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요즘책방 01.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이 재기 넘치는 탁월한 인본주의자는 진화론의 학문적 성과에 발을 딛고 서서 인류를 생물학적 기준으로 분석하는 신기한 역사서를 썼다.
나는 그 유명한 95개조 반박문을 하나하나 읽으며 자랑스러워하던 루터의 후배다.
라고 커밍아웃 하기 전에는 교회도 안다니던 그 때 대학시절에,
친구 교양과목 대리출석을 해주다 우연히 창조과학 책 한권을 만났다.
중학교 교과서에서 그림으로 표기된 진화표를 보며 원숭이가 사람된 이야기는 과학적으로 보였고 조물주가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종교적이라는 기존의 관점을 확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창조론도 결국 과학이구나.
그러니 제발 창조론이나 진화론이나 아직도 어느 한쪽 옳다고 확정판정을 받지 않은 여전한 가설상태임을 인정했으면!
아니 것까지 바라지않고 창조론을 종교등의 형이상학적 영역으로 가둬두지 말자는거!
진화론자들은 자기 쪽에 유리한 것을 물고 늘어지며 그들만의 리그를 하고 있는 것같다. 이런 현상을 『기억의 일곱가지 죄악』 이라는 뇌신경과학 책을 보면서는 과학으로 설명안되는 분야를 어거지로 해석하려는 모습을 보고 더욱 그런 인상을 갖게 되었다.
물론 창조론에서도 약점은 많다..강점만 부각하며 진화론의 약점을 공략하는 것도 안다.
근데 원래 논쟁이란 게 그렇다.
상대방 논리의 허점을 파고드는 게 말싸움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진화론을 중심 레일로 깔고 인류를 ‘사피엔스’라는 하나의 생물학적 종으로만 표기하는 생경한 주장을 해대는 것에 거부감이 심했던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같은 진화론의 연구성과를 기반한 녹색세계사는 아무 거부감없이 잘 읽었다 ㅋ
또 커밍아웃을 하자면 내 종교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내게 기독교는 종교 Religion이 아니다. 그냥 나랑 하나님이랑 맺은 관계Relationship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피엔스보다 훨씬 전위적인 주장을 펼쳤던 『가이아』 도 벌벌 떨며 경건하게 읽었다 ㅋ
그래서 뭐, 어쩌라고 팔짱을 끼며 보던 이 유태인 (예수를 못박은 그 민족의 후예다 ) 의 강의를 계속 읽다가 점차 팔짱 풀고 허리 세우더니 나중엔 고개 끄덕 끄덕, 대개는 저자가 전하는 웃음포인트에 키득키득 함께 웃고 있는 나를 본다.
인류학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인류학이 결국은 인간의 만인 앞에서의 평등, 모든 인류의 반문명적 가치를 지양하는데 있(어야 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면
유발 하라리가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의 우월한 후손인 크로마뇽인이 속한 종의 업적과 그 과오를 지적하는 이 역저는 오늘날 여러 가지 편견과 아집에 빠져 한치 앞도 모르는 우매한 죄를 저질러대는 인류에게 경고장의 기능을 하게 되리라고 믿는다.
무엇보다 대단하지 않은가?
인간이란 그저 오랜 세월을 잘 견딘 다른 종보다 잘난 영장류일 뿐이라는 발상이 참신하단 말이다!
그리고 이는 결국 지구상에 생명체로서 인간만 특별하다는 오만한 프레임을 벗어버리고 지구별 내의 모든 존재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유도할 것이다.
책은 제대로 두껍지만 문체는 가볍고 문장도 깔끔하여 읽기 어렵지 않다.
읽다보면 저자의 진의가 보이면서 그가 겉으로는 웃으면서 돌려까대고 있지만 실상은 인류의 작태에 얼마나 참담해 하는지 알 것도 같다.
책의 제목도 그렇고 논지 전개방식도 그러한데 총 4개의 큰 단락 안에 각 소제목들도 기발하다.
제 1부 인지혁명
제 2부 농업혁명
제 3부 인류의 통합
제 4부 과학혁명
1부 인지혁명
1.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2.지식의 나무
3.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4.대홍수
그리고 후기의 제목은 '신이 된 동물'이다.
