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홀릭
조선직업실록.정명섭.북로드 본문
『조선직업실록』
- 역사 속에 잊힌 조선시대 별난 직업들
저자 양반 이력이 흥미롭도다 ㅎ
평범한 직장인 때려치우고 파주 출판마을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다가 책의 바다에 빠져들더니
이제는 커피 때려치우고 전문 작가로 활약중이시란다 ㅎ
제목부터 재미져 보이는 책을 많이 썼다. (읽은 건 없지만 )
『연인, the lovers』 ,『혁명의 여신들』,『암살로 읽는 한국사』,『조선전쟁생중계』,
『역사 공화국』 시리즈, 『폐쇄구역 서울』, 『마의』, 『조선백성실록』 등등.
저자 서문 ‘들어가며’에 공포된 저자의 포부가
‘ 조명되지 못했던 역사를 들여다 보는 것이 창작과 역사, 소설과 인문서 사이에 절묘하게 끼어있는 나의 역할’이라고 말한 부분이 있는데
실제 읽고 보니 정말 감추어져 있던 조선의 다양한 직업군을 살았던 백성들의 모습이
영화처럼 대사와 지문을 가지고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역사학도와 극영화꾼에 절묘하게 끼어있는 저자의 글발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한마디로 참 재미지다 이 소리!
1부 나라의 녹을 먹고 살다.
실록 속에서 언급되어 실제 나라에서 창설한 직업군들인데 오늘날과도 분명히 매치되는 엄연한 공무원들이다.
멸화꾼-소방관,
체탐인 –국정원
한증승과 매골승-장례원
다모-여형사
오작인-검시관
숙수-청와대 요리사
그리고 시파치와 오작인 숙수.
2부 스스로 벌어 먹고 살다.
여기 나오는 직업군들은 조선 중기 이후 자본주의의 맹아가 발전하면서 상업이 발달하고
신분 사회가 요동친 시대상 속에서 볼수 있는 모습들일 것이다.
기인, 외지부, 여리꾼, 전기수, 책쾌, 장빙업자, 재담꾼
3부 무엇이든 해서 먹고 살다.
장의 제목 그대로 별 희한한 직업군들이 다 있다 ㅎ
곡비, 매품팔이, 내외술집, 조방꾼, 거벽, 사수, 선접꾼, 추노객, 무뢰배
이야기는 정말 어렵지 않다.
정보는 알차고 근거도 충분히 역사학적인데 이를 묘사한 저자의 필력이 놀라워서
당시 조선시대 저자거리 주막에 앉아 입담좋은 이야기꾼의 찰진 재담을 듣고 있는 기분이다.
정말 재밌다 ㅎ
1부 나라의 녹을 먹고 살다.
1. 멸화군
세종 8년 2월에 한양 도성 안에서 연이어 대화재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체계적인 화재 진압 부대를 신설했는데 이는 세조 대에 궁궐내 화재를 계기로 일종의 상설부대로 보다 체계화 되었다고 한다.
멸화군들이 도끼를 소지했다는 게 신기했는데 정황인즉슨 불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보다 차단에 중점을 두어 불타고 있는 건물을 얼른 붕괴시키는 일에 썼다는 것.
멸화군이 소속되어있는 이 화재전담부서 금화도감의 생명은 길지 못했다.
성종조 이전에 폐지되었다가 수성금화사라는 부서로 부활했지만 얼마 못가 또 폐지되었다.
이는 당시 관료들이 이 부서가 그리 실효적이지 못해서라고 판단해서였는데
저자는 그러나 세종 8년의 한양 대화재 이후 실록에 더는 대화재의 기록이 많이 없는 것을 보면 멸화군들의 예방 활동 업무의 효과가 전혀 없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민족의 안전불감증은 전통이 있는 것인가보다.
원래 재앙이란 일이 무사한 평상시에 대비하고 조심하는 것이다.
평상시에 아무 일 없다고 쓸모없는 조직 평가를 내렸다는 것일진대
그래놓고 그 인구 빾빽한 한양 초가 &목재 건축물 응집체가 멀쩡했다는 것이
조선 천지신명의 가호가 아니면 무엇이었겠노....
재미난 새로운 정보 하나!
당시 북쪽 지방 사람들은 원한을 산 사람에게 불을 질러 복수하는 성향이 있었다고 ㅎㅎㅎ
아 무셔라 ㅎㅎ
02. 체탐인
실제 실록에 기록된 기사를 마치 사극 속 드라마처럼 실감나게 극화시켰다 ㅎ
다섯명의 체탐인 중 한명의 불행한 낙오를 2021년에 애도하노라.
