가능한 한 정직하게 대답하면 그만입니다. (p 24)

● 문제는, 일단 (현실을) 그 것을 본 다음에는 안 본 것으로 할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 순수라는 것은 없습니다. 

   일단 그것을 본 뒤에는 , 침묵을 지키고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기에 대해 발언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정치적 행동이 됩니다. 

  어느 쪽으로든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p 25)

● 소설을 쓴 사람은 왜 작가로 불리고, 정치 에세이를 쓴 사람은 왜 활동가로 불려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p 27)

● 나는 명확한 입장을 취하고 ,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p28)

● 우리는 우리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p 29)

● 세계화란 무엇인가요?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불평등이 사회 제도화 되어있고 7억이 농촌인구이고, 80%가 소농이며, 3억 인구가 문맹인 나라에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p 30)

● 세계화는 원격 조종되고 디지털 방식으로 작동되는 변종 식민주의일까요?

● (작금의 나라 현실에 ) 간여하게 되는 것은 그가 작가나 활동가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관여하는 것입니다. (p 38)

● 내가 이 상황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 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들에 대한 공적 논쟁의 비전문화!(p 38)

● 오래된 브라만적 본능. 

지식을 식민화하고, 그 둘레에 장벽을 쳐서 , 그것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사용하는 것. 

;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과 검사들과 판사들의 모습을 보는 것같다. 

 법률 , 의정 지식을 자신만의 천부적 특권으로 여기며 이 권역 밖의 비전문가들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족속,

그리하여 자신만의 법을 구사하고 아전인수하는 말종들. 

● 문제는 정말 전문가 대 문외한, 또는 지식과 무지 사이의 대립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짖ㅂ니다. 

 문제는 한 가치체계와 다른 가치체계의 대립, 한 종류의 정치적 본능과 다른 종류의 정치적 본능 사이의 대립입니다. (p 41)

● 이른바 이성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이 비이성적인, 본능적인 정치적 존재로 변하는 것을 보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p 41)

 ; 로이 작가 대단하다. 

어떻게 그저 흥미로와 할 수 있지?

나는 억장이 무너지는데 ?!!!!

 대학 입학에 반영되지도 않은 , 학교가 자발적으로 준 표창장 가지고 위조시비를 걸어서 그 부모 집안을 쑥대밭 만들고 엄마는 몇달째 감옥에 가둬뒀는데

거대 정당의 대통령 후보이자 전직 검찰총장이었던 윤석렬의 부인은 교수는 대학 논문도 온통 표절이요, 대학 교원임용에 서류들도 온통 허위인데 이에 대해 조국 장관 딸에 가했던 가차없는 법적용 따윈 전혀 없다. 

심지어 국민의 힘 국회의원들은 윤석렬 후보 부인 수사는 대선 이후로 미루자고까지 하며 ' 비이성적이로 본능적인 ' 정치적 행위들을 해댄다.

그런데 어떻게 분노하지 않고 그저 흥미로와만 할수 있지 ㅠㅠ

 

왜 미국은 당장 전쟁을 중지해야 하는가?

 

이제 세 번째 평론이다. 

여기 와서야 확실히 이 글이 근 20여년 전 글임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젠 이 칼럼이 맨 먼저 발표된 매체는 어떤 것이었는지 확인하게 된다. 

첫번째 '홍수 앞에서'는 연설문이었다. 

세번째 칼럼은 2002년의 그 무시무시한 911 테러에 대한 이야기다. 

까마득한 옛이야기구나. 

집으로 가는  번화가 무수한 상점들. 

가게마다 켜진 텔레비전에선 비행기가 건물에 내다 꽂히는 영화가 그렇게 자꾸 나온다. 

다큐멘터리인가?

집근처 자주 가던 포장마차 안에 들렀는데 안에도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소사 소사 맙소사!!!!

영화도,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조금 전에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여객기 공중납치에 쌍둥이 빌딩 폭파 테러란다 

테러.

생각해보면 내 어린 시절에도 테러에 대한 낯설지 않은 기억이 있다. 

버마 아웅산 KAL기 폭파 사건. 

아직도 당시 테러의 진위에 대한 명확한 역사적 답변은 없다. 

북한 방송에서도 나왔다던 인물과 훗날 김포공항에 마스크 쓰고 입국한 테러범 김현희와는 전혀 닮지도 않았건만

김현희는 그렇게 사면되어 책도 내고 방송에도 나오면서

한시대를 풍미한 셀럽이 되었더랬지. 

시리아 난민사태가 국제적 문제가 되는데 

우리나라처럼 정많은 나라에서도 이 난민들을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논란이 거셌다. 

이슬람 세력은 온건파던 강경파던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공식을 부인할 수 없는 실정인걸 . 

그러니 영국이나 프랑스나 이제 이슬람 인구가 점차 늘어나는데 더불어서

툭하면 테러의 공격이 만연화된 실태를 보면

이제 테러는 기후온난화 만큼이나 전지구적 문제가 된 것같다. 

어린 시절에야 얼마나 죽었고 누가 범인이고 어떻게 범죄가 일어났는지 등에만 관심을 가졌는데 

이 글을 보고 나서는 테러를 당한 피해자의 유가족으로서의 아픔도 아픔이지만

또 다시 그런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테러의 주요 표적이 되는 국가들의 국민으로서는 엄청 스트레스일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물론 이 칼럼의 진짜 논지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한 일을 비판하는 일이다. 

맞다, 그런 일도 있었다. 

부시가 911의 원수 알카에다와 그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을 잡겠다고 탈레반이 은신해 있다는 아프가니스탄에 전쟁을 개시했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초창기에 있던 일이다. 

중세 기사전쟁의 시절에나 있을 법한 복수와 응징을 테마로 나라의 수장이 깃발을 들고가 공성전을 벌이는 일. 