클라이브 폰팅은 인류라는 한 개체가 지구내에서 생태계를 극복하고 영향을 미쳐온 이야기를 역사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이제 하라리는 대놓고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지구상에서 지내온 족적을 인지혁명부터 과학혁명까지 큰 덩어리로 개괄하고 있다.
결론이 그래서 클라이브처럼 지구상에 참 골치덩어리 생명체가 된 참상을 개탄하는 것일지
아니면 여전히 사피엔스의 놀라운 능력으로 현재의 지구상의 문제점을 해결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지는 책 끝까지 가봐야 알 것같다. 4부 과학혁명 중반까지 읽다가 처음으로 돌아가 요약과 감상을 기록해야겠어서.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
책 아무리 두꺼워도 일 주일에 두세권 후딱 읽는다.
그런데 지난번 600쪽짜리 녹색세계사를 2주 붙들고 있었다 ㄷ ㄷ ㄷ
읽었던 내용 정리하자니 처음부터 다시 읽는 셈이 되어버려서 ㅠㅠ
그러니까 배우기 學은 쉬어도 익히기 習은 몇배로 어려운 일이다 ㄷ ㄷ ㄷ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시작 전에 유발 하라리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남긴 저자 서문을 읽으니 빨리 이 책을 끝내서 이 책은 녹색세계사와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저자가 말했다
“ 우리 종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인간은 역사상 가장 중대한 결정을 내리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에 따라 지구에 있는 생명체들의 진로는 전면적으로 바뀔 것이다 ” (p 6)라고 했는데 무슨 결정을 내린다는 것인지? 그 결정도 녹색세계사의 클라이브 폰팅이 요구하는 것과 같은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유발 하라리는 이 지구별에서 사피엔스 곧 인류라는 종을 어떻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인지, 그것이 클라이브 폰팅의 것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1부 인지혁명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종속과목강문계.
중학교때 외웠던거.
우리 인류도 이런 분류에 속해서 크게는 동물 , 중간으로는 영장목에 속하는 일개 종이라고.
이걸 좀더 알아봤는데 우리 인간은 영장목 사람과 사람 속 사람종이라고 한다.
이 사람과에는 오랑우탄 속, 고릴라속, 침팬지 속, 그리고 사람 속이있다.
homo sapiens 라는 말은 homo 속 sapiens 종 그 순서대로 이름을 지어서 결국 우리는 린네가 처음 연 생명체 분류법에 근거하여 의학이 아닌 생물학의 연구 대상으로 이름지어진다는 것.
“ 이 엄연한 사실은 역사에서 가장 은밀히 숨겨진 비밀이었다.
오랫동안 호포사피엔스는 스스로를 다른 동물과 동떨어진 존재로, 속한 과가 없는 동물인 것처럼, 형제자매도 사촌도없고 가장 중요하게는 부모도 없는 동물인 것처럼 보려고 했다. ” p 22
"호모 사피엔스는 이보다 훨씬 더 불편한 사실을 계속 비밀로 해왔다.
오늘날 우리에게 문명화되지 않은 사촌들이 많을 뿐 아니라 과거에는 형제자매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호모 속에 속하는 동물‘이고 , 호모 속에는 사피엔스 외에도 여타의 종이 많이 존재했다. "p 22
"더구나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는 사피엔스가 아닌 인류와 다시 한 번 경쟁해야할지도 모른다." p 22
저자는 아무래도 영화 ‘혹성탈출’에서 영감을 받은 것 같다 --.
이 장의 내용은 간단하다.
저자가 “형제살인”이라고 칭한 이 호모 속 종들의 전쟁.
즉 호모 속에는 네안데르탈인, 자바원인, 호모데니소바들도 있었는데 이 모든 동속 사람들중에 사피엔스라고 하는 크로마뇽인의 후손만 남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멸종’시키고서 말이다.
불을 쓰거나 직립을 하는 등의 능력은 호모속 사람들이 비슷비슷했지만 사피엔스만의 특출난 능력이 있어서라고 한다.
그것이 언어다.
