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플랜 051.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1.아리스토파네스 저.천병희 역.도서출판 숲.2010
그리스 희곡으로 배우는 법과 정의 네 번째
1년차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2년차 「오이디푸스」 (소포클레스, 콜로누스.
3년차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티아」 3부작.
다음 5년차에는 뭐가 있을까 찾아봤더니 8년차에 가야 아리스토파네스를 다시 만난다.
이렇듯 현존하는 그리스 비극(혹은 희극) 은 오늘날 민주주의 교육의 훌륭한 교과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예술의 두 가지 이론이 있지.
예술가의 사회참여를 지향하는 이론과
사회 참여라는 명분으로 예술의 본래 가치를 도구화하지 말라는 소외 예술의 순수성 이론.
난 두번째 예술 순수파의 입장에 반대한다.
빅토르 하라라는 칠레 민중가수의 시와 노래는 희한하게 예언성이 담겨있다.
그만큼 시대에 공명하고 공감하는 그의 지극한 감수성 때문이라고 본다.
하다하다 그는 민중의 가슴아픈 삶 뿐만 아니라 민중의 적에게까지 공감했던 것 같다.
그들의 탐욕과 적대성과 권력욕을 충분히 느꼈던거다.
그러니 그들이 더는 갈데가 없어 결국 총칼을 들 수 밖없지 않겠냐는 그 절박성을 예지할 수 밖에 없었다는 거다.
진정 예술가가 가지고 있어야 할 감수성의 결정적 예시를 보여준 이가 빅토르 하라다.
그러니까 진짜 예술가는 나 자신뿐 아니라 내가 발 딛고 선 땅의 현실을 보는 거다 .
시국이 시국이고 하다보니 나는 아리스토파네스의 당대 현실인식과 그 분노에 너무나무 공감하며 읽었다
비록 그가 소크라테스를 오해했고 나중에 소크라테스도 바로 그 민주정에 의해 희생당한 것을 몰랐던 것(과연 몰랐을까?) 을 감안한다해도 나는 코러스장의 입장에 대입하여 관객들(시민대중) 이 어리석다고 일갈한 작가의 마음이 넘넘 와닿았다.
아리스토파네스의 민주정 비판
우리 역사에서 민주주의는 두 가지 장면으로 인해 절대적으로 지고의 가치에 있다.
첫째 3•1만세운동 후 독립정부를 구상한 독립운동가들이 선택한 정부체제다.
억울하게 나라 빼앗긴 조선왕조를 부활하자는 논의도 있었지만 조상님들은 현명하게도 민족민주의 원칙을 내걸고 입헌민주국가를 세웠다.이 시기 역사의 긴박성을 생각하면 진짜 '하나님이 보우하나 우리 나라 만세'다.
둘째 6월항쟁의 거리에서 나부끼던 태극기.
518 광주항쟁때도 그렇고.
태극기는 모든 워딩을 다 날려버린 절대절명의 명제 단 하나 자체였다.
독재반대.민주주의.
눈물나게 처절한 저 장면이 떠올라 감히 민주주의를 폄훼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를 죽인것도 민주정이었고
그리스 역사속 아테네의 민주정체가 보인 추잡성도 사실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민주정의 아테네가 구국의 영웅들을 배반하는 장면.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민주정에 살해당했다
민주정은 악법을 만들지 않았고 소크라테는 잘 짜여진 소송제도와 재판 제도에서 합법적으로 사형을 언도받았던 것.
즉 어리석은 민중이 한번 여론을 잘못 잡으면 그렇게 정의를 뒤엎어버리는 거다 .
그러니까 중우정치(眾愚政治) 가 그렇게 끔찍한거다.
그러니까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루소 등이 그렇게 민주정을 못마땅히 여겨왔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가 민주주의 사상을 배우는 여정에 주요 스승들이고 말이지.
아테네 민주정 폐해의 통렬한 참상 「구름」
첫번째 희극 구름.