물론 부시가 직접 출격하진 않았지만 백악관 한가운데 앉아 원격 통신으로 모든 전쟁상황 보고는 받았겠지. 

작가는 바로 이 전쟁의 허위를 비판하고 있다. 

911 테러범의 수장을 잡겠다고 가난한 나라 아프가니스탄에 첨단 무기를 때려넣는건

바늘 찾겠다고 짚단을 불지르는 것과 똑같다는 비유는 정말 정확하다. 

오사마 빈 라덴. 

이름도 잊을 수 가 없어. 

국제적 공적이 되어 개그프로와 만화에서도 희화되어 등장하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 

그러나 아프가니스탄만 애꿎게 전 국토가 마치 우리나라 3년 한국전쟁 치르고 초토화 된 것마냥 쑥대밭이 되었는데 

정작 전쟁의 목표였던 오사마 빈 라덴은 끝내 찾지도 못했다. (10년뒤에 옆 나라 파키스탄에서 사살되었다 )

이 전쟁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이 우리 나라가 국민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 되었는데 

최근 아프가니스탄 협력 주민 300명 대량 탈출시킨 일로 전세계의 스타가 된 대한민국.

그로인해 우리 국민들은 다시금 아프가니스탄이란 이름이 그때마냥 언론에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작가는 이때 억울하게 희생된 아프가니스탄의 목숨도 똑같이 911 테러의 희생자 명단에 올려야 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또한 아프가니스탄 사회 뿐 아니라 테러범들이 양산되는 그 외 다른 가난한 나라들의 실태를 증언하는데

이게 참 가슴이 아프다. 

'탈레반은 냉전의 뒤치다꺼리 마당에 널린 쓰레기, 마약, 지뢰들로 된 어지러운 잡동사니 속에서 태어났다.

탈레반의 가장 나이 많은 지도자들이 40대 초반이다.

그들 가운데는 한쪽 눈이 없고 한 쪽 팔 또는 다리가 없는 불구자가 많다. 

그들은 전쟁으로 찢겨지고 황폐화된  사회에서 자랐다. 

 소련과 미국은 지난 20년간 약 450억 달러어치의 무기와 탄약을 아프가니스탄에 쏟아부었다.

철저히 중세적인 사회가 맛본 유일한 근대성은 최신 무기였다. 

그 시기 성정한 소년들은 부모를 잃고 장난감 대신 총을 가졌고,

가정생활의 안전과 안락을 전혀 알지 못했고,

여성들과 함께 하는 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이제 어른이 되고, 지배자가 된 탈레반은 여자들을 때리고,

돌을 던지고, 강간하고 잔인하게 다룬다.

그들은 달리 어떻게 여자들을 대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오랜 전쟁은 그들에게서 부드러움을 제거해버렸고 ,

친절과 인간적 자비심에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 버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야만성을 자신의 동포들을 괴롭히는 데 사용해왔다. '(p 51)

 

영화 모가디슈에서 이런 장면 나온다 .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아비규환의 난리 속을 헤메며 떠돌고 있을 때 그들 앞에 나타난 꼬맹이 자경단들. 

장난감처럼 의기양양하게 휘둘러대는 소총에선 진짜 실탄이 장전되어 있었다. 

진짜 소총을 그렇게 장난감처럼 휘두르고 쏘아대며 깔깔거리며 웃는 어린 아이들 .

과연 80년대의 그 아이들은 무사히 살아있기는 한지?

살았다면 어떤 어른으로 성장해있을려나?

20년전의 이야기이지만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아프가니스탄의 참상을 알고 있으니 

그리고 테러리스트들은 아직까지 도처에서 때를 노리고 있으니 

(며칠전 영국에서도 자살폭탄테러가 있을 뻔했는데  택시기사의 목숨을 건 기지 덕에 테러범이랑 텍시만 날리고 무사했다더라 ㅠ)

테러를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길은 더이상 정의와 민주주의를 빙자한  자국패권주의로 인한 전쟁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작가의 간절한 호소가 오늘의 내 맘을 울린다 ㅠ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폭격은 뉴욕과 워싱턴을 위한 복수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의 민중에 대한 또하나의 테러행위이다. (p 48)

 

● 문제는 선과 악, 또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대립이 아니다.

  어떻게 다양성을 수용하는가, 어떻게 헤게모니- 경제, 군사, 언어, 종교, 문화 등 모든 -를 장악하고자 하는 충동을 억제하는가가 문제이다. (p52)

 

● 단작이 얼마나 위험하고 취약한지는 에콜로지스트는 누구나 알고 있다. 

누군가가 헤게모니를 장악한 세계는 건강한 야당이 없는 정부를 갖고 있는 것과 같다. (p 52)

 

● 정치적 편의를 이유로 종교적 감정을 부추기고 이용하는 행태는 가장 위험한 유산이다. (p 57)

'

 

9월이여 오라

 

드디어 이 책의 제목이 된 칼럼이다. 

생태주의 추천도서이길래 맨 첫 주제 댐 이야기와 어울리는 9월의 풍요로운 가을을 희망하는 내용일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풍요와 여유와는 정반대로 전율과 공포가 몰아치는 장이었다. 

 

본 장은 다시 연설문이다. 

2002년에 저자 아룬다티 로이가 Lannan 재단이란 단체의 초청을 받아 미 캘리포니아 산타페에서 행한 강연이다. 

중간에 산타페를 언급해서 청중의 폭소를 일으킨 장면이 있는데 이걸 몰랐던 거라 왜 산타페가 그렇게 웃기단 거지?

검색해 봐도 그저 평범한 미국의 지명들 이름일 뿐이다. ( 한때 내 애마 이름으로 헷깔리진 않았다 ㅋ)

 

이 강연에서 저자는 세 가지를 말하고 있다. 