우리 대한민국엔 현재 이런 국경선이 없는데 ( 삼면이 바다, 위로는 북한과 대치한 휴전선)
당시 조선에는 특별한 철책선도 없고 그저 산과 강이 , 경계가 되어 평상시에도 수시로 오가는 그런 곳이 보이지 않는 국경의 선을 이루었던 시대 이야기.
당시 여진족과 영토를 다투던 시기 , 우리 민족 최고 최대의 영명하신 전하 세종의 활약상이 더 재미진 챕터였다.
세종 전하께서 이렇게 뭐하나 꽂히면 기발하기 이루 말할 것 없고 끝장을 보는 성격이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적진에 침투해서 염탐을 하는 일이면 아예 사형수를 투입하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신하들과 길고긴 설전을 벌이셨다고 ㅎㅎㅎ
그러나 체탐인의 운명도 오래가진 못했다고 한다.
우선은 세종조에 지금의 국경선이 확립되면서 여진족들과 영토 경쟁이 종식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종 전하가 이후로도 200년을 더 사셨다면 여전히 체탐인을 활용하셨을걸!
한양 도성의 문신들은 일단 불이 꺼지면 더는 지역 현장의 일에 관심이 없다, 관심이!
쯧쯧쯧
03 한증승과 매골승
승유억불국가 조선의 승려 활용법
한증승 : 빈민전용 한증막, 치료기능을 더했다고.
역시나 이때도 우리 세종전하 활약하시길 한증막을 이용할 때 의사도 동행케 했더라는.
매골승 : 무연고 시신을 수습해주는 일.
예조에서 활인서 중심으로 시신 매장의 업무를 관장하도록 고용
04. 다모
저자가 지적한 대로 그 옛날 하지원과 이서진이 나온 그 유명한 드라마 제목을 떠올릴 수 있는데 실상은 이와 다르다네 ㅎ “아프냐?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ㅋㅋㅋㅋㅋㅋㅋ
다모라는 이름 그대로 관청에서 차심부름을 하던 여종들이 어느날부턴가는 사대부나 여염집 여인들을 상대하는 일에 특별히 부름 받고하다보니 점차 그 쓸모를 인정받았던 케이스라고.
다모? 주모! ㅋㅋㅋ
실제 조선 후기 다모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도 있고하여 후손들이 다모에 대한 환상을 가졌을 법 하다. <다모전>(손지양)
어찌되었건 포도청에서나 지방 관청에서 일하였으면 엄연히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었다는거 ...
비록 신분은 노비였을지라도...
05. 시파치
이름은 뭔가 있어보였는데 그러고 보니 갖바치도 있구나 --;;;
매잡는 공무원이란다.
세종실록을 보면 이 매잡는 이야기가 디게 많이 나온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매가 참 많았구나...중국이 그렇게 우리 나라 매를 좋아했구나...
명에 바치는 조공품이 되다보니 애민정신 특심했던 세종도 매를 다루는 시파치들을 함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초반엔 나라 사정으로 대접도 받고 벌이도 나쁘지 않았지만 매조공도 줄어들고 매사냥도 나라의 눈치를 보는 시절이 되면서는 양반들에게 매를 이용해 꿩을 사냥해 바쳐야 하는 고달픈 직업으로 떨어졌다고
06. 오작인
오늘날로 치면 검시관이란 이야기.
오늘이나 그 시절이나 시체 만지는 일을 기꺼이 여길 사람 누가 있으랴.
망나니란 직업도 있었지...
맨정신으로는 못해서 늘 거하게 술한동이 걸치고 칼을 휘둘렀던 사내들.
오작인도 그랬지 않았을까?
그래도 망나니보다는 나았겠지..직접 죽이는게 아니라 주검을 붙들고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었으니...
검시관이라 해서 오늘날처럼 시신을 해부하거 하진 못했다 한다. 시신훼손은 그 유교시절에도 끔찍한 일이었으니까.
오작인 이야기와 더불어 당시의 꽤 과학적인 시체 검안 방식도 소개된다.