아리스토파네스는 주인공의 입을 빌어 당대 소피스트들과 아테네 민주정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빚을 진 채무자가 빚을 갚지 않으려고 소크라테스로부터 사기꾼의 말발을 배우려고 한다 .
여기에 그리스 연극 특유의 코러스단이 등장해서 트집잡기 말발로 논점을 흐리는 언어도단의 실체를 전면에 부각시킨다 .
아 오늘날 정론을 집어던진 사론곡필의 대명사 3대 친일족벌언론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재판을 정의의 관점에서 치루지 않고 문구 하나하나에만 매달려 국민 법감정과 형평성을 어그러뜨리는 판결을 자행하는 사법부도 당연하고.
세계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희극작가이다
'그에 비하면 몰리에르는 무뎌 보이고 ,
셰익스피어는 어릿광대 티가 난다'
랑프리에르란 사람이 말했다고 한다.
헐.
얼마나 위대한 희곡이길래.
그래서 나는 랑프리에르의 말이 자꾸 의식된다.
아리스토파네스 심정은 이해되는데
이게 그렇게 위대한 희곡이라고?????
아직 「구름」겨우 읽었다.
왜 그리스 비극일까
「구름」을 읽고 있으려니 2400여년전 그리스 아테네의 풍속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아 그들은 정말로 연극과 마라톤을 사랑했구나.
그들이 즐겨 입는 옷, 그리스인들이 좋아한 악기, 그리스인들의 음담패설, 그리스인들의 세시풍속등
그러고보니 꼭 그리스인들만 자기들의 문화와 풍속을 가졌으려고.
아리스토파네스 시기엔 중동땅에 이스라엘민족이 페르시아의 함락되었고
그 민족들은 성경을 갖고 있었고
더 동쪽으로 인도 , 인도차이나 반도가 있다.
서쪽으로는 로마가 있고 스페인과 유럽이 있다.
아프리카 빼면 섭하지.
기록의 힘 덕분일까?
아니면 역사의 강자로 남은 덕일까?
다른 나라 문화와 풍속은 확실히 그리스의 것보다 덜 알려져있다 .
우리는 그때 막 고구려 문화를 태동시키던중이었다 .그래봤자 남은 거라곤 고구려식이라는 계단형 돌무덤정도밖에는 고구려인의 기호 취향 이런 것들도 알고 싶단 말이지.
한편으로는 옛날 그리스사람이나 고구려 사람이나 오늘날 우리와 무어 다를게 있으랴싶은 그런 동질감을 준 그리스희극.
앞사 세 작품은 비극이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저급하다고 까내린 희극은 처음 접한 거다.
그런데 오히려 이 희극을 통해 인간사는 이야기, 빚떼고 싶은 욕심과 부자갈등이 제.발등 찍은 어리석음 등의 모습은 똑같더라는 예술의 보편성이란 가치를 발견했다!
더 열심히 읽어야지
그나저나 시카고플랜 리스트의 정확성에 문제제기
순서, 저자의 생몰년도 제목 그리고 원제까지 꼼꼼한 목록.
그러니까 책 찾기 어려우면 원제까지 찾아보면 되는거다.
그런데 아리스토파네스의 「섬」이란 작품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아니 아리스토파네스의 현존하는 작품목록 자체에 「섬」이란 없다.
시카고플랜 리스트 자체를 뒤지다보니 내가 우리 국내 사이트서 찾은 리스트의 출처자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시카고 대학은 9년간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했다더라 이런 워딩조차 찾을 수 없다 ㄷㄷㄷ
그 책을 직접 찾아봐야하나?
관련 책이 미국서 출간되었다고 한다.
누군가가 이 책을 보고 꼼꼼히 옮기는 과정에서
아리스토페스의 외자 제목이 '섬' 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가능성 있는 후보는 「벌」, 「새」다.
어찌되었건 '섬' 이란 희극은 이 프로그램 8년차에 나뉘어 있다.
그러니 명단 출처찾기는 좀 있다가로 미뤄둘란다.