첫째, 작가는 어떻게 글을 쓰는가?

둘째, 자신에게 규정된 '반민족적',' 반미적' 이란 판정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이 부분이 참 통쾌했다..

셋째, 강의했던 시기인 2002년 9월에 9월과 미국과의 관계를 세계 구석구석의 구체적 사례를 들어 설파하고 있다.

 아, 심장이 조여들고 온 몸에 오한이 서리는 기분이었다. 

아니다, 

머리 뒤쪽에서 피가 솟는것도 같다. 

 

아룬다티 로이는 전세계적 베스트셀러 한권을 낸 뒤로는 이후 주구장창 인도 정책에 나아가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는 스피커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날 자신이 반대하는 나라 미국 안으로까지 들어와 미국의 제국주의적 폭력성을 규탄하고 있는 거다. 

때문에 작가로서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자신의 입장 또는 그 운명을 해명하고 있는 듯하다. 

이야기가 작가를 골라냅니다. (p 63)

 

그렇게 살다보니 조국 인도 정부와 언론 , 같은 인도인들이 작가를 반민족적이라고 규정하며 매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핵폭탄, 대형댐, 세계화, 힌두 파시즘을 반대해왔거든. 

이제는 미국에게까지 쓰디쓴 소리를 하는 그녈 두고 반미주의자라고 했다더란다. 

그녀는 반민족주의의 반대인 민족주의가 실상 그렇게 민족을 위한 가치관은 아니라고 공박한다. 

왜냐하면 20세기에 일어난 대부분의 집단학살이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p65)

반미적이라는 비난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발언은 들어볼 가치도 없이 무시받게 만들 낙인일 뿐이라는 입장 하나 !(p66)

그리고 반미적이란 말의 얼토달토 안되는 허위성에 대해서는 그녀가 한 말 고대로 옮겨본다.

'반미적이란 용어는 무슨 뜻입니까? 재즈에 반대하는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언론자유에 반대한다는 뜻입니까? 토니 모리슨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핵무기에 반대하여 행진한 수십만 미국 시민들이나 베트남 철수를 주장한 수많은 미국 반전운동가들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반미적이란 모든 미국인들을 미워한다는 뜻인가요?'(p 67)

그녀를 둘러싼 음해성 낙인들에 대해 이렇게 통렬한 반박에 내가 대신 통쾌했다. 

그래. 난 반일주의자다!

그러나 난 그 많은 책은 버려도 끝내 못버린 미우라 아야꼬의 모든 책들과 무라카미 하루키를 사랑한다.

토토로는 내 꿈이다. 

난 우리 언론과  정치계 사법부의 친일적 행태와 가치관에 분개하지만 일본이 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일본 열도 침몰? 개소리다!. 

기미독립선언서에 민족대표 33인이 선언한 그대로 사해동포주의의 구현은 반일이다.!

일본 너거들아 , 제발 우리 괴롭히지말고 너거들끼리 잘 살아!

우리땅 친일파들아!

제발 민족주의좀 해봐!!!!

 

가슴아픈 세번째 주제. 미국 땅에서와 세계 도처에서의 9월의 의미 ㅠ

우선 칠레. 1973년 피노체트가 미 CIA의 지원으로 쿠데타를 성공시킨후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살해하고 붕괴시킨 날. 

 그리고 칠레에서 17년간 벌어진 무시무시한 공포정치. 

공개적으로 손목을 잘린 기타리스트 ㅠㅠ

 

;이후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에콰도르, 브라질, 페루, 도미니카 공화국, 볼리비아, 니카라과, 온두라스, 파나마, 엘살바도르,멕시코, 콜롬비아. 

베트남, 한반도 , 인도네시아, 라오스, 캄보디아. 

 

여기서 한반도는 적어도 한국전쟁 이후 즉 1970년대 이후 시기에 있었던 일들을 말하는 것일진대 

혹시 518광주때의 미국의 서해안 함정시위를 말하는가?

 

1922년 9월 11일에는 영국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신탁통치를 선포한 날이라고 한다. 

오늘날 팔레스타인 분쟁의 서막을 올린 날이라고나 할까 ㅠ

팔레스타인의 비극이다. 

유태인들의 2000년의 시오니즘의 간절함을 모르지는 않지만

거기서 희생된 팔레스타인 사람들게는 얼마나 재앙이었겠나?

평화로운 해결방안은 정녕 없는 것인가?

 

로이가 밝히는 9월 11일에 얽힌 역사는 또 있다. 

이쯤되면 911의 저주라고 할까? ㅠ

 911 테러가 일어나기 10년전 9월 11일에 미국 대통령 부시가 이라크를 폭격하기로 자기네 의회에서 선전포고한날도 이날이라고 한다ㄷㄷㄷ

로이의 말대로 무슨 대단한 정의로 깡패국가 독재자를 응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깡패 자기가 길러서 잘 써먹다가 말안듣는다고 몽둥이질 한 날이라 이거다. 

이로 인해 이라크 민간인들이 목숨잃고 질병과 기아와 갈증에 시달리다 죽은 사람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ㅠ

 

이렇듯 미국은 자기 안에서만 평화를 누리고 세계 곳곳에서 싸움을 걸고 무자비하게 첨단 무기 때려박으며 무수한 살생을 저질러온 어마무시한 나라였다

라는 이야기를 지금 미국 안에서 인도 작가 데려다가 강의 듣고 있는 미국인들이 있다는 것도 놀랍다!

 

미국이 이런 나라다. 

비록 그 자유와 민주주의란 나라가 기득권층의 교묘한 언론플레이로 이상하게 비틀리긴 했어도 

행동하는 양심은, 연대하는 지식인들은 항상 있다. 

이 다음을 살리는 환경책 리스트에서 만난 콜롬비아 가비오따스 신화를 전해준 이도 미국 기자였다. 

