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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플랜 027.팡세 .파스칼. 하동훈 옮김.문예출판사 ver & 이환.민음사 ver 본문

책/시카고플랜 위대한 책

시카고플랜 027.팡세 .파스칼. 하동훈 옮김.문예출판사 ver & 이환.민음사 ver

혜성처럼 2022. 11. 25. 20:53

 



「팡세」
그 유명한 「팡세」!
「명상록」이라고도 하고 , 생각, 혹은 사상이란 뜻의 「팡세」.

이 책을 통해 파스칼을 처음 만났다.
우선 책을 읽을 때 여러 출판사의 다양한 번역본 들 중에 민음사(믿고 보는 그 '민음사' ) 번역이 맘에 들지 않아 두어권 더 집어들었는데
결국 문예출판사와 민음사 버전 두가지로 동시에 달렸다 .
내가 사실 문제 삼은 번역은
종교를 기독교라고 , '신'을 '하나님(혹은 하느님)'이라고 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의심이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 만족스러운건 어느 출판사에도 없었다.
프랑스어는 GOD 과 god 을 구별하지 않나?
분명 책 중간에 '하느님'이라고 따로이 언급될 때가 있긴 했었다.
불신자 번역가의 문제가 아니라 뭔 다른 사정이 있겠거니 넘어가려 했다 !

덕분에 원전에 대한 문제를 알게 되었다!
애초 팡세 원고가 작가 의도대로 일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작가 사후에 작자의 유고와 같은 원고들을 수습해 만들다 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에잇~!

그런데 민음사 버전이 그래서 최근의 고고학(?), 서지학적 지식의 발달덕에 가장 작가의 의도를 잘 살린 편집본을 원고로 번역한 작품이라고 한다!
뭐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어찌어찌 하여
생애 최초 같은 책을 두권 나란히 읽어내는 기행에 도전하게 되었다는것.

우선 문예출판사 버전이다.



● 참된 웅변은 웅변을 경멸하고, 참된 도덕은 도덕을 경멸한다.
철학을 멸시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철학을 하는 것이다.p11

● 인간이란 자연속에서 무엇이냐?
무한에 비하면 허무, 허무에 비하면 전부,
무와 생의 중간자.
양극을 이해하기에는 무한히 떨어져 있으므로 사물의 종극과 시원은 인간에 대해 측지할 수 없는비밀속에 침범할 수 없도록 은닉되어있기 때문이다.

● 무한의 운동, 모든 것을 채우는 점, 휴지의 순간, 양이 없는 무한, 불가분하고 무한한 무한 p123

● 무한에 하나를 더해도 무한은조금도 불지 않는다.
무한의 길이에 한 피트를 더해도 마찬가지다.
유한은 무한 앞에 소실하고 단순한 무로 변해버린다.
우리의 정신도 하나님 앞에서 그러하고,
우리의 정의도 하나님 앞에서 그러하다.
우리의 정의와 하나님의 정의 사이에 있는 것만큼 커다란 불균형은 없다. p123

●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도 하나님의 본질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는 폭도 한계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앙에 의해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지하고, 영광에 의해 그 본질을 인지한다.
p124

● 확실한 것을 위해서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면 기독교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는확실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얼마나 많은 것들이 확실치 않은 것을 위해 행해지고 있는가?
항해나 전쟁따위가.
p129

● 지옥을 두려워 할 이유를 더 많이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
지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만일 그곳이 있으면 그 고통을 받기 마련인 사람일까?
아니면 지옥이 있음을 어느정도 알고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일까?
p131

● 당신이 쾌락을 버리면 곧 믿음을 갖게 되리라 p131

● 나는 기독교가 진실하다고 믿음으로써 저지르게 될 오류보다 ,
일단 오류를 범해놓고나서 기독교가 진실한 것임을 깨닫는 것이 훨씬 공포스럽다. p132

● Justus ex dude vivit
의인은 신앙에 의해 산다 .
p138

●인간의 덕의 힘은 그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일상에 의해 측정되어야 한다.
p 182