지금은 갈길이 멀다 ㄷㄷㄷ
「구름」Nephelai/ 라 Nubes
스트렙시아데스 : 시골뜨기 농부
페이딥피데스 : 스트렙시아데스 아들
소크라테스 : 소크라테스
코로스장 : 코로스의 대표
정론 : 정론
사론 : 사론
스트렙시아데스는 아들과 아내가 사치와 방탕으로 진 빚 때문에 괴롭다.
당시 허무맹랑한 괴변과 요설로 아테네 젊은이들을 호도한다는 소피스트의 괴수 소크라테스에게 간다.
소크라테스에게 그 요망한 말발을 배워 채권자들을 물리치고 빚을 안갚으려는 술책.
소크라테스는 무식한 스트렙시아데스에 넌더리를 낸다.
그러나 그 아들 페이팁피데스는 제대로 사론을 배워와 아버지의 채권자를 떼어버린다.
그리고 이어 아버지마저 때리고 이를 합리화한다.
화가 난 스트렙시아데스가 소크라테스의 은신처를 불질러버린다.
코로스장은 일행들과 조용히 물러난다.
음...
이렇게 되새겨보니 「구름」참 재미지다 ㅋ
번역도 유려해서 술술 잘 읽힌다.
이제 그리스어 천병희 번역작은 넘넘 익숙해졌다.
(이 분야 대한민국 유일무이 독보적인 분이시라고 ㄷㄷㄷ)
아리스토파네스가 본 민주정 지지자들 그리고 소피스트의 만행은 이렇다
1.그릇된 말발로 모든 가치를 뒤집어엎으려한다.
빚을 졌으면 갚으려고 해야지
해괴한 날짜계산법 등으로 계약을 무효화 하거나 무위로 돌리려고 하다니.
이래가지고서야 사회가 올바로 기능할 수 있겠는가
공동체가 바로 설수 있겄는가 말이야!
2. 그러니까 그릇된 사론술 하나 얻으면 바로 법안을 제창해댄다.
당시 민주정은 아고라 등에 모인 대단위 군중 앞에서의 연설 곧 설득 한번으로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관건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가 연설가들의 화술이 중요했던 것.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도 대중연설이 시원찮으면 반박당하고 무시받는다
이를 넘어서 옳지 못한 정책들도 순식간에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 채택되는 순간들.
그러니 깨어있는 자들 눈엔 대중에게서 광기를 보았지 않았겠느냐 말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소크라테스가 그중에 젤로 미웠다는 거다.
아 ㅎ
● 그래서 저 분들의 음성을 듣자 제 혼은 날아올라 벌써 꼬치꼬치 캐고, 미세한 것을 따지고, 논증을 더 작은 논증으로 찌르고, 다른 논리로 반박하고 싶어지는 게로군요.(p34)
● 누가 나에게 빚지고 있을 때는 기억력이 아주 좋고, 제가 빚지고 있을 때는 가련하게도 건망증이 아주 심하죠(p44)
「평화」 Eirene / 라 Pax
제목을 혼동해서 8년차 리스트를 먼저 읽었다.
알고보니 숲 출판사 「아리스토파네스 희곡전집」 은 1권과 2권으로 이어져 애초 4년차의 「여인의 평화( 리시스트라타)」 는 2권을 따로 빌려 읽어야 한다 -.,-;;
이제 두번째 만나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현존하는 그의 작품 11개중 제작순서는 다섯번째다 .
저자 서문에서 일러준대로 「평화」에서는 아리스토파네스가 기존 그리스 희극의 전형을 많이 비틀었다고 했는데 과연 그 효과는 대단했다.
어찌되었건 내 나름으로 꼽아보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스타일 두 가지.
추상명사를 의인화했다.
「구름」에서는 '정론' 과 '사론' 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거기서 각 캐릭터의 특성도 보이더군.
' 정론' 은 꼰대 훈장님같고, '사론' 은 야비한 양아치같다 ㅋ
「평화」에서는 더욱 뻔뻔하다.