오늘날로 치면 시체해부학인 명나라 <<무원록>>을 더욱 발달된 과학적 사실을 적용해 개정한
<<신주무원록>>이 발간된게 역시나 세종대이렸다! 아 세종즈언하~~♡
문자로 기록된 오작인은 참으로 망측한 사람들이었다 하는데
그저 천대받던 직업이다보니 큰 일을 저질렀을 때에라야 겨우 언급이 되었으니 그런 오해를 받았으리라고 보인다.
07. 숙수
여기서 명확히 짚어주는 사실은 드라마 ‘대장금’에서처럼 궁중 대소사에 참여한 요리사는 그저 여궁인들만은 아니었다는 사실!
오히려 ‘숙수’라는 남자 요리사들의 직급과 체계가 엄연히 질서 있게 편제 되어있었다는 거.
숙수의 세계는 1605년 (선조) 조정관리들의 70세 이상 노모 경로잔치를 세밀하게 그림으로 기록하여 남긴 <선묘조제재경수연도>라는 그림을 통해 자세히 알수 있다고.
그런데 책에 그 그림은 안 나와서 직접 찾아 보았다.
현재 이 그림은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고 한다.
종6품 재부 : 대전과 왕비전의 음식을 책임지는 반감
종7품 선부 : 문소전(궁중 사당) 과 대전담당 환관들의 음식을 맡는 반감
종8품 조부 : 정원 2인. 왕비를 모시는 환관들의 음식을 담당하는 반감
대전 수라간 각색장 겸임.
반감 : 총주방장
각색장 : 주방장
숙수 :이하 조리사들. 신분은 노비.
-별사옹:고기담당
-반공 : 밥 담당
-적색:굽는요리
-주색 : 술 담당
-채증색; 채소요리
2부 스스로 벌어 먹고 살다.
08. 기인
조선판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조보라는 게 있다.
조정 소식을 짧게 엮어 궁안에서 교류하던 문서였는데
이것이 궁밖의 지배층 내에도 유통되도록 중간 다리 역할을 하던 이들이 이들 기인이라고.
원래 조보는 임금의 출납기관이었던 승정원에서 조정 정보 공유용으로 만들던 것을 선조 10년 8월에 조보의 민간발행을 요청하여 승인을 얻은 후에 발행될 수 있었다고.
그래서 승정원에서 기별서리로부터 조보 원문을 기인이 받아들고는 이를 해석할 수 있는 전직 기별서리 출신인 기인이 해석해서 금속활자로 나름 재편집해 인쇄한 후 이를 판해했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 책에 실린 기록대로라면 이 기별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고.
그해 11월 선조가 이 사실을 알고 관련자들을 엄히 문초하여 유배까지 보내면서 종식되었다는 것이다. 그후로 조선왕조에서 민간 조보는 더 이상 발행되지 못했다하는 것일진데.
그렇다면 추노에서 대길이가 송태하를 놓친 후에 송태하의 행적을 추적하기 위해 번화가의 책방에 쌓인 조보를 뒤지는 장면은 역사적 오류라 할 것이군 ㅋㅋㅋ
09. 외지부 – 신안군 하의삼도의 3백년 싸움
조선초 승정원 관원이 노비관련 업무를 도와주기 위해 관련 부서로 출장나와 일하던 지부라던 일이 조정 밖 일반에서는 외지부라 불렸다고.
조선조의 역사동안 외지부의 생성은 초반부터였는데 권력을 잡고 있는 양반가에선 외지부를 경멸하고 핍박했다 한다.
공연히 일을 들쑤셔 송사 거리를 키웠다는 것이다.
주로 법을 잘 아는 관청 추신 하급관리나 지방관 아전출신들이라고 한다.
오늘날로 치면 소송대리인, 즉 변호사나 법무사들이라 할 것이다.
조선에서 결국 외지부들을 인정하지 않아 소송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결국 관을 어려워하고 문서를 다룰 줄 몰랐던 힘없는 백성들이었다.
외지부가 합법적으로 허용되었더라면 결과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기대를 갖게 하며 유명한 소송이 소개된다.
신안군에 소속된 세 개의 섬 하의도,상태도, 하태도. 합쳐서 하의3도.
선조의 딸 정명공주가 풍천 홍씨 집안과 혼인할 적에 인조가 혼수로 내려준 섬이라고.
왕실 인척의 땅이 되나보니 규정된 공식 세목 전세와 삼수미 징수도 홍씨 집안 맘대로가 되어 고생이 많았는데 주민들이 독자 개간한 땅 160결까지 빼앗아가니 이때부터 하의삼도의 지리멸렬한 300년의 땅찾기 싸움이 시작된다.