● 악은 쉽고 게다가 무수히 많다.
p199

● 참다운 선을 추구하다가 끝내 보람없이 기진맥진하고 피로해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결국 구주에게 두 팔을 내밀게 될테니까
p204

● 어떤 종교가 우리의 오만과 탐욕을 고치는 방범을 가르쳐줄것인가?
어떤종교가 우리의 선, 우리의 의무, 그리고 우리를 일탈시키는 나약성, 그 나약성의 원인, 그것을 고치는 법 등을 가르쳐 줄것인가?
p213

● 철학자들은 어찌하여 자기도 알 수 없는 너희 불행의 치료법을 제공할 수 있으랴?
p215

● 너희들의 근본적인 고질은 너희를 하나님에게서 떼어놓은 그 오만,
너희를 지상에다 잡아 매두는 그 탐욕이다.p215

● 너희가 하나님을 만난다면, 그것은 은총에 의한 것이지 본능에 의한 것은 아니다.
만약 너희가 겸손하게 된다면, 그것은 참회에 의한 것이지 본성에 의한 것이 아니다
p215

신의 지혜는 말하길,
" 인간에게서 진리도 위로도 기대하지 말라.
나는 나희 모습을 만든 자요,
오직 나만이 너희가 무엇인가를 너희에게 가르쳐줄수 있는 자라.

● 그러나 이제 너희는 내가 너희를 만들던 그때의 상태에 있지 않도다.
나는 인간을 정결하고 죄없고 완전하게 만들었노라 .
그를 빛과 의지로 충만시켰노라.
그에게 나의 영광과 놀라움을 부여했노라
그때 인간의 눈은 신의 위엄을 보았느니라
그때 인간은 그의 눈을 어둡게 하는 암흑 속에도 , 그를 괴롭히는 빈사와 비참 속에도 있지 않았느니라.

그러나 그는 그렇듯 위대한 영광을 지니지 못하고 자만에 빠지고 말았도다.
그는 자기를 자기자신의 중심으로 하고 나의 도움에서 독립하기를 원했느니라.
그는 나의 다스림에서 벗어났도다.
그리고 자기의 행복을 자기 자신 속에서 찾아내려 원함으로써 자기를 나와 동등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나는 그를 자기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느니라.

그리하여 그때까지 그에게 복종하고 있던 갖가지 피조물들이 그에게 반항하게 하고 그것들을 그의 적으로 만들었노라. 그래서 인간은 이제 동물과 비슷하게 되었고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서 자기 창조주의 희미한 빛밖에 그에게 남아있지 않게 되었도다. 그렇게까지 그의 모든 지식은 꺼져버리고 뒤범벅이 되고 말았도다!

감성은 이성에게서 독립해 때때로 이성의 주인이 되고 , 이성을 충동해 향락을 추구하게 만들었느니라 .

일체의 피조물은 그를 괴롭히거나 유혹하며 ,
그를 힘으로 굴복시키거나 혹은 그 아름다움으로 그를 유혹해서 그를 지배하느니라 .
더구나 유혹의 지배는 가장 무섭고 가장 걷잡을 수 없는니라

p213


●신앙에서 덕까지의 거리보다도
불신앙에서 신앙까지가 더 멀지 않을까?
p255


● 두 종류의 인간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의인이요, 또 하나는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이다. p261

● 이것이 나의 느낌이다. 나는 이런 느낌을 나에게부여해주신 나의 속죄주, 약함과 비참과 탐욕과 오만과 야심에 가득 찬 인간을 그 은총의 힘으로 인해 그 모든 악에서 벗어난 인간으로 만들어주신 속죄주를 내 삶의 어느날이나 찬미한다.
모든 영광은 그 은총에 돌려야 마땅하고 나에게는 비참함과 잘못이 있을 뿐이다.
p267