다음칼럼의 주인공도 노암 촘스키, 미국 양심의 살아있는 증거가 되시는 석학이다. 

아룬다티 로이는 또 에드우어드 사이드, 하워드 진, 에드 허만, 에미미 굿맨, 마이클 앨버느, 찰머스 존즌, 윌리엄 블럼 앤서니 에이무브도 있다고 추천해준다 (P 67)

 

작가들은 자기가 이 세계 속에서 이야기를 고른다고 상상합니다. 

    실제로는 정반대로, 이야기가 작가를 골라냅니다. 

 이야기는 우리를 지배합니다. 

이야기 자신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라고 명령합니다. (p 63)

 

● 내가 쓰는 글은 국가와 역사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권력, 권력의 편집증과 잔인함에 관한 얘기이며, 권력의 물리학에 관한 얘기입니다. (p64)

 

● 폭격을 통해서 우리가 여성해방의 낙원으로 갈 수 있을까? (p 68)

 

●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핵무기고를 가지고 있고, 또 무고한 민간인들을 상대로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한 바 있는 유일한 국가입니다. (p 80)

 

● 지구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나라라고 한 미국은 지난 50년 동안 단한ㄷ해도 빠짐없이 인 나라 저 나라와 전쟁을 해왔습니다. (p 81)

 

●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 주먹 없이는 제구실을 못한다.  

    맥도날드는 맥도넬 더글러스 없이는 번성할 수 없으며 ,...실리콘 밸리가 번창하도록 미합중국 군대가 보이지 않는 주먹 역할을 한다. (p 82)

 

● 세계롸는 점차적으로 문화적 민족주의, 종교적 완고성, 파시즘, 그리고 테러리즘과 같은 끔찍한 것을 낳는 비옥한 온상이 됩니다. (p 84)

 

● 세계화는 핵무기, 상비군, 엄격한 이민법, 삼엄한 해안경비대를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세계화란 오직 돈과 상품과 특허와 서비스에 관한 것이지, 결코 사람ㄷ르이 자유로운 이동이나 인권존중에 관한 것도, 인종차별이나 화학 및 핵묵, 또는 온실효과와 기후변화, 또는 정의에 관한 국제적 협약에 관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확시히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p 85)

 

● 소비에트식 공산주의는 실패했습니다 .

   극소소의 인간이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독점하도록 허용했던 결함 때문입니다. 

21세기 미국식 시장자본주의도 똑같은 이유로 실패할 것입니다. 

 두 제도 모두 인간의 지성에 의해 구축되었지만, 인간본성에 맞지 않아 결국 와해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p 87)

 

 

노암 촘스키의 외로움

 

아룬다티 로이, 이 인도 작가의 다섯번째 정치평론은 노암 촘스키에 대한 존경과 호기심을 가득한 분석서다. 

노암 촘스키 작 [국가라는 이유로]의 서문에 실렸다고 한다. 

궁금하다. 

인도에서 출간된 번역본에 실린 서문이었을까?

아니면 미국에서 출간된 원서에 작가의 초청을 받고 쓰인 서문일까?

어느쪽이던 로이 작가로서는 둘다 환영할 일이었겠으나 후자였으면 더더욱 감격했을 것 같다. 

 

아룬다티 로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노암 촘스키의 업적을 조명한다. 

첫째, 독재국가에서뿐 아니라 자유주의 국가라고 하는 곳에서도 거대 권력과 자본에 의해 여론이 조작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선구자가 노암 촘스키라 한다. 

 오늘날 이에 대해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았나?

 아니다!

 이 평론을 통해 소개된 노암 촘스키의 책에 따르면 미국이 베트남 땅에 저지른 갖은 폭력의 실상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물론 난 코만도나 람보 영화를 본적은 없지만 어찌되었건 헐리우드 영화들에서 베트콩 또는 아시아인들이 어떤 의미로 소비되어왔는지를 모르지는 않기에 나역시 너무도 자연스레 헐리우드의 시각으로 베트남전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아니 나는 대한민국 사람이기에 더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어쩌면 미국과 공범처럼 말이다. 

나 역시 한국 영화속에서 베트남전은 우리 한국 군인들의 용맹함성을 다룬 영화 상품에 넋이 팔려 한국군인들이 베트남전에서 저지른 만행과 폭력의 실상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베트남전에 참여함으로서 미국으로부터 받아든 달려가 한국 경제를 일으킨 종잣돈이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명의 눈동자도 보면서 미국이 제3세계의 힘없는 나라의 자유를 위해 얼마나 희생해왔던가만 생각했지

전쟁의 이면에 미국도 일본처럼 어떤 실속을 챙기고 또 한국 민족에게 어떤 만행을 저질렀었는지도 잊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앞선 칼럼들에서 로이가 이미 많이 한 얘기이긴 한데 반복해도 상관없다. 

미국은 분명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종결시킨 게임 체인저인것처럼 굴었지만

사실 미국은 전세계 민주정부를 뒤엎은 갖은 테러와 쿠데타에 항상 존재했다. 

이것도 나는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를 보면서 차라리 CIA 요원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응원했던 나를 부끄럽게 했다. 

노암촘스키를 존경하지만 나도 그가 비판한 족속들과 한통속의 마인드로 미국을 잊고 찬양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미국인이면서 미국을 비판하는 지식인의 자세. 

이는 다시 두 가지 관점에서 존경을 바치는 로이. 

첫째는 문장 그대로 미국인이면서 자신의 조국을 향해 날선 펜대를 날리는 지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두번 말해서 무엇하랴. 

미국 밖에서 떠드는 소리는 부시가 테러리스트들이 그랬다더라 폄하한 그대로 자신들 미국을 부러워하고 질투해서 하는 헛소리로 무시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미국내 인정받는 언어학자가 학자적 소임과 양심을 걸고 하는 소리이니 그 영향력이 미국 내에선 더 클 수 밖에 없다는 것. 