그리고 그 언어가 진화하여 인간에게 인지혁명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로써 존재하지 않는 것 곧 허구 혹은 무형의 관념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이 등장하면서 전설, 신화, 신, 종교등의 생겨났다는 이것이 인지혁명이다!
그러니까 농업혁명, 산업혁명 , 3차혁명 4차혁명 이전에 인지혁명이란 것이 있었다고 한다.
인지혁명은 그래서 지구상에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 곧 인류를 생태계 내에서 중간쯤 역할을 하는 변두리의 보잘것없는 종 하나가 세계의 최강자로 우뚝 서는 전환점을 설명하는 키워드
그리고 한가지더.
오직 인류만 창출할 수 있었던 문화의 생성과 발전 쇠퇴의 과정을 역사라 하는데 바로 이 인지혁명이 있음으로 해서 인류가 진정 역사의 시기에 들어섰다는 것.
그러니까 이전에는 역사, 곧 인문학 계열이 아니라 생물학 곧 자연과학 계열에서 다루어졌을 존재들이었다는 것.
물론 이것을 역사 이전 곧 선사시대라는 분류가 있긴 하지만 저자는 이를 기피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 뭔 소린지 몰라서 ㅎㅎ
그리고 이어서 1부의 마지막까지는 사피엔스가 같은 호모속 사람들 중에 유일강자가 되면서 지구 환경에 끼친 해악들의 사례가 나온다.
정말 녹색 세계사랑 비슷하다!
그러나 그 표현은 훨씬 직설적이고 통렬하다 ㅎ
“(동물 멸종의 책임을 기후변화 탓으로 주장하는 이들을 반박하며 ) 하지만 미 대륙의 똥덩어리 문제는 회피할 수 없다. 우리가 범인이다. 진실을 외면할 방법은 없다. 설사 기후변화가 우리를 부추겼다해도 결정적 책임은 인류에게 있다. ” p 115
제 2부 농업혁명
여기까지 오면서 기존에 갖고 있던 개념 두가지를 정정하게 된다.
첫째 농업혁명 이전까지의 수렵채집인은 부실하지도 유약하지도 않았다는 것.
수렵채집인의 생활은 훨씬 능동적이었고 알려진 것보다 훨씬 지혜로웠으며 식량공급에 있어서도 부족함이 없었기에 여유롭고 넉넉한 생활을 보내왔다는 것이다.
즉 수렵채집인 생활을 극복하기 위해 인류가 농업이란 것을 발명하여 발전했다는 그간의 도식이 허구라는 뜻이다.
둘째 여기의 연장선상에서 농업혁명이 인류의 진화사의 산물이냐, 그로 인해 인류 개개인 즉 사피엔스 개체들에게 풍족한 식량을 공급해주었느냐, 그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ㄷㄷㄷ
농업이전 시기에는 지천에 널린 과일과 물고기 그리고 동물들을 사냥해 먹으면 되고 음식이 떨어지면 또 채취하려 나서면 그만이었다 . 남는 시간에 그들은 종교생활을 하고 나름의 여가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농사라는 것은 그렇게 얻을 수 있는 식물을 위해 인위적으로 땅과 물을 조작하는 등 많은 수고를 가해야 한다고 한다.
글고 보니 정말 그렇다.
인류의 문화라는 것이 조금더 편하고 유용한 쪽으로의 발전을 뜻하는 것이었다면 수렵채취생활과 농업을 둘 다 선택할 위치에 있다면 농업은 결코 선택받을 산업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찌되었건 농사가 주업이 되면 식량생산이 늘어서 넉넉히 배부르게라도 먹고 살아왔느냐 ,,
이것도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들에 따르면 결코 아니올시다! 이란다.
단위 생산량은 늘었을지라도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 p 124) 로 인해 수렵채취인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도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다 p 124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대답은
‘한줌의 식물 종, 밀과 쌀과 감자였다. 이들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였지, 호모 사피엔스가 이들을 길들인게 아니었다’p 124
밀이 그 사기꾼이란다 ㅎ
하라리는 이 밀에 대하여 생물학적, 인류학적 설명을 한참 한다.
