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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훔친 소설가 18. 주인공 없는 서사시. 안나 아흐마토바 본문
≪주인공 없는 서사시≫
초판 발행년도가 2003년이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거늘 러시아어 발음 표기가 이상하다
그냥 경음화일세...
여기 티스토리는 처음이지만 다른 SNS에서 직전까지 달려오던 목록이다.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건너뛰었다 ^^;;;;
그건 어디 내가 무인도에나 혹은 하얀병원에 장기 체류할 일 있을 때나 이 책 꼭 갖고 들어가기다 ㅋㅋㅋ)
내가 이 목록으로 달리며 늘 갖는 궁금증인데....
<<뇌를 훔친 소설가>>에선 이 작품을 두고 뭐라 했더라? ㅎㅎ
조만간에 목록의 원출처를 다시 영접해야 하겄다.
책 속에 담긴 저자 안나 아흐마또바.
1889년에 태어나 1966년에 사망.
자화상인지 초상화인지 모를 시인의 그림들.
이 위대한 러시아 시인의 시들은 그냥 어느 시골마을 가련한 여인의 청승같아 보여도
시를 쓴 당시의 자신이 발을 딛고 선 땅과 연도를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그 곳의 강과 나무 , 집과 바람, 새들을 보면서 쓴 시이기에 지명 정도는 이번기회에 찾아보는거다.
사실은 이 책을 이번에 두번째 읽은 거다...
읽은 지 한참 되었고 다시 이 목록을 읽기 도전하는데 작년 (제작년? ^^??) 마쳤던 거 다시 복습하며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이번기회엔 지리공부도 함께 했다.
내가 시집을 읽는 방법 ㅎㅎㅎ
이 목록으로 달리다보니 집안에 남는 공책이 더는 없다 ㅎㅎㅎ
이제 굴러다니는 포스트잇들 싹 털었다
책상이 좁아 책에 남은 건 더 많다 ㅎㅎ 덕지덕지 붙은 포스트 잇 떼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ㅎㅎ
묵독보다는 필사하며 읽을 때 심상이 더 잘 들어오는 것 같다.
필사는 여러모로 치매예방에 좋은 것 같다 ㅎㅎㅎ
<<주인공 없는 서사시 >>
처음엔 집중이 안되고
별 감흥이 없다.
외국시인이라면 특별한 시적 표현을 기대하지 못하더라도
멋진 시상이나 찬미들이 나올것을 기대하는데
그냥 구석 시골 아낙의 한숨같은 느낌만 있고.
참다참다 역자 후기와 작가정보들을 읽었다.
그리고 그가 어떤 스타일의 시를 쓰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알았다.
덕분에
후에 「레퀴엠」과 「주인공없는 서사시」 에 이르러서는
작가의 삶속에서 나온 고백이고 응어리인게 보여져서 시에 몰입할수 있었다.
특히 「레퀴엠」!
러시아 혁명과 특히 스탈린 시대를 겪으며
두 남편을 잃었고
자식을 시베리아로 유형보낸 시대와 여인의 아픔을 시인의 숙명과 함께 절절하게 썼다
내가 다시 이 시를 읽을수 있을까
하루키는 감동받은 책은 몇번이고 다시 읽는다는데
100권을 읽는 것보다
1권을 백번 읽은 사람이 무섭다고 한다.
이 시인의 책은 그런점에서 한번 다 읽었다고 떠나보내기엔 아쉬움이 많다.
라고 그 sns에 기록해 두었는데 그때의 아쉬움이 내 무의식 속에서 이 책 복습하라고 채근을 했나보다 ㅎ
그런데 여전히 초반부에선 그냥그냥 했다.
시집은 총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시인이 발간한 시집의 순서대로 설정된 목록이다.
첫 번째 장 저녁은 1912년 .그녀 나이 24세 때에 곧 첫 번째 결혼 후 3년만에 발간된 첫 시집의 제목이다.
바람아 나를 묻어다오
정든 이 아무도 오지 않고
떠도는 저녁과
고요한 대지의 숨결만 찾아든다.