두번째는 그렇게 미국 정부를 비판하는 노암 촘스키의 방식에 대한 찬미다. 

자기 같으면 촘스키가 제시한 방대한 증거자료의 겨우 1/4만 읽어도 이미 넘어갈 것이라 한다. 

그러나 촘스키는 자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고충때문인지 정말 어마무시한 양의 자료들 속에서 주옥같이 핵심을 뽑아내더라는 것이다. 

이게 미국의 저녈리즘의 힘일까?

[녹색세계사]나 [사피언스 ] 그리고 [가비오따스]를 읽을 때도 그런 걸 느꼈다. 

적당히 자신의 주관과 소신을 담은 명문 몇마디가 아니라 방대한 정보들의 바다를 휘저은 다음에 역시나 만만챦은 분량의 알짜배기들을 촘촘하게 엮어낸다. 

아, 그레이엄 핸콕도 떠오른다 ([신의 지문])

 그런 책들을 읽고 있으면 작가의 이런 목소리가 들리는 것같다. 

이래도 안 믿을래? 이래도 납득을 못하겠어?

 

결국에 아룬다티 로이는 이렇게 이번 칼럼을 끝맺는다. 

아, 촘스키 진다바르!(p 111)

 

Zindabad가 무슨 뜻인지 찾아보니 

감탄사 인도 영어 진다바드(보통 지도자나 정치 운동 등의 이름 뒤에 붙여 찬성·지지를 나타냄)

이라고 검색된다. 

그렇다더라

 

 

소위 '자유시장'민주주의에서 여론이란 여론이란 다른 공장 상품들처럼 메이킹되는 것이다 (p 90)

 

● 기성체제가 여론은 관리하는 일에 돈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다는 사실에는 밝은 측면도 있다. 

 만약 시민들이 자신들이 행한 일의 진상을 알게 되면 취할 행동들을 염려하고 있다는 암시이다 (p 92)

 

● 전하지 않기, 슬쩍 언급하기, 여성 속옷 광고 옆에 일단 기사로 처리하기 

  (미디어의 여론 조작 유형 ) (p 92)

 

● 촘스키는 우리에게 '자유언론', '자유시장', ' 자유세계'와 같은 말들이 자유와 관련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 정부가 내세우는 자유는 세계 전역에서 다른 국민을 죽이고, 제거하고, 지배할 자유라는 것을 말이다. (p 95)

 

● 미국은 소름끼치는 토대위에서 세워진 '제국'이다 (p 97)

  

 

메소포타미아, 바빌론,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이 칼럼은 영국 메이저 언론 중 하나인 [가디언] 기고문이다. 

메소포타미아, 바빌론,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모두 문명의 발상지, 중동의 역사, 고대  등등을 언급할 때 나오는 유명한 역사적 지명이다. 

본 칼럼을 읽으면서 자꾸 제목을 의식하게 되었다. 

분명히 제국처럼 구는 (2차세계대전이 끝났는데도 말이다 !) 미국의 무자비한 폭격으로 유린당한 고대의 도시

그곳이 이라크에 있었다. 

 

여기에서 저자 로이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보다는 그 침공을 옹호하는 미국과 영국 언론의 편파적이고 가식적인 보도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비판 정도가 아니다 .

증오에 가득차서 저주와 비아냥이 절절할 지경이다. 

 

나는 사실 이라크 전쟁이나 그 이전 걸프전쟁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나마 아는 것도 여기서 로이가 비판한 언론의 관점대로 알고 있는 게 전부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전쟁은 끔찍한 거다. 

아무리 대의명분이 훌륭하다 해도 군인들의 목숨뿐 아니라 민간인의 희생이 불가피하다. 

세종대왕과 광해군은 그래서 어떻게든 전쟁을 피하려고 애를 썼다. 

세종대왕도 파저강을 정벌전을 벌일 때 아군의 피해를 줄이고 

계획한 국토수복의 목표를 위해 얼마나 따지고 재고 고심했던가?

 

그리고 우리는 한국전쟁을 겪었다. 

분단된 양 진영이 내가 살고 딛고 있는 땅을 그대로 전쟁터로 삼았고 동족끼리 총부리를 들이댄 끔찍한 전쟁이었다. 

그 싸움에서 사회주의자와 자본주의자만 죽은 게 아니란 사실이 민족의 비극이었다. 

거기다 미국을 위시한 연합군이 들어오고 나중엔 중공군이 쳐들어왔다. 

말이 좋아 한국전쟁이지 이건 거의 3차 세계대전이었지. 

그리고 미군은 우리 땅에서 양민들도 학살했다. 

전쟁은 그렇게 끔찍한 거다. 

 

그리고 우린 또 베트남전쟁도 치뤘다. 

이 전쟁도 사실 한국전쟁처럼 남과 북의 내전이었지만 여기에 미국이 끼고 한국도 엮여 들어갔다. 

오늘날 베트남이 한국보다 일본에 더 우호적인 게 이해 못할 사정도 아니다. 

그 놈의 이데올로기가 민족보다 우선한 것인가?

여명의 눈동자에서 제주도 그 경찰 간부가 그랬지. 

친일매국한 것 보다 빨갱이가 더 나쁘다고. 

왜?

해방되기전까진 그 빨갱이들도 일본놈이랑 싸웠다구,

조국 해방을 위해 싸웠다구!!

 

그러니까 전쟁은 나쁜 거다 ㅠ

전쟁, 전투 이런거에 휩쓸리면 선과 악, 정과 사, 본과 말이 다 뒤섞여 버린다. 