원래 인류는 잡식성 유인원이다. p 126
밀이 포함된 곡류는 미네랄과 비타민이 부족하고 소화가 힘들며 치주조직에 해롭다.
경제적 안정을 제공하지도 않았다. (p 126)
밀은 인간 사이의 폭력에 대한 안전망을 제공하지도 않았다. p 127
싸움이 나면 정든 거처를 떠나기 쉬었던 수렵채집인에 비해 농사를 짓는 인류는 땅에 대한 애착 때문에 굶어죽거나 피습을 당하는 것을 무릎쓰는 경우가 많다.
정말 끔찍한 일이다.
사태가 이 지경임에도 인류는 내가 좀 더 부지런하면, 좀더 좋은 땅이면, 좀더 나은 날씨였으면 내일은 더욱 많은 수확을 거둘수 있을거야 그래서 배가 부를 날이 올거야 라는 그 인지혁명상의 환상과 기대를 품으면서 농업에서 떠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라리는 이 농업혁명을 ‘덫’이라고 말했다 ( p 129)
요즘 중고들학생들은 농업혁명에 대해 이런 새로운 관점을 배우고 있나?
분명이 이 책과 앞서 녹색세계사는 인류학의 새로운 연구성과들을 반영하여 정리한 내용들인데 우리의 교과서 집필자들도 이런 연구성과를 반영하여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직도 중고딩들은 중동 어드메서 농업이 발달하여 전세계적으로 방사선으로 퍼졌다고 배우고 있을까?
실제 농업은 전세계 각처에서 자발적 ,산발적으로 인류를 현혹하여 앞으로 펼쳐질 장기간의 기근과 불평등과 인구폭발사이에서 인류를 생고생버라이어티로 이끌고 간 낚시고리였음을 잘 배우고들 있을까?
2부 농업혁명은 계속해서 혁명이라고 부르는 농경체계의 등장으로 인해 인류와 지구 생명체 전반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방대한 자료를 응축해서 우리에게 전해주고있는데 그 실상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것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어찌되었건 농업은 단위생산량의 증가라는 눈에 보이는 이점은 확실이 있었고 이에 길이 든 사피엔스는 농사를 지을 땅, 그로 인해 지은 건축물들 여러 가지 것들에 애착이 생기며 편리함이라는 사치의 덫에 빠졌다는 것.
그리고 인지혁명으로 창조된 신들이 인류를 특정 장소로 모으고 유지시키기 위해 농업을 선택했다는 추정도 그럴 싸하다.
무엇이 먼저였든 엘리트는 (기존에는 농업혁명이 엘리트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것도 논쟁적인 명제다 ) 불평등한 구조를 만들어 이 힘든 농사를 채근질해댔다.
그리고 그 성과물을 빼앗아갔다.
그리고 그들은 역사책에 기록된 행위들을 해나갔다. 왕, 관료, 병사, 사제 예술가 사색가 왕궁 성채 짓기 ,기념물 만들기 등등 (p 153)
착취당한 수많은 기층민중도 문제지만 짐승들의 가축화에 담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끔찍한 과정들 ㅠ
제 3부 인류의 통합
9. 역사의 화살
10. 돈의 향기
11. 제국의 비전
12. 종교의 법칙
13. 성공의 비결
제목에 나온 화살이란 것에서부터 역사의 방향성을 가리키고 있다.
농업혁명으로 인해 인간이 모여산다는 것은 그 많은 인구가 뭉치도록 해줄 특별한 무엇인가를 요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라리는 그것을 ‘인공적 본능’(p 234 ; 수많은 벌떼나 개미들은 유전자에 내재된 계급대로 이뤄이진 집단이니까 ) 곧 문화라고 부른다.
그런데 기존 학계는 특정 지역에 기반한 , 호수처럼 정체되고 고유한 문화라고 말하는데 문화라는 것 자체는 내부의 문제 곧 모순을 에너지로 삼아 생성 변화 발전한다는 이야기!