●자기 자신의 비참을 모르고 신을 앎은 역시 위험한 일이요, 또 그러한 비참을 고쳐줄 수 있는 구세주를 모르고서 자기의 비참을 안다는 것 역시 위험한 일이다.p283

● 모순.
기독교의 무한한 슬기와 어리석음.
p299

● 단 하나의 완전한 선이요 정의인 하나님의 의지가 결여되어있는 이상 그것은 악하고 불의한 것이 된다 . p344


● 요셉에 의해 표징된 예수 그리스도.
아버지의 총애를 받고, 아버지의 부르심을 받고 그 형제를 만나러 나간다.
죄가 없고 형제들에 의해 은화에 팔리고
그때문에 그들의 주인, 그들의 구주, 이방인의 구주, 세상의 구주가 되었다.
그를 없애고 그를 팔아치우고, 그를 배척하려던 형제들의 의도가 없었다면 이런 일은 있지 않았을것이다.

감옥안에서 두 죄수 틈에 긴 죄없는 요셉,
두 도둑 사이에 끼인 십자가에서의 예수.
요셉은 같은 상황에 놓인 두사람 중에서 한사람에게는 구원을 한사람에게는 죽음을 예언한다.
예수그리스도는 같은 죄목일지라도 선택된 자를 구원하고 , 버림받은 자를 형벌한다.
요셉은 예언할 뿐이고 예수그리스도는 실행한다.
요셉은 구제된 자에게 그가 영광속에 있게 될때 자기를 기억해주기를 청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가 그의 왕국에 계시게 될때 자기를 기억해달라고 청했다.

●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들어보기 전에는 정죄하지 않으신다 p423

● 하나님에서 정신에 이르는 무한의 거리는 정신에서 사랑에 이르는 무한한 거리를 상징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초자연적이기 때문에
p427

● 인간은하나님이보내준 종교를 받아야 할 의무를 하나님에 대해 지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오류의 길로 이끌지 않을 의무를 지고 있다

p 456


● 기독교 신앙은 서로 모순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내포하고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대답하지 말라 . 대답하라" 등등
p472

● 기독교 신앙의 모순의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에 있어 신인 양성의 결합이다.......
그러므로 서로 용납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 기실은 하나의 놀라운 질서속에 모두가 살아가는 대다수의 권리와 신앙과 도덕이 있다 !
모든 이교(와 이단)의 원인은 이들 진리중 어느 한가지를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p472

●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했으나"(요한복음 1:11)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자들은 모두 그의 백성이 아니었을까?
p485

● 모순이 늘 남아있는 것은 악인의 눈을 멀게 하기 위해서다.
진리, 또는 사랑을거스르는 것은 모두 악이니까.

p485

● "인간은 한줄기 갈대, 자연속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이나 사고를 함으로써 또한 위대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고는 갈대처럼 유연한 자세로 수행되어야 한다.
이성의 분별력만이 사고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 때로는 뜨거운 가슴이 그 사고를 주도한다. 「팡세」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p 514 옮긴 이 작품해설 중에서

다음은 민음사 버전이다.





● 하나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이성이 기준을 자처하지만 이성은 어느 방향으로나 휘어진다.
p14

● 증명은 오직 이성만을 설득한다.
습관이야말로 가장 신뢰받는 증명을 이룬다.
p16

● 이와 같은 태만은 참을수 없는 것
p19

● 멋대로 허세를 부려보라.
세상의 아무리 아름다운 인생이 ,이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p21

● 하나님 없는 인간의 비참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이 정신의 극도의 결함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다. p26

● 마치 영원을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영원을 말살할 수있기라도 한듯
p28

● 순전히 인간적인 원리 그리고 이기심과 자애심의 움직임에 의해서이다.
p33

● 자신의 비참을 모르고 하나님을 아는것이나 ,
이 비참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구속자를 모르고 자신의 비참을 아는 것은 똑같이 위험하다.
p36

● 증거는 인간적인 것이고 신앙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p42

● 내가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음하면서 추구하는 사람들 뿐이다.p44

● Vere tu es Deus absconditus.
참으로 당신은 숨어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사야 45:15)
p48