로이는 당시 이라크 전쟁 언론 보도 행태를 비판하면서 이것도 전쟁의 참상이었던 것을 고발하고 있는 거다. 

 

로이가 지적하는 (비단 로이만 알고 있는게 아니라 역사와 세계가 그렇게 인정하고 있는 ) 이라크 전쟁의 문제점은

세 가지다. 

첫째. 이라크 전쟁의 불법성. 

둘째, 미국과 영국언론의 편파성과 왜곡

셋째, 전쟁의 본질 

 

첫째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저지르는 불법적 침략전쟁이다.

미국은 이라크가 극악한 생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세계 평화에 방해되는 암종인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이라크는 이전 미국등의 경제봉쇄로 극도로 무기력해있고 전쟁 수행능력도 거의 없던 상태였다. 

사담 후세인을 거의 김일성 부자처럼 국제적 불량배 취급했지만 사담 후세인은 자국이 그렇게 코너에 몰렸는데도 끝내  생화학무기를 터뜨리는 막가파짓은 하지않은 의외의 점잔성을 보여주었다고 할까?

둘째 특히 미 CNN과 폭스 뉴스등은 미군에 의해 유린되는 이라크 민간인들의 참상은 외면하면서 

 미 백악관의 입장만 열심히 전달했다. 

전쟁과 봉쇄로 이라크내 수십만의 어린 아이들이 기아로 죽어가는데도 

겨우 배한척의 구호물품 던져주는 자선쇼를 크게 틀어준다던가. 

셋째 미국은 이라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이제 이라크를 재건하는데 앞장서겠다면서 이라크내 석유에 대한 독점권차지하려고 한다. 

 그것이 전쟁의 목적이었다. 그것이 백악관의 주인인 석유재벌, 미디어 재벌이 진짜 꿍꿍이였음을 폭로한다. 

 

● 쇳덩어리 미사일 몸통에더 미군 병사들이 메세지를 남긴다.  

   '사담에게 뚱뚱보 병사로부터'

  (미사일은 발사됐고 ) 건물이 무너지고, 시장과 집이 무너진다. 

한 소년을 사랑하는 한 소녀도, 

그저 형의 구슬로 구슬치기나 하며 놀고 싶었던 아이도 쓰러진다. (p 112)

● 바그다드에 수천발의 폭탄이 투하된 후, 민간인들이 살해되었을 때 한 미군 대변인은 이라크 사람들이 자폭한 것이라는 식의 암시를 했다. 

"너무 구식무기를 사용하다보니 미사일이 올라가다가 다시 떨어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p 115)

●  이 한물간 유엔이라는 계집은 이제는 평판이 예전같지 않다. 아직 월급은 많이 받지만 강등되었다. 

그녀는 세계의 경비일 뿐이다. 유엔 그녀는 필리핀인 청소부이고 인도인 하녀이며 ....멕시코인 파출부이다...

유엔 그녀는 사람들 똥이나 청소하려고 고용되었다. (p 120)

●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인종주의 전쟁이다. 

인종주의 정권들에 의한 인종주의 전쟁의 진짜 위험은 가해자, 희생자, 그리고 방관자 모두에게 인종주의를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p 124)

● (미국 정부 수장은 ) 미국의 내장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 내장의 청사진이 대량 유통되고 있는 이 때 미국이라는 이 제국은 더 빨리 작동불능의 상태로 빠질 수 있다. 

 스패너를 가져오라 (p 128)

 

 

인스턴트 제국 민주주의 

 

 

 

나는 지금 아룬다티 로이라는 인도 작가의 정치평론집을 읽고 있다.

이 평론집은 총 10개의 기고문이나 연설문을 모아놓았다. 

그중 아홉번째 칼럼 [인스턴트제국 민주주의]는 앞선 [메소포타미아 , 바빌론, 티그리스 유프라테스]의 내용을 다시 반복하면서 보다 확대하고 있다. 

아룬다티 로이는 이 8번째, 9번째의 주장을 미국 뉴욕에서 미국 시민들 앞에서 강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니 자연스레 저자의 인생역정이 의식된다. 

성공한 작가였던 로이가 자국내 댐 건설 반대 운동에 합류하면서 비판적 지식인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는 조국 인도를 넘어서 영국 , 미국에서도 울리고 있는 중이다. 

 

그녀의 날카로운 지성과 뜨거운 정열의 타겟은 처음엔 인도 정부였다. 

적어도 이 칼럼집 안에서 그녀의 목표는 미국으로 급회전 한다. 

아마 이것도 운명이었을 것이다. (문재인)

그녀가 처음 니르마다 강 계곡에 갔던 1999년 이후 그녀는 더이상 소설이 아니라 날선 사회비평문만 써왔다. 

그녀의 네번째 칼럼 [9월이여 오라]에서 말했듯이 전 지구에서 가장 폭력적인 세력이 그녀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p 63)

때문에 여기 아홉번째에 이어 마지막 칼럼도 본 칼럼의 연장선에 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아룬다티 로이. 

내게는 이렇듯 생소한 이름이지만, 

이제 그녀의 이후 행적은 그녀가 써온 또 다른 강력한 평론들, 보고서들을 통해 알게 되겠지.

그렇게 지구별에서 의미있는 발걸음을 계속 해왔단 것을...