여기서 하라리가 말한 모순이라는게 인간사 해결해야할 갈등의 문제 즉 계급, 분단, 인종 이런 문제가 아니라 창과 방패 본연의 뜻처럼 인간 내부에 상반된 가치를 융합시키고자하는 모든 노력들의 결과물들을 말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사도와 기독교, 혹은 민주주의 내에서의 자유와 평등의 가치들 말하는 것이다.
이게 그냥 인간의 관점안에서는 기사도와 기독교 두 개는 별개의 집단이 추구하는 가치들이라고 그 연결성을 의식하지 않아왔던 분야다.
자유와 평등에 관해서도 자유를 강조하는 파와 평등을 강조하는 파는 이념갈등을 낳는 그냥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만 인식되어 왔었다.
그런데 그 모든 모습을 낳는 것이 결국 사피엔스라고 하는 하나의 종이 보인 행태라는 것이다.
꿀벌은 오로지 꿀을 생산하여 종족을 번식시킨다는 단 하나의 본능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사피엔스라는 종은 사랑과 박애도 하고 죽이고 정복도 한다. 꿀벌 입장에서라면 도대체 인간이라는 저 종은 무엇으로 특징지을 수 있을 것인가 엄청 난감해 할 것이라 이 소리!
그러면서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프랑스 혁명에서 잉태된 자유와 평등의 가치, 현재미국정치등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런 시각을 인지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인류 역사를 단기간의 조감도처럼 보는 것이 아니라 수천년 단위의 정찰위성처럼 살폈을 때라고 한다.
그렇게 한다음에 우리가 생명체 혹은 그 생태계를 연구하는 방식대로 인구의 분포나 문명의 개체수의 증가등 산술적인 조사를 해보자는 것이다.
이러면 지금까지 끊임없이 변화해온 문화의 패턴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부의 첫 장 역사의 화살이 가는 방향을 찾는 방법일 것이다.
이 문명의 개수를 세는 방법을 통해 점차 단일한 지정학 체계, 단일한 경제 체제, 단일한 법 체계, 단일한 과학체계로 통합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안에서 예시된 스페인의 아즈텍 제국 정복이나 영국인들의 태즈메이니아 정착에 있었던 끔찍한 재앙들은 언급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정찰위성으로 대단히 먼(오랜) 거리에서 인간세상의 이합집산의 과정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하라리는 그 과정을 어느 한편의 사피엔스가 다른 한편을 뜯어먹고 먹어치운다고 표현하며 살벌한 자연다큐멘터리적 표현으로 에둘러 인간사에 있던 폭력과 살인들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런 전 지구적 통일의 매개체가 된 것은 첫째 돈이고 둘째 제국주의며 셋째 종교다.
이 장은 인류가 이 세가지를 매개로 통합, 통일, 전지구화 하는 과정을 상세히 전한다.
그안에서 화폐경제가 불평등을 낳고 수많은 민족이 착취의 대상이 되어 몰살, 압제를 당했는지 그리고 나치가 유태인 인종말살 정책을 펼쳤던 일들에 대해선 아무런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반복하는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정찰위성으로 호모 사피엔스의 행적을 관찰중에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2부를 마치면서 역사에 대해 이렇게 토로한다.
‘역사는 교차로에서 교차로로, 뭔가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처음에는 이 경로를 택했다가 다음에는 저 경로로 진입했다가 하면서 나아간다.’ p 346.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를 연구하다보니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냉소적이 되어버렸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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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사람들에게 모순되는 신념과가치를 품을 능력이 없었다면, 인간의 문화 자체를 건설하고 유지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p 238
역사를 조감도처럼 보면 즉 역사발전을 수십 년이나 수백 년이라는 단위로 검토하면, 역사가 통일의 방향으로 향하는지 다양성의 방향으로 향하는지 판정하기가 어렵다.
장기적 과정을 이해하기에 조감도는 너무 근시안적이다.
그보다는 우주에 떠있는 정찰위성의 시점을 , 즉 수백년이 아니라 수천년이라는 단위를 스캔하는 시점을 취하는 게 낫다.
이 시가가에서 보면 역사가 통일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기독교의 분화와 몽골 제국의 붕괴는 역사라는 고속도로의 과속방지턱에 지나지 않았다. p 240
역사의 전반적인 방향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떤 한 순간에 지구라는 행성 위에 각기 분리된 채 공존했던 인간 세상들의 개수를 세는 것이다. p 240
1521년에는 메소아메리카 세계를 먹어치웠다.