'주인공이 아테네에서 전쟁을 물리치고 평화를 구하다' 라는 테제가 있다.
정말로 주인공은 전쟁이라는 악당을 내쫒고 땅속에 묻힌 ' 평화'를 끄집어냈다.
그 메타포의 극화가 넘 작위적이거나 억지스럽지 않다.
넘 뻔뻔해서 당황스러울만큼 당당한 설정이란 거다 ㅋ
심지어 '평화' 는 아테네한테 삐치기 까지 해서 구출 후 무대에 등장해 있는 내내 직접적인 대사를 한마디도 안한다 ㅋ
그저 대변인같은 헤르메스에다 대고 귓속말만 전한다.
아테네에 평화를 가져온 주인공은 이후 번창을 약속받는다.
왜냐하면 ' 평화' 가 같이 데리고 온 ' 풍요' 를 주인공에게 소개해줬거든 ㅋ
주인공은 ' 풍요' 와의 성관계를 꿈꾸며 환희에 빠진다 ㅋ
뭐냐
이 우스꽝스런 풍자는 ㅋ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의 코러스의 역할
소포클레스, 콜로누스, 아이스킬로스 등 그리스 비극 여러번 만났다.
특유의 그리스 연극의 특징들은 이제 익숙해졌다.
연극의 진행 동안 코러스의 역할은 뭐랄까 오늘날 OST나 효과음 그리고 효과음악의 역할인 듯 싶다.
그런데 「구름」을 넘어서 「평화」에서 코러스들의 역할은 거의 비중있는 캐릭터로 봐도 무방할걸.
일정 플롯에도 역할이 있어보인다는 거지.
글고 코러스 중에서도 특히 코러스 장이 더하다.
코러스 뿐 아니라 인물들도 수시로 관객을 극에 합류시킨다.
우리나라 마당극 같은 느낌일 것이다.
이런 넉살과 뻔뻔함이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스타일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참 정력적인 사람인 것같다.
웃음도 분노도 증오도 한결같이 강력하다.
그의 희곡은 정말 유쾌하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중 평화회담 단 며칠 전에
상연된 평화 프로파간다
트뤼가이오스 포도재배업자
하인 1,2
헤르메스
전쟁
평화
히에로클레스
하인들이 열심히 똥퍼먹여 기른 거대 쇠똥구리
주인 트뤼가이오스는 이 쇠똥구리를 타고 제우스신에게 아테네의 평화를 호소하기 위해 하늘을 나른다.
가다가 땅에서 똥을 누고있는사람한테 호통친다.
쇠똥구리가 그 똥 먹으러 하강하려들기 전에 얼른 똥 잘 파묻으라고 ㅎ
간신히 제우스 신의 집에 도착했더니 신들이 헤르메스만 남고 신들은 다 떠났다고 한다.
아테네한테 화가 많이 나서라고.
전쟁은 자신이 아테네를 망칠 무기를 다시 만들러 잠시 자리를 비운다.
이틈에 헤르메스를 꼬드겨 평화 구출작전에 나선 트뤼가이오스.
마침내 구출된 평화는 그러나 말이 없다 ㅎ
아테네에 삐져서라고.
그래도 주인공의 성의를 봐서 아테네에 축복과 풍요를 선물로 준다.
축복은 평화회담을 주관한 아테네 의회 의원들에게
풍요는 자신을 구한 공로자 주인공에게.
풍요를 얻은 주인공은 풍요와의 행복한 결혼을 꿈꾼다.
한변 주인공이 이룩 평화에 불만이 많은 무기업자들이 주인공에게 헐값으로라도 팔리지않는 무기를 넘기려한다.
유쾌한 「평화」구출 이야기
「기사」 Hippes / 라 Equites
이제 아리스토파네스의 세 번째 희곡을 만나는 중.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1 」 본서 안에서는 두 번째이지만 나는 시카고 플랜 목록을 먼저 읽어둔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스타일이 더욱 눈에 들어온다.