너처럼 자유롭던 나
너무도 살고 싶었다
아무도 돌볼 이 없는 차가운 내 육신을
바람아, 보아라.
저녁이 만든 어둠의 옷으로
이 검은 상처를 덮어다오
내 위에서 시를 읽어주고
푸른 안개에개 전해다오
바람아! 마지막 잠이 든
외로운 내 영혼을 위하여
내 봄을 위하여
키다리 사초처럼 울어다오
-1909년 ,끼예프
p 16
헐떡이며 소리치는 나
"농담이었어요. 가버리면, 난 죽어요"
그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내게 말했다.
" 바람 부는 데 서있지 마."
p 27 「검은 베일 아래로」 중에서
그러함에도 이 시의 청승스러움이 내 마음에 와 닿았던가보다.
내내 연인을 향한 그리움, 외로움 , 지고지순한 사랑을 표현하는 언어들.
미소짓는 나
입술은 거의 움직이지 않지만
당신을 위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미소를 내게 준 건 사랑
당신이 파렴치하고 사악해도 상관없고
당신이 다른 이를 사랑해도 상관없다.
p 53
캬~~!!!
러시아 음악 아름다운 곡조에 빠져 있다보면 러시아 정서와 한국의 정서가 비슷하단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이 시를 보니 프랑스 여인, 미국 여인, 영국 여인도 할 수 없는 고백이라고 생각한다. ‘
이렇게 사랑을 갈구하는 애절한 목소리는
그 다음 시집 곧 이 시집의 두번째 장 <<묵주>>에서도 이어진다
특히
사랑받는 이는 늘 요구만 하나
사랑하는 이는 아무런 요구가 없다 .p 55
이런 시를 보면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던 김소월도 생각이 났다 ㅎㅎ
1917년 발간된 세번째 시집으로 꾸린 <<하얀 무리>>장에선 한 여인이기만 한 것이 아닌 보다 예술가로서 자각하고 고뇌하는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대개는 제목이 없는 시들이 많은데 여기 '1914년 7월' 이라는 제목이 붙은 시를 보자.
불타는 냄새 . 사주 째
마른 석탄이 늪에서 타고 있다.
오늘은 새들도 울지 않고
이제 독사도 떨지 않는다.
"무서운 심판의 날이 온다.
곧 새로운 무덤으로 가득차리라
기아, 지진, 역병
천체의 비치 사라지는 날을 기다려라."
불타는 숲에서
노간주나무의 단내가 스며 나온다.
병사의 아내는 아이들 위에 엎드려 흐느끼고
과부의 통곡이 온 마을에 메아리친다. p 80~81
시인이 예리한 눈과 귀를 열어 자신의 주위에서 혹은 그 옛날 과거에서 일어난 (왜냐면 난 러시아에 대해 잘 아는게 없어놔서 ^^::) 일들을 통해
하늘이, 새들이, 징그러운 파충류가 고통하는 모습과 과부가 통곡한다는 소리를 듣고 , 자기 자신에게서 아닌 외부에서 오는 이 파란을 해석하려고 애쓰는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세상에 있는 자신의 사명이 그래서 기도 혹은 노래로 표현되어 부르는 선언들
그 어딘가에 소박한 삶과.
그 어딘가에 소박한 삶과
따스하고 즐거운 투명한 빛이 있을 거야.
그 곳엔 해질 무렵 담 너머로
소녀와 잡담하는 이웃이 있고
그네들의 사랑스런 속삭임을 엿듣는 꿀벌이 있으리
그런데 우리는 힘들고 괴로운 삶을 살며
고통스런 만남을 축복한다.
지각없는 바람이 갑자기 몰아쳐
겨우 시작된 대화를 끊을 때에도
영광과 가난의 이 장엄한 화강암 도시
넓은 강에서 반짝이는 얼음덩이
햇볕도 들지 않는 음산한 정원
겨우 들리는 뮤즈의 소리를
우리는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거다. p84
아흐마또바의 시에는 여러 격언과 선배 혹은 동료 시인의 시구들이 많이 인용되는데 그 중에 러시아 국민 시인 푸쉬킨의 시귀도 몇구절 나온다.