● 외적 사물의 지식은 내가 고난을 당할때 내 도덕의 무지를 위로하지 못할것이다.
그러나 도덕의 지식은 외적 학문의 무지를 항상 위로할 것이다.p51

● 인간의 상태: 불안정, 권태, 불안 p51

● 하찮은 일이 우리를 위로한다.
하찮은 일이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에
P56

● 바람따라 어느 방향으로나 나부끼는 가소로운 이성이여 p58

● '당신은 머리가 아프다'라고 말해도 우리가 화내지 않는것은 무엇때문인가?
그런데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거나 잘못 선택한다면 우리는 왜 화를 내는가?
p103

● 인간은 바보라는 말을 되풀이해서 들으면 그렇게 믿도록 되어 있다 .
또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도 스스로 그렇다고 믿는다
p103

● 오직 인간만이 내적대화를 하기 때문이다.
p103

● 오직 인간만이 내적대화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될 수 있으면 침묵해야 하고 또 우리가 진리되심을 아는 하나님과 대화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이를스스로에게 확신시킨다
p103


● 정의에 복종하는 것은 옳고 더 강한 것에 복종하는 것은 필연이다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없는 힘은 폭력이다
p105


● 우리가 깨어있다고 생각하는 인생의 절반도 혹시 우리가 잠을 잔다고 생각할때 실은 그것에서 깨어나는 또 하나의 잠이 아닌지 그 누가 알겠는가?
p125


● 그러니 인간이란 그 어떤 괴수인가?
그 어떤 진기함,괴물, 혼돈, 모순의 주체이자 경이인가? 만물의 심판자이자 저능한 벌레, 진리의 수탁자이자 불확실과 오류의 시궁창, 우주의 영광이자 쓰레기! p127

● 절대로 모르는 것, 또 확실히 아는 것도 불가능한 것을 보면 우리가 완전한 상태에 있었으나 불행히도 그 상태에서 전락했다는 것은 그만큼 명백하다 p128

●인간들아,
인간에게서 진리도 위로도 기대하지마라.
너희들을 지은 것은 나고 너희들이 무엇인지 가르쳐 줄 수 있는것도 나뿐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이제 내가 너희를 창조했던 그상태에 있지않다.

나는 신성하고 죄없고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였고 빛과 지혜로 충만하게 하였다.
나는 인간에게 나의 영광과 경이로움을 전하였다.

그때 인간의 눈음 신의 위용을 보았다.
그때 인간은 그를 눈멀게 하는 암흑 속에 있지 않았고 그를 괴롭히는 죽음과 비참 속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은 이 엄청난 영광을 지니고 있을 수가 없어서 오만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자기가 스스로의 중심이 되고 나의 도움으로부터 독립하길 원했다.

그는 나의 지배로부터 벗어났으며, 자기의 행복을 자기 안에서 찾으려는 욕망으로 나와 동등해지려고 하였으므로 나는 그에게 그를 맡겼다.
그리고 그에게 복종하던 피조물들을 반항하게 하여 그의 원수로 만들었다.

그결과 오늘날 인간은 동물과 동등해졌고 나에게서 너무나 멀리 떨어진 나머지 창조주의 희미한 빛은 오직 한가닥 남아있을 뿐이다.

그만큼 그의 모든 인식은 지워졌거나 어지럽혀졌다. 모든 피조물들은 그를 괴롭히거나 유혹하며 힘으로 그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면 회유로 매혹함으로써 그를 지배한다.
이 매혹에 의한 지배야말로 더 두렵고 더 무섭다.

p164~165

● 오직 보기만을 바라는 자들에게는 충분한 빛이 있로 이와 반대되는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충분한 어둠이 있다.p169