관객석에서 그의 연극을 보고 있으면 나는 사정없이 키득 거렸을 것 같다.
우리네 마당극
사정없는 고위층 야유와 풍자.
그들의 허위를 드러내보이는 비속어와 음담패설.
이 연극의 저질스러움이 딱 내 스타일이다 ㅋ
만담
작년 개봉 영화 <킹메이커>(변성현) 에서 1970년대 스탠딩 코메디의 한 부류인 만담 장면이 나온다.
두 사람의 입담배틀이랄까
빠른 템포로 두 사람이 쉴 새없이 주거니 받거니 한다.
거기엔 언어유희도 있고 촌철살인도 있다.
마당극보다는 조금더 고급지고 점잖을 떨지만
그것조차도 뻔뻔함을 무기로 관객들의 뻔한 관음증을 충족시켜주니까 그 카타르시스가 장난아닌거지.
「기사」 가 펼쳐지는 무대의 요란 뻑적지근함
이야기 골자는 단순하다
데모스의 관리집사의 횡포가 극심하다.
우리 역사에 비유하자면 소작농 등쳐먹는 마름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하인 둘이 이 관리집사 파플라고니아인으로 부터 벗어날 궁리를 하는 중에 파플라고니아인이 받아온 신탁을 훔쳐보는 데 성공한다.
파플라고니아인의 운명이 순대장수로 인해 망한다고.
그리하야 지나가는 순대장수 하나 구워 삶아 파플라고니아인을 대적하도록 앞세운다.
'기사' 는 이를 지원하기위해 등장한 코러스 떼들이다.
그리고 이어 주인 데모스 앞에서 파플라고이나인과 순대장수간의 폭로비방전 혹은 충성아첨경쟁.
뭄으로 치고 받고 싸우는 게 아니라 마치 초딩처럼 말발로 옥신각신 입씨름뿐이다.
그러니까 얼마나 요란빡적지근하고 귀가 쨍쨍하도록 시끄러울까
주인공 순대장수와 파플라고니아인이 자신들의 주인을 앞에 두고 사정없이 비방경쟁을 벌이는 모습.
이의 전조는 집주인 데모스의 두 하인이 보여주었다.
데모스테네스 이리와 .
올림포스의 오래된 선율에 맞춰
고통의 이중창을 흐느껴보세!
(p105)
이러고서 두 등장인물이 함께 머리맞대고 듀엣을 부르며 고통을 노래하는 장면 !
장면 장면이 정말 기막히게 재치있고 익살맞다 .
이 희극은 그의 두 번째 상연작이라고 한다.
그의 익살과 넘치는 끼는 계속 발전해서 후반부에서 터졌나보다.
내가 감탄한 코러스의 형식파괴 활용의 묘미를 보인 「평화」는 그의 작품 일대기 중반부에 놓인 것이다 .
대사도 기발하고 통찰력 있다.
한참을 웃으면서도 인생의 진리를 꿰고 갈 수 있는 연극이 되었을 듯♥
● 니키아스 무슨 증거로 신을 믿어
데모스테네스 내가 신들에게 미움받는 다는 게 증거지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p107)
「기사 」마무리 전에 절정의 코믹 장면 두 개 던지고 간다.
파플라고니아인 난 그대의 흰머리를 뽑아 그대를
젊게 해드릴께요
순대장수 이 산토끼 꼬리를 받아 눈을
닦으세요
파플라고니아인 데모스, 코를 푸시고 내 머리에
그 손을 문지르세요
순대장수 아니, 내 머리에 문지르세요.
(p151)
(말 그대로 드러운 충성과 아첨 경쟁 ㅋ)
순대장수 난 위협은 않겠지만 , 당신을
다음과 같이 저주하겠어.
냄비에는 오징어 굽는 소리가
지글지글 나는데 , 당신은
밀레토스인들에 관한 법안을
발의할 참이야.그 법안을 발의하면
1탈란톤이 생기기 때문이지.