그렇게 첫 소송을 제기했지만 서류부족이란 이유로 어이없이 소장 반려.
사헌부에다가도 하소연하고 50년을 별러 영조 임금에게도 호소했다지만 끝내 이 땅을 되찾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 초엔 오히려 일본인 변호사의 무료변론으로 땅을 찾나 했더니 재판에 질 것 같으니까 홍씨 집안에서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린다 ㄷ ㄷ ㄷ
일제 강점기에는 유명한 친일파 박춘금이 여기 연관되었다하는데 이 이름 넘 익숙하다!
여명의 눈동자에서 하림이랑 여옥이 이 박춘금을 암살하려고 했었쟎아 ㅋ
해방이 되어서도, 미군정하에서도 , 대한민국이 건국이 되어서도 돌아오지 않는 땅
전쟁 직후에서야 섬주민들은 정부로부터 매입하는 형식으로 겨우 땅의 권리를 찾았더라고...
캬~~
외지부란 직업에 대해 알려던 차 이런 기막힌 사연도 알게 된다.
그렇다고 조선이 무자비한 , 무법한 나라는 아니었다고 한다.
단지 외지부란 집업을 쓸데 없는 편견과 권위의식으로 무시했던 건 있었지만 삼송제도나 공소시효등 오늘날과 비교해도 손색 없는 법률체계를 갖고 있었다고.
당장에 이 홍씨 집안에 소송을 건 자체가 곧 왕을 상대로 하는 소송과 다를 바 뭐 있겠는가!
물론 무도한 판결이라기보단 야비하게 소송을 취하시켜버린 작태가 오늘날 법레기, 법꾸라지들 행태를 연상케하는 것 보면 법은 결국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달린 거고
힘없고 배운 것 없으면 그 법은 멀리 남의 편이 되버리는 현실은 똑같은 것 같다.
10. 여리꾼
여리꾼에 이끌려 가게에 이르렀더니 이 여리꾼과 주인의 대화
주인 :천불대야? 인불인이야?
여리꾼 : 천불대요.
주인 : 조불백으로 하지
여리꾼 : 욱불일로 주세요
주인 : 태불윤으로 하세나.
조선시대 시전은 오늘날 우리가 보듯 가게 앞에 물건을 좍 진열해 놓고 파는 그런 형식이 아니었다고.
물건은 가게 안 깊숙이 숨겨놓고 주인과 손님이 대화먼저 나눠야 하는 그런 구조..
때문에 오늘날의 ‘삐끼’같은 호객꾼이 상점주인에게나 낯선 손님에게나 누이좋고 매부좋은 중개인이었겠지.
그런데 이 대화는 이렇게 여리꾼과 주인간의 은어가 참 재밌다 ㅎ
해석한 대사로 다시 옮긴다.
주인 : 한명이야? 두 명이야? 天不大=天一大=一, 仁不人 : 仁-人=二
여리꾼 : 한 명이요
주인 : 자네 구전 조불백으로 하지. 皂不白: 皂-白=七
여리꾼 : 그러지 말고 9푼으로 해주세요 旭不日 : 旭-日=九
주인 : 그럼 8푼으로 하세나 兌不允 : 兌-允= 八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시전판은 오늘날의 장처럼 물건 늘어놓고 파는 그런 광경에서는 나올 수 없는 직업이고 장면들인게다.
당시의 판매광경도 재미지지만 이 한자 놀이로 은어만들기도 한 수 배웠다네 ㅋㅋ
11. 전기수
맛깔 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물이야 일제 강점기 변사를 떠올릴 수도 있고
또 소리꾼이 있었지.
소리꾼이 전하는 흥부가, 춘향가, 수궁가가 얼마나 듣는 이 애간장을 녹여대는 극적 재미가 충만한 이야기던가.
조선시대 재미난 직업 열한번째 전기수 이야기에서 더 재미난 건 정조의 문제반정이다 ㅋ
정조 이 임금이 참 여러모로 난 임금이긴 했지만 이렇게 또 놀라운 면이 있을 줄이야.
여기서는 이덕무가 소환되었는데 당대의 문필가 연암 박지원도 나중에 세도가로 악명을 떨친 김조순도 정조 임금앞에서는 순정하지 못한 문체로 한 소리 듣고 소위 반성문 격인 ‘자송문’이란 걸 써서 바쳐야 했다네?!!!!!