 

 

● 저는 매수 , 야만성, 그리고 위선이 모든 국가의 굳어진 영혼에 각인되어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p 130)

● 넌즤시 둘러댐과 자기암시, 그리고 미국의 미디어기업, 혹은 다른말로 표현하자면 현재의 미국 민주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속 빈 대들보인 소위 '자유언론'이 유포시킨 명백한 거깃말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 133)

● 이라크 전쟁을 찬성했던 미국 여론은 미국정부가 조장하고, 이것을 미디어 기업들이 충실하게 증폭시켰던 거짓과 기기만이라는 층츠대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p 131)

● (사담 후세인을 지원했던 미국과 영국의 죄는 왜 추궁하지 않느냐면 ) 제국이 되면 사실이란 아무 문제도 안되기 때문입니다. (p 134)

● 제국은 전진하는 중이고 민주주의가 파쇄성 폭탄에 의해 당신의 집 현관까지 배달됩니다. (p 135)

● 이제 시리아가 잡아먹어도 좋을 만큼 살이 올라 있군요 (p 140)

● 모든 종류의 불법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저질러집니다. (p 143)

● 이제 민주주의란, 내용물이나 의미는 모두 사라진 그저 예쁜 조개껍데기, 공허한 단어에 지나지 않습니다. (p 142)

● 제 1세계 국가들에서도 민주주의의 여러 기관들이 사실상 변질되었습니다. 

정치가들, 언론 귀족들, 판사들 , 힘센 기업(로비스트)들, 그리고 정부관료들이 정교하고 은밀하게 결탁되어있습니다. 

(p 146)

● 여론의 합의를 만들어내던 시대에서 뉴스를 만들어내는 시대로 넘어간 것입니다. (p 147)

● 전쟁에서 이익을 보는 자들은 누구일까요? (p 150)

● (노리는 나라의 ) 사악함을 크게 부각시킴으로써 이런 속임수를 축소시키고 에둘러 치는 것, 이것이 바로 미국의 대 테러 법령입니다. (p 151)

● 미국정부는 9`11 사태 보고서를 은폐하였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 정부는 CIA의 테러경고를 무시했습니다. 

테러리스트들과 부지 정권이 한팀이었을지도 모릅니다. (p 154)

● (이라크전쟁을 옹호하고 그 댓가를 받아먹는 ) 이런 기업체 하나한가 호명되고, 공개되고, 그리고 보이코트되어야 합니다. (p 156)

● (세계에서 가장 깡패같은 ) 미국 정부보다 더 강력한 유일한 집단이 바로 미국 시민사회이니까요 (p 156)

● 이제 역사가 여러분에게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p 158)

 

 

새로운 미국의 세기

 

 

이제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아룬다티 로이의 인생역정 속에 10편의 정치평론 그 마지막장에 도착했다.
이로써 로이는 소설가로서 세상에 발을 딛어놓구는 세상을 바꾸자는 선동가로 확실히 자리매김 한 모습이다!
미국을 두 번이나 방문하고와서 (한번이었을 수도?
산타페 갔다가 뉴욕에 들렀다?)
다시 조국 뭄바이에 와서 세계사회포럼 기조연설을 올렸으니까

칼럼도 제대로 선동문이다!
지금까지 미국이 세계를 자신의 식민지로 삼아 단물 쪽쪽 빨아먹으려는 야욕으로 어떻게 제국주의 국가 노릇을 해왔는지
충분히 설명 듣고 증거들을 봐왔다.
이제 이를 막아서기 위한
깨어있는 자들의 행동이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한 충언이다!

요즘 우리나라 국격은 올라가고
일본과 중국이 헛지랄 하는 뉴스들을
레가시 언론이 아니라 유튭을 통해서 자주 듣고 있다.
어쩌면 일본이나 중국은 아베 등의 자민당 정권과 시진핑 주석 등 정권 수반이 도덕적 정치적으로 무능한 탓이라는 그간의 내 생각이 아주 근시안적인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시진핑이던 아베던 기시다든 바이든이든
' 신자유주의' 하의 세계 자본주의는 이미 애덤스미스가 기대한대로 보이지 않은 손에 굴러가는 선한 의지를 상실했다.
누구 말대로 '보이지않는 주먹'= 거대 기업의 이권과 로비, 결탁에 의해서 좌지 우지되는 현실인것을 알았다.

한편으로는 우리 나라 재벌은 이에 비해 순진해 보이기까지 한달까!
과거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정계에 들어선 이후
갈라진 기득권 진영
그로인해 헌정 최초의.정권교체가 이뤄질 수 있었고
현대가는 이후 그룹이 조각조각 나눠지며
1위 재벌의 명예를 삼성에게 넘겨주게 되었지
그러니까 미국 의회와 정부에선 관련 기업 출신이 요직을 차지해서 기업우호적인 정책과 콩고물이 무성한데 반해
한국의회를 장악한 건 검사 변호사 등의.법조인 출신들이다.
특히 검사 출신이 압도적이다.
대한민국은 그래서 검사출신들이 재벌회장도데려다가 그누구도 알수 없는 모종의 짓을 벌인후 자살시킬 수 있는 나라다.

한가지 더 새롭게 세상을 보는 눈.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에 파병을 했더란다!
이걸 까먹고 있었다!
이 미국이  저지른 반인륜적 패륜적 전쟁에 또 한국을 끌고들어 갔던 것!
아룬다티 로이는 이런 명망있는 정치지도자들의 배반적 행적의 또 다른 사례로 브라질 룰라 대통령과 남아공 만델라 대통령을 들고 있다.
하긴 김대중 대통령도 IMF에 끌려다니며
비정규직 허용하고 정리해고법 통과시키며 그렇게 산업구조를 미국식으로 튜닝해줬다.
덕분에 이나라 자영업자 비율이 40% 가 넘고
자영업자들의 피튀기는 전쟁터가 되었다.
얼만 전 남아공에선 폭동이 일어났다.
만델라때 바뀐 법들로 해고된 빈민들이 산업현장에 돌아가지 못하고 인종차별시절보다 더 악독한 빈곤과 계급차별에 시달리는 나라.

세상은 어느 한가지 면만 있는게 아닌거다.
그러니까 로이는 말한다.
민중이 나서야 한다고!
요즘 나도 그런 마음이.다시금 들고 있다
도대체 대통령 한명 바뀔때마다 나라 살림과 수준이 롤러코스터다!
꼭 왕조시대 임금 바뀌는.것과 무슨 차이던가
이럴 수록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가 더욱 탄탄해야 할 것 같다!