그래서 당신은 오징어도 먹고
의회에도 때맞춰가려고 몹시
서두르고 있는데 오징어를 먹기도 전에
누가 당신을 데리러 와. 그래서
1탈란톤을 놓치지 않으려고
당신은 오징어를 입에 가득 넣고
달려가다가 숨이 막혀 죽는 거야
코로스장 근사해. 제우스에 맹세코!
(p153)
(아주 신박하고도 신랄한 저주야
써먹을 데 있으면 써먹고 싶다 ㅋ)
벌 Sphekes /라 Vespae
1. 주요 출연진
아버지 필로클레온
아들 브델뤼클레온
벌대장 코러스장
벌떼들 코러스단원
크산티아스 하인
개
2. 이야기
소위 재판병에 걸린 늙은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가 걱정인 착한 아들
아버지의 재판병은 광적이다. 죽어라고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석해서 무자비한 판결이나 때리며 인생의 낙으로 삼고있다.
아들은 아버지를 막기 위해 최후 가택구금을 시도한다.
필사로 탈출하려는 아버지와 아들이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소동 1단계.
이후 아버지의 배심원 동료들이 벌떼로 변장하고 등장하여 구해내려는 소동 2단계
상황은 이제 진전되어 아버지와 아들간에 배심원 참석의 의의에 대한 대토론이 벌어진다.
2단계는 토론의 승자가 된 아들이 아버지를 위한 가정재판을 펼친다.
피고는 부엌 음식을 훔쳐먹은 집의 개.
개를 대신해 변호인으로 나선 아들이 술책을 발휘해 개를 무죄방면하고 아버지는 기절초풍을 한다.
아들은 이로써 의미없는 배심원 놀음 그만하고 아들의 효도나 받으라고 극진히 모시는데
아버지는 아들의 정성도 못알아보고 술주정과 갖은 추태를 부리며 온 동네 소송을 다 끌어모으는 피고인 신세가 된다.
3. 희극 벌의 가치
1) 아테네 배심원 제도를 풍자했다고 한다.
당시 유력 정치인 클레온이 배심원의 일당을 올리면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등 시(나라)의 재정으로 대중추수주의 정책을 행했던 것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낸 작품.
2) 프랑스 고전주의 극작가 라신의 <<소송광>>( Les Plaideurs)란 작품으로 오마쥬 되다.
랑프리에르의 극찬
"세계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희극작가" 라고 한 그의 말을 실감한 작품.
아리스토파네스 그의 희극 세 번째 만나오는 중에 말이지.
배심원으로 대접받는 데 취해 나라의 동량이라도 된 듯이 권력놀음에 취한 아버지와 이에서 깨워내려는 아들의 요절복통 가정재판 소동.
제대로 풍자의 묘미와 재미를 버무린 최고의 희극이다, 과연!
● 자네는 빠져나가기 위해
온갖 재주를 다 부려야 하리라
내 마음에 들지 않게 말하는 자에게는
내 노여움을 누그러뜨리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p 221)
● 게다가 변호인이 장광설을 늘어놓으면 배를 곻으며 꾹 참고 앉아서 기다리다가
피고인에게나 화풀이 하실 일도 없을 테고.(p 227)
● 사실상 국가나 다름없는 나에게도 나눠주지 않았어.(p 235)
● 제발 미리 판단하지 마세요
양쪽 말을 다 들어보기 전까진
(p 235)
● 제발 고통받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세요 (p 238)
「아카르나이 구역민들」Acharnes / 라 Acharnenses
아리스토파네스 현존 11개 작품 중 최초 상연작.
역자가 추측컨대 연출권이 없을 정도로 어린 나이에 쓴 희곡이라고.
근데 리뷰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책 편집도「구름」( 세번째)을 제일 먼저 내세웠다.
나는 내 사정으로 다섯번째 「평화」(상연순서도 다섯번째) 다음으로 이 책 순서를 따라 가는 중이다.