이덕무가 나중에 자신의 책에서 밝히길 그때 어전에 불려가 혼이 났을 때 예화로 든 게
이 전기수 이야기였다고.
임경업 장군 이야기를 실감나게 전해주던 전기수 한명이 듣고 있던 청중 한명에게 간신 김자점 이야기에 흥분해서 그 자리에서 칼을 맞고 죽었더라는!
당시 조선 최고最高의 ‘선비’ 이자 유학자였던 정조임금은 그렇게 클래식하지 않고 점잖지 않은 문체는 질색팔색을 하였더라네
혹자는 문체를 빌미삼아 당시 유력 붕당이었던 노론 벽파를 압박하려는 의도였다고는 하지만...
임금부터가 최고의 꼰대였던 시대였군 ㅎ
그 유명한 정조의 ‘문제반정’을 여기서 배웠네 ^^;;;;;
12. 책쾌
-정약용의 『조선신전』
-영조시대 금서 『명기집략』 수입에 연루된 책쾌 100명의 수난.
13. 장빙업자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2012)
서빙고(왕실 제사용 ) +동빙고 ( 사대부용 ) + 사빙고 (개인빙고)
석빙고와 목빙고
충남 홍성 목빙고 유적지
14. 재담꾼
-전기수 와 재담꾼 : 전기수는 이야기 중심, 재다꾼은 익살스런 개인기 중심
조수삼의 『추재기이』: 재담꾼, 조방꾼 등 조선시대 다양한 직업군의 인물들 사연 수록
『황새결송』 , 김희령의 『소은고』
3부 무엇이든 해서 먹고 살다
15.곡비
눈물 한 방울,동전 한 닢 세상에서 가장 슬픈 직업이 있다. 눈물 한 방울에 동전 한 닢씩이다. 동리에서 초상이 나면 그녀는 싸리문을 바라본다. 마음 가득 담아둔 눈물을 씨앗처럼 마당에 뿌리면서.... 곡비를 사러 온 상주가 마당에 싹을 ㅇ틔운 슬픔을 복 무릎을 친다. 당신의 슬픔을 사겠소. 눈물 한 방울에 동전 한 닢씩이외다. 그녀는싸리문을 나가기 전부터 운다. 차가운 방에 홀로 누워있는 어린딸은 울 기운조차 없는지 기척이 없다. 그녀는 운다. 슬피 운다. 하염없이 운다. 사람드링 고개를 끄덕거린다. 상주는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상여가 나가고 그녀는 꼬리처럼 따라간다. 맑은 상여소리를 따라 그녀가 눈물로 이어간다. 장례다 끝나고 두둑한 누물의 무게를 받은 그녀는 나는 듯이 집으로 달려간다. 내 딸아 내 딸아 조금만 기다려라 어미가 눈물 꽃으로 만든 밥을 지어줄게 내 딸아 내 딸아 너누 슬픔을 배우려무나 눈물 한 방우레 동전 한 닢씩이란다. |
매 직업 이야기를 소개할 때마다 실제 그 직업의 사람이 겪었을 법한 상황을 드라마처럼 , 소설처럼 보여주는 방식을 생각하면 이 시는 저자 정명섭이 쓴 것일게다.
제목을 곡비라고 해야할까,
눈물 꽃이라고 해야할까
참 당시의 슬픈 직업이어었노라 소설이나 드라마형식보다 더 극적으로 직업의 애환을 보여주는 것 같다.
곡비란 직업이 나름 성행했던 것을 보면 조선이란 나라의 양반님네 우리네 조상들 참 허례허식이 많았던 족속 맞는가보다.
초상집에서 상여나가고 하관할때까지 곡소리가 크고 오래되고 구슬퍼야 상 잘치루는 집이라는 명예를 얻는다고 이 난리들이라니...
16. 매품팔이
앞서 곡비와 함께 이어지는 매품팔이도 여기 3장의 제목에 딱 맞는 직업일 것이다.
정말 무엇이든 해서, 어떻게 해서든 목구멍에 풀칠을 해야겠다는 힘없는 민초들의 갖은 직업이다.
오늘날 바지사장 제도를 매품팔이의 21세기 버전일 수도 있다고!
몇 년전 매값이라고 재벌 오너의 폭력을 돈으로 무마하려한 일이 이슈가 된 적 있었고
영화 “베테랑”의 소재가 되기도 했지.