다만
이명박이 댓글부대 일베 양성화 시킨거 회복시키는 거랑
친일언론 개혁하는 거랑
검찰 정치화 차단하는 거랑은
이 거시 담론은 절대 포기 못하겠다.

 

 

● 제국주의에 대해 논쟁읏 벌인다는 것은 마치 강간에 대해 토론하는 것과 같습니다.(p160)

과거 55년간 대형댐 공사만으로도 인도에선 3천3백만에서 5천 5백만명이 자신의 삶터에서 쫓겨났습니다 (p163)

왜 미국이 영곽산 의류보다 방글라데시아산 의류에 20배 이상 세금을 부과하는가?
왜 전세계코코아열매 90%이상 재배국들이 초콜렛 생산량은 겨우 5%인가?
미국 농부들에는 하루 10억씩 보조금을 쓰면서 인도같이 가난한 나라가 전기보조금 주려는 건 막는가?
왜 식민지 에서 해방된 뒤에도 여전히 종주국에 빚을 지고 있는가?
(p167)

룰라나 만델라 등 지도자의 개인적 카리스마나 화려한 투쟁경력이 기업카르텔의 콧대를 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 혹은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p168)

급진적인 변화는 정부에 의해 수행될수 없습니다
오로지 민중의 힘에 의해 실현될 수 있을 뿐입니다.(p168)

우리는 진짜 목표물에 초점을 맞추어 진짜 투쟁을 벌여, 실제 타격을 가해야 합니다.(p169)

때때로 우리의 결심을 시험하기 위해서라도 뭔가 이겨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p170)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는 불평등을 영속화하고 미국의 헤게모니를 확립하고자 하는 기도입니다.
세계사회포럼은 정의와 생존을 요구합니다(p172)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지금 전쟁중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p173)

 

 

[해설] 댐을 부수는 사람 -마들렌 번팅

 

연설문과 기고글 열 개를 읽고 나면 주인공 아룬다티 로이와 심도있는 인터뷰을 만난다. 

이 글을 쓴 저널리스트는 오늘 나처럼 아룬다티 로이에 대해 갖고있는 모든 질문들을 갖고 그녀를 만나 나의 많은 궁금증을 해소해줬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로이 그녀가 어쩌다가 성공한 작가에서 이젠 반세계화, 반미반제 투사가 되었는지에 대해 궁금했던 것. 

물론 책을 읽으면 답이 다 오고 로이도 인터뷰에서 같은 대답을 하긴 했다. 

그러나 그녀의 등단 이전의 이력과 평소 삶의 태도들에 대해 상세히 알면서 듣게 되니 그녀가 그렇게 인생의 행보를 결정한 모든 것들이 더욱 대단해보였다. 

 

세상을 향한 그녀의 관심과 애정은 고향에서 자란 어린시절부터였다고 한다. 

그녀의 첫 소설 [작은것들의 신]은 그렇게 그녀를 둘러싼 자연의 작은 생명체들을 통해 그녀의 깊은 감수성을 드러낸 작품이었다고. 

그러니까  (미사일은 발사됐고 ) 건물이 무너지고, 시장과 집이 무너진다. 

한 소년을 사랑하는 한 소녀도, 그저 형의 구슬로 구슬치기나 하며 놀고 싶었던 아이도 쓰러진다. (p 112)

라는 문장이 나올 수 있었는가 보다. 

'전쟁은 그 자체로 끔찍한 것입니다'라는 테제가 그녀의 작가적 터치에 보다 전쟁의 참상을 보다 실감할 수 있는 명문이 되게 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 감수성 때문에 그녀가 가진 높은 도덕성이 설명된다. 

첫 소설로 놀라운 성공을 거두고 출판사에서 포상휴가처럼 전 세계 여행을 다녀온 그녀였지만 조국에 돌아와서는 자신의 부와 명예가 거추장스럽고 죄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고 한다. 

또한 댐 반대 투쟁을 계기로 사회적인 이슈에 목소리를 내면서부터는 인도 조국 안에서 자신의 성공에 대한 죄책감을 터는 계기로 삼기도 했다니. 

 

이후 아룬다티 로이라는 한 사람의 여성, 인도인, 작가, 사회운동가로서 그녀의 여러가지 모습들에대한 진지한 고백들이 이어진다. 

이게 20년전의 인터뷰이니 이제 그녀 나이 60이 다됐겠구나. 

저자 약력을 구글링해보면 이후로도 그녀의 화려한 전적을 알수 있다. 

그러나 이 2003년 인터뷰에도 당사자인 로이가 직접 선언했듯이

더이상의 소설은 쓰지 않았다.

그녀 스스로 그렇게 결심했다고 한다. 

 

● 세계화란 소수의 사람들은 점점 더 밝게 비추면서 나머지 사람들은 어둠속에 잠겨버리게 하는 빛 같은 거지요 (p 184)

● 사물에 대해 생각하고 세상에 참여하다 보면,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끔찍한 고통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럴 때, 이 모든 것과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하는 일의 과정을 즐기고, 가장 슬픔이 깊은 곳에서라도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

(진실이 아니라고 외칠 때 ) 최대한 행복한 모습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p 186)

● '되돌아가서 인생을 산다'는 것은 무책임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자기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고 (이것은 운이 아니알 힘겨운 노력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 아무에게도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존성이란 일종의 이기주의라고 생각한다. (p 189)

 

 

 

 

이렇듯 책 한 권을 통해 만난 인도 작가와 인도 , 그리고 미국이란 나라의 새로운 모습.

또하나의 안경을 선물 받은 기분이다. 

아룬다티 로이를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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