난 이 시를 보고 푸쉬킨의 그 유명한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지 마라"가 떠올랐다 ㅎ
그러나 아흐마또바의 시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시어는 슬픔과 외로움이다.
그나저나 이 시 참 좋다 ^^
저녁 빛 사방으로 익어가고
저녁 빛 사방으로 익어가고
사월은 신선한 애무를 한다.
해마다 당신은 늦게 오지만
여전히 당신은 내게 기쁨이다.
이리와 가까이에 앉아
즐거운 눈길로 바라보라
어린 시절의 시가 있는
내 푸른 노트가 여기에 있다.
태양빛을 즐기지 못하고
슬프게 살아온 나를 용서하라
너를 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인 나를 용서하고, 용서하라.
-1915년 쯔르스꼬예 셀로.. (황제마을 ) p92
그녀가 이혼후 네번째 펴낸 시집 <<질경이>>와 <<서력기원>>으로 시는 계속된다.
창문에 커튼이 없어
내 살림방이 훤히 내다보여요
난 지금 행복해요
당신은 떠날 수 없어요.
나를 죄인으로 부르고
나쁜 마음으로 희롱하세요
난 당신의 불면증
당신의 고민거리
첫남편과의 결혼 생활 내내 상사병을 앓더니 재혼해 산 남편과는 아예 자학을 할 정도로 그렇게 피폐한 가슴앓이를 했던 것인지..
역사학자였던 두 번째 남편이 시인더러 시를 쓰지 말라고 그렇게 핍박하였더랜다...ㅠㅠ
지금 노래를 듣고 싶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 p 99
꾀꼬리가 슬피우는 소리를 들으며 p 100
자살하고픈 슬픔에 잠겨 p 101
이리로 오라
죄로 물든 황폐한 너의 나라를 버려라
러시아를 영원히 버려 라 " p102
라고 내내 울부짖고 절망하고 몸부림치다가
왜 이 시대는 과거 시대보다 더 나쁠까?
슬픔과 불안으로 멍해진
그가 검은 재앙을 건드렸으니
그 재앙은 치료될 수 없다. p 106
이라고 세월을 탓하기 까지 하는 시인.
그저 시인의 개인사에만 환원해서 시를 이해하는 건 여러모로 편협한 방법이긴 하다.
시인은 자신 뿐 아니라 당시 소련이 맞닥뜨린 역사 속에서도 신음하였을 것이니...
우리 모두 삶의 손님이며
삶이란 - 습관일 뿐이다. p 166
오래 전부터
난 동정 받는 것을 싫어했으나
몸속에 태양을 간직하듯
당신이 준 한방울의 연민을 지니고 간다
주변에 노을이깔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p168 「다섯」 중에서
둘도 없는 목소리가 어제 조용해졌고
숲의 대화자가 우리를 떠났다
그는 이삭에 삶을 베풀었다
가는 비를 찬미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꽃들이
이 죽음을 향해 꽃피웠다.
그러나 지구라 불리는 공손한 이름의
혹성에 갑자기 침묵이 깃들기 시작했다, 「시인의 죽음」 전문 p172
푸쉬킨도 생각나고 김소월도 떠올렸던 아흐마또바의 시의 강은
이제 <<레퀴엠>>과 <<주인공 없는 서사시>>로 대미를 이룬다.
우선 <<레퀴엠>>
제목부터 장송곡이다.
1935~1940
아니다, 타국의 하늘 아래도 아니고
나를 감싸주는 타인의 날개속도아니다. -
그때 나는 불행한 내 민족과 함께
이 땅에 있었다 -1961년
이 프롤로그 같은 몇 구절과
서문을 대신하는 글 p 173
헌시 p174
서시 p 176
등등으로 여러겹의 문을 열더니
각 1부터 10까지 번호를 매긴 시들 중에 선고 (7), 죽음에게(8), 십자가에 못박힘 (10)을 가운데에 채워넣은 후 아주 길고 긴 에필로그로 마무리를 했다.