17. 내외술집
유지건의 『이향견문록』 .
주인공 육지대사가 이 내외술집이 주요 장면으로 등장하는 사연의 주인공.
그 외 조선의 기록물에서는 더는 흔적을 찾기 힘들다고.
외냐하면 당시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유교이념이 여항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민초들의 삶을 구속했던 조선시대.
생계를 꾸려가야 했던 가난한 여인들과 금주령을 어겨서라도 술과 유흥을 바랬던 양반가의 은밀한 욕구가 만난 비합법 술집.
손님은 내내 술맛좋고 안주도 맛난데 조용하기까지 한 이 술집의 홀로 있는 여주인 얼굴을 결코 볼수 없더라고.
그나저나 육지대사 조카와 그 새신부에 얽힌 , 그러나 궁극적으로 육지대사 본인의 가정에 닥친 비극이 더 안타까웠던 조선 후기 희한한 술집 내외술집
18. 조방꾼
기생, 돈과 권력을 쥔 양반과 상인 혹은 유력한 중인 계급의 사치와 유흥을 위한 숨은 조력자.
기회가 되면 신윤복과 김홍도등 당시 풍속도를 뒤져봐야겄다 ㅎ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진 공식적인 그림들보다 훨씬 야시시 한게 많았을 거 같음 ㅋㅋㅋ
실제 기생집 ‘정을 보는 ’ 장면이 나오는데....음...야하다 ㅋㅋㅋㅋㅋ
19. 거벽, 사수, 선접꾼
사극에서 보던 드라마와는 다르다고.
내가 기억하는 과거 장면 나오는 젤 유명한 드라마는 ‘성균관스캔들 “ㅋ
그러나 실상은 ’과거라는 이름의 전쟁터‘라고 (P 248)
과거 응시생 ’거자‘가 거벽과 사수를 고용한다.
거벽은 글 잘쓰는 논술가, 사수는 글씨 좋은 대필가
그리고 이들의 판을 잡아주는 거벽은 그저 힘이 좋은 무뢰배면 딱이다.
33명 뽑는데 많게는 10만명이 응시하는 과(거)장에서는
문제 출제판 ’현제판‘ 앞을 사수하려고 난장도 그런 난장이 없었더라고.
그리고 소개되는 『류광억전』 속 류광억의 슬픈 이야기 .
20. 추노객
아, ’추노‘ 아 , 송태하~~~~~♡ㅋㅋㅋㅋㅋ
’국가 입장에서는 개인 소유의 노비 수가 늘어나는 것이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양반들은 자신의 소유인 노비를 늘리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P 271)
때문에 추노가 공개적이고 장려되는 업은 아니었다 이 소리.
실제 양반들은 관청에 소송을 제기하여 노비를 찾으려는 일이 훨씬 다반사였다고.
그래도 드라마 ’추노(2010) 는 너무 재미졌다는거 ~~ㅋㅋㅋㅋㅋ
21. 무뢰배
이 장의 시작은 이번엔 한편의 무협지다!
실제 영조시대 있었던 검계소탕작전의 최고 책임자 훈련도감 대장 장붕익의 사저로 침투한 검계원과의 결투 장면.
오늘날로 치면 범죄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검사를 사적으로 제거하려는 조직의 대처 뭐 이런 그림이다 ~~ ㅋ
검계란 것은 일시적으로 등장한 이름일 수 있지만 무뢰배는 뭐 사회가 험악하고 법이 먼 곳이라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등장하는 ‘직업’ 아니겠는가!
이렇게 스물한개 조선시대 우리 조상님들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만났다.
저자가 워낙 재미있게 소개한 방식도 좋았지만
직업이 묘사되고 직업군이 소개되는 당시의 문학물도 재미있었다.
매 장마다 관련 직업군과 연계해서 찾아가볼만한 곳도 소개해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잘 기억해두었다가 혹시 근처를 지나갈 일 있으면 꼭 한번 둘러보고 말거다 ! ㅎ
'책 > 책,책,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카고플랜 071 단테 신곡 지옥편Inferno (0) | 2021.04.05 |
---|---|
국민일보선정신학생필독서100 (0) | 2021.04.05 |
조선역관열전. 이상각. 서해문집 (0) | 2021.03.07 |
역관상언등록연구.이현주.글항아리.2016 (0) | 2021.03.07 |
조선최대갑부 역관 . 이덕일. 김영사 (0) | 2021.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