● 사람이 (복음의) 빛을 갖는 데 따라 의견들은 정에서 반으로 계속 이어져 나간다

p181


● 광대함으로 놀라웠던 우주의 경이 못지않게 미세함으로 인해 놀라운 이 경이
p206


● 왜냐하면 결국 인간이란 무앗인가?
무한에 비하며허무, 허무에 비하면 전체,
허무와 전체 사이에 걸러있는 중간자이다
p206

● 만물은 허무에서 나와 무한을 향해 나아간다.
그 누가 이 놀라운 움직임을 따라가겠는가?
이 경이의 창조자는 이것들을 다 안다.p206

● 그러나 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전체에 도달하는 것 못지않은 능력이 필요하다
p208

● 이렇듯 모든 것이 결과이자 원인이고 도움받으면서 돕고 간접적이며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
p211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줄기 갈대일 뿐이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이다. 인간을 박살내기 위해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가 없다.수증기 한번, 물 한방울이면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래도 인간이 더 고귀하다. 인간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 그리고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주는 아무것도 모른다☆
p213

● 그러니 인간이 무엇이 되겠는가?
신과 동등해지겠는가, 짐승과 동등해지겠는가?
이 얼마나 끔찍한 거리인가?
p214

● 믿는 데는 세가지방법이 있다.
이성, 습관, 신의 감화.
유일하게 이성을 가진 기독교는 그러나 신의 감화없이 믿는 사람들을 진정한 신도로 인정하지 않는다.
p215

● 기독교는 이성만으로 할수 있는것보다 무제한으로 사람을 낮추되 절망에는 빠뜨리지 않는 반면,
오만한 본성이 할수있는 것 보다 무제한으로 사람을 높이되 교만하게는 만들지 않는다.
p220

● 기독교는 민중을 내면으로 높이고,
오만한 자들을 외면으로낮춘다. p223

한 개인이 만든 책과 , 한 민족이 만든 책(성경) 에는 큰 차이가 있다.
p225

● 불가해한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p234

●외적인 참회는 내적인 것(참회)를 준비시킨다.
마치 굴종이 겸손을 준비시키듯~
p 344

● 인간은 절망 또는 교만이라는 이중의 위험에 항상 처해있으므로 은혜를 받을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다
는 이중의 가능성을 가르치는 교리보다 인간에게 더 적합한 종교는 없다.
p349

● 인간은 정욕이 발동하게 내버려두고 양심의 발동은 억제한다.
오히려 그 반대고 해야하는데 p 351

● 나는 내 안에 심연같은 오만과 호기심과 정욕을 봅니다.
p382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 속에서, 그리고 우리 자신 속에서 볼 것.

즉, 아버지 가운데서 아버지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형제 가운데서 형제로서의 예수그리스도를 ,가난한 자 가운데서 가난한 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부자들 가운데서 부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군주 가운데서 군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등등.

왜냐하면 예수는 하나님이므로 그의 영광으로써 모든 위대함을 갖추었고 또 죽어야할 생명으로서 모든 연약함과 비천함을 지녔기 때문이다.
p384

●마치 아이를 도둑의 손에서 빼앗아낼때 ,
그 아이가 고통을 당하면서도 자기의 자유를 되찾아주는 다정하고도 정당한 어머니의 폭력을 사랑하고,
자기를 부당하게 얽매는 자들의 욕되고 포악한 폭력을 증오하는것이 당연한 것과 같다.
p385

● 날씨와 내 기분 사이에는 상관이 없다.
p390

● 사람은 양심에 따라 악을 행할때
가장 마음껏 그리고 가장 즐거이 행한다.
p431

● 사람이 고통에 굴하는 것은 수치가 아니다.
쾌락에 굴하는 것이 수치다 p510




블레즈 파스칼
(프랑스어: Blaise Pascal [blɛz paskal], 1623년 6월 19일~1662년 8월 19일)
은 프랑스의 심리학자, 수학자, 과학자, 신학자, 발명가, 작가, 철학자다.
블레즈 파스칼은 흔히 과학자나 수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철학과 신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블레즈 파스칼 주요 저서는 팡세,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등이 있다.

(이상 위키백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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