가장 외설스런 희극
맞다 !
「구름」에선 용두질이란 소리가 자주 나온다.
「평화」에선 용두질 하듯이 탈출을 부르짖어보라고 했던가?
그래서 용두질 하듯이 자기 주문을 하는데 천천히 했다가 점점 속력을 냈더니 '껍질이 까질 것 같더라'는 너스레.
검색해보니 딱 수음이라는 한 단어만 나온다. 자위란 단어가 더 익숙한 거 아닌가?
「아카르나이구역민들」에선 여성의 성기 용어와 모양이 대놓고 나온다.실제 연극에서도 그랬나? 뭐 올림픽때 선수들 홀딱 벗고 뛰게 했던 시대니 남자보다 더 대우가 약했던 그 시절에 어린 계집아이 단역의 아랫도리를 벗겨놓는 일쯤이야 싶기도 하다.
나는 여러모도 아리스토파네스의 이 직설적인 음담패설이 유쾌하건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희극 을 저급하게 여겼었다.
음.아리스토텔레스는 고상한 사람이니깐 ㅎ
그런 아리스토텔레스 덕질을 계속하고 싶은데 보다시피 내가 지금 바빠요. 「수사학」건너뛰어서 미안해용 ㅋ
.
평화의 가치
주제는 아주 선명하다.
봐!
전쟁 안하고 평화체제 구축하면 이렇게나 살기 좋은 세상이라니깐!
주인공을 통해 그렇게 아테네 정치권과 유권자들에게 호소하는 아리스토파네스.
그는 정말 선각자인가보다.
그의 식견과 통찰력 그리고 이를 희극에 풀어낸 대담함은 기가 막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속 아테네는 그렇게 호전적이다 .꼭 무소불위의 말벌같다.
조금이라도 비위에 거슬리면 적국은 커녕 동맹국도 건드린다.그런 시대속에서 홀로 반전평화를 외치는 연극을 올려왔다니 아리스토파네스는 그러니까 시대의 선각자였을 것 같다
주인공 디코이오폴리스는 반전주의자.
처음엔 스파르타에 복수를 꿈꾸는 아카르나이 구역민의 코러스단이 적대자로 나오지만 궁극의 적대자는 라마코스다.아테네 민주주의로 대표자에 선출되어 전쟁의 콩고물을 즐기는 자.
오늘나 확전주의자?!
병자호란 후의 조선에 비교하자면 주화론과 척화론의 싸움일 듯 ㅎ
그리하여 마침내 주화파 디카이오폴리스의 평화는 그에게 넘치는 음식과 교환거리 , 여자들, 잔치자리가 보장되고
척화파 라마코스에겐 전투중 비참한 부상의 고통만 남아 관객에게 평화의 이점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디카이오폴리스 (축제에 갖고갈) 음식들을 바구니에 담아
라마코스 (전투에 갖고갈) 휴대식량자루를 내와
라마코스 소금이랑 양파내와
디카이오폴리스 양파 싫어.생선 내와
라마코스 묵은 자반 내와
디카이오폴리스 무화과잎에 싼 비계 내와
라마코스 (전투용) 투구 타조깃털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디카이오폴리스 비둘기 고기는 얼마나 노릇노릇한가
라마코스 둥근 방패 갖고와
디카이오폴리스 둥근 치즈 케이크 갖고와
라마코스 나는 적과 맞설 것이다.
디카이오폴리스 나는 술친구들을 만날 것이다.
라마코스 바야흐로 겨울이로구나
디카이오폴리스 바야흐로 술잔치 시작 시간이로구나
(p338)
두 인물의 대조된 티키타카를 보는 관중은 얼마나 웃었을꼬 ㅎ
비극작과와 아리스토파네스
참 아리스토파네스는 비극작가 혐오병이 있나보다 ㅎ
저 혼자 살겠다고 스파르타와의 단독휴전협정을 챙긴 주인공.