이런 형식은 <주인공없는 서사시>에서도 그대로 사용되었다.
내용이 좀더 많을 뿐이지.
이 두 서사시들은 세 가지 면에서 앞의 시들을 압도하고 또 초월하는 작품이다
첫째는 방금 짚은 대로 다양한 형식을 갖추었기에 방대한 그 양.
그리고 두 번째는 앞서 개인적 서정과 정서를 초월하여 민족과 나라의 운명을 노래한 광대한 주제의식 .
그리고 세 번째는 결국 같은 이야기인데 내가 안나 아흐마또바 시인에게 가졌던 첫인상-시골 아낙네의 청승 같더라는-과 우리 언어가 아닌 번역시의 한계에서 오는 시적 감흥의 장애가 있었던 것이 이 위대한 서사시들을 통해 훌쩍 감동과 몰입으로 인도 될 수 있었던 것.
한마디로 장엄한 세계인식과 웅장한 노래,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러시아 예술 특유의 비장함을 느꼈다는 거지.
서시
죽은 자만이 미소지으며
평온을 기뻐할 때
레닌그라드가 필요 없는 부가물처럼
교도소 주위를 배회할 때
고통으로 의식을 잃은 채
선고받은 수인의 무리가 걸어가고
열차의 기적이
짧은 이별의 노래를 부를 때
죽음의 별이 우리 위에 떠있고
죄 없는 러시아는
피 묻은 군화와 검은 마리아의 쇠 바퀴에 집밟혀
고통으로 몸부림쳤다.p176
이 병든 여인
이 외로운 여인
남편은 무덤에,아들은 교도소에
나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p 178
너를 집으로 보내 달라고 17개월을
애원과 통곡으로 보냈다.
형리늬 발아래 무릎을 꿇고서
내 아들이 나의 두려움이다.
모든 것이 영원히 뒤엉켜진 지금
난 누가 짐승이고
누가 사람인지 구별할 수 없다.
처형의 남은 나을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나 p 180
몇 주가 지나도
무엇이 일어났는지 소식을 알 수가 없다.
사랑하는 아들아
백야가 네 감방을 여떻게 엿보고
불타듯 이글거리는 매 같은 눈으로
너를 감시하는 사람들이 또다시
너의 높은 십자가와 죽음을
어떻게 이야기 하는지...p 181
주인공 없는 서사시
안나 아흐마또바.
제정 러시아와 공산주의 소련 치하를 겪으며
남편과의 이혼, 이혼한 그 남편이자 아들의 아버지의 정치적 사형 그리고 이어 본인과 아들의 숙청을 겪으며 그렇게 사회주의 소련의 전제정치에 , 두 개의 세계 대전에 휩쓸렸던 한 많은 여인이자 러시아를 대표하는 국민시인이기도 하였던 .
<<뇌를 훔친 소설가 >>덕에 , 정확히는 이를 추천도서목록에 올린 도서관 덕에 이 러시아 시인과 그 작품들을 만나게된 것은 행운을 넘어 운명같은 느낌도 든다.
특히 안나 아흐또바는 1950년대 전반을 우리 나라 시조 작품을 번역하여 러시아에 소개하는 일을 주로 해왔다고 한다.
원전을 분명 한국 본서로 하였다면 그녀는 분명 한국어에도 능통하였다는 것일지니...
그 때 아흐마또바가 만난 시인들이 이름은 김종서, 성삼문, 유은서, 이색, 이황, 정철, 윤선도, 조헌, 황진이, 김수창 등등이라고 한다.
역시 책은 여러번 읽어야 하나보다...(내가 또 이럴 거란 장담을 못한다 ㅋㅋ)
다시 만난 <<주인공 없는 서사시>>
안나 아흐마또바의 아름다운 삶과 시에 감사한 이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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