배신자가 되어 아카르나이 구역민들에게 맞아죽기 일보직전인데 이들을 설득하려고 이 3대 비극작가중 한명을 소환한다.
그리고 불쌍해 보일 넝마를 구하며 갖은 방법으로 에우리피데스를 괴롭힌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은 마치 해면이 든 냄비, 시든 무청, 파슬리에 비유하고 있다 ㅎ(p304)
그렇게 시인을 성가시게 하는 주제에 작가 본인의 본심을 주인공 입에다 옮긴다
"그대야말로 얼마나 귀찮은 존재인지 아직 모르시는군요"(p303)
아리스토파네스는 그의 위대한 비극들을 왜케 혐오했을까 ㅎ
● 아 가련한 마음이여, 앞으로 나아가라(p304)
● 디카이오폴리스 맙소사 이게 누구요?
데르케데스 불운한 사람이오
디카이오폴리스 그렇다면 제 발로 가시오(p334)
새 Ornithes / 라 Aves
기발한 상상력
조국 아테네 넌더리가 난 두 노인이 새가 된 그리스 비극의 영웅 필로크라테스를 찾아 하소연한다.
막상 후투티가 된 그를 만나서는 노인 하나가 놀라운 제안을 하는데 후투티와 더불어 새들의 나라 새들도 흥분한다.
그것은 하늘과 땅 사이의 공중에 새들의 나라를 지어 인간을 다스리자는 것.
더불어 인간세계와 신의 세계의 통로를 장악했으니 신들의 세계까지 지배할 수 있다는 계획.
주인공 페이새타이로스의 제안은 순식간에 실현이된다.
과연 인간나라는 각종 사절을 보내 공중계 새들나라에도 자신들 방식을 강요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려든다.
신들은 인간의 제물을 강탈당했으니 결국 주인공이 원하는대로 강화조약을 맺는다.
주인공 페이세타이로스는 아름다운 제우스의 딸과결혼하며 행복한 결말을 내린다.
조국 아테네에 대한 신랄한 일침
그러니까 아테네는 시인과 예언자의 나라이다.
역법을 탐구하고 감찰과 법령이 넘치는 나라다.
주인공 페이세타이로스는 그런 아테네에 넌더리가 났다는 것이다.
툭하면 재판하고 따지는 곳에서 따뜻함을 느껴본 적 없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아테네가 너무도 인간미없이 삭막하게 여겨졌나보다.
여전히 비극작가 혐오증
공중도시 건설 소식을 듣고 페이세타이로스를 젤 먼저 찾아온 인간계 대표는 말끝마다 호메로스를 찾아대는 시인이었다 .
아리스토파네스는 왜 그리도 비극과 비극작가를 경원하는 걸까? ㅎ
재치 넘치는 연극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연극은 대게 신에게 올리는 제사와 축제기간에 연극대회 형식으로 공연되었다.
총 3편의 작품이 상연되고 대개는 관객반응이 주요 심사기준이 되었다고 한다.
고대 연극의 한 틀로써 등장하는 코러스들이 대놓고 점수 잘 봐달라고 어필한다.
심지어 극중 페이세타이로스가 자기한테 한표 안주면 중요한 대사 안칠 듯이 말하는 대사가 있다 ㅎ
● 시인 그대는 내 말뜻을 아시겠지요?
페이세타이로스 셔츠를 갖고 싶다 이거지? (p484)
● 이 저주받은 악당아,
법을 왜곡하는 비열한 짓을 하면 어떻게 되는 지 맛 좀봐라!(p512)
이로써 아리스토파네스를 통해 고대 그리스 희극 다섯편을 만났다.
「새」에서처럼 자기 연극을 1등시켜 달라고 대놓고 호소하는 희극도 있 고 「 구름」에서처럼 자기 연극을 몰라준 관객의 수준을 대놓고 비난하는 희극도 있다.
아리스토파네스가 그만큼 엉뚱하고도 재기가 넘치는 사람인가보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은 단국대학교 출판부로 이어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