같은 시기에 아프로아시아는 대양 세계도 처음 뜯어먹었다. p242
우리는 여전히 ‘고유 문화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만, 만일 그 ’고유성‘이란 것이 독자적으로 발달한 무엇, 욍부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고대의 지역전통으로구성된 것을 뜻한다면, 오늘날 지구상에는 고유 문화가 하나도 없다. p 244
사실 어떤 사회적 동물도 자신이 속한 종 전체의 이익에 이끌려 행동하지는 않는다.
벌집 입구에 “만국의 일벌들이여, 단결하라"는 구호가 붙어있는 경우도 없다. p 246
오늘날 많은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정부에게는 제3세계에 민주주의와 인군의 혜택을 가져다줄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좋은 것들을 순항 미사일과 F16 전투기로 배달해야 하더라도 . p 282
인류의 모든 문화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제국과 제국주의 문명의 유산이며, 어떤 학술적, 정치적 외과수술을 한다 해도 환자를 죽이지 않고 제국의 유산만을 도려 낼 수는 없다. p291
문화적 유산이라는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정말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길을 택하든 그 첫걸음은 이 딜레마가 복잡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과거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해서 선인과 악당으로 나누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다. p 294
근대는 강력한 종교적 열정의 시대, 전대미문의 포교 노력과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의 시대였다.
수많은 자연법칙 종교가 근대에 새로이 등장했다.
자유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 국가사회주의가 그런 예다.
이들은 종교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라고 부른다. 그저 용어상의 차이일 뿐이다. p 324
우리는 역사가 하는 선택을 설명할 수 없지만 그 선택에 대해 매우 중요한 발견을 할 수는 있다.
역사의 선택은 인류를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역사가 펼쳐짐에 따라 인류의 복지가 필연적으로 개선된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p 343
역사상 가장 성공한 문화가 반드시 호모 사피엔스에게 가장 좋은 문화라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p 346
진화와 마찬가지로 역사는 개별 유기체의 행복에 무관심하다. p 346
제 4부 과학혁명
14. 무지의 발견
15. 과학과 제국의 결혼
16. 자본주의의 교리
17. 산업의 바퀴
18. 끝없는 혁명
19.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20. 호모사피엔스의 종말
우와, 소제목들만으로도 후덜덜하다.
4부는 오늘날 현대와 직결된 시대를 다루다보니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많은 인류의 현안들을 대하는 저자의 보다 직접적인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게된다.
그리고 첫장 무지의 발견이라고 했는데 인류사의 최근을 살핌에서 있어 역시 독특한 관점을 보여주는 제목이라 할 것이다.
무지의 발견이라니!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한것도 아니고,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견한 것도 아니고,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도아니고, 파스퇴르가 페니실린 균을 발견한것도 아니라,
무지를 발견했다니!
이래서 과학의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소크라테스가 항상 앞에 나오는구나!!!!!!!!
현대과학에는 독특한 속성이 있다.
현대과학은 무지를 기꺼이 인정한데서 출발했다.
그리고 관찰과 수학을 무기로 새로운 지식을 획득했으면 즉각 새 힘으로전환하여 활용하려 했다.(p356)
이 모든 것을 특징지을 수 있는 말이 환원주의다
. 현대과학에서는 물리학을 통해 하늘 , 별, 바람들이 계량 계측화 되는 길을 열었는데 수학과 관찰의 힘은 몇몇 분야를 제외하고 경제학이나 통계학 그리하여 보험업등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래서 인류는 모든 것을 기계론적으로 해석하고 대응하려 한다.
심지어 환경문제도 마찬가지다. 환경문제는 결국 인간이 이룩한 고소비사회를 청산해야하는 근본 대책을 무시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다른 에너지를 만드는 것으로 해결하려드는 윗돌빼어아랫돌 괴는 듯한 우매한 패턴을 말한다.
인간은 정말 자연을 오로지 인간의 유익을 위해서 마음대로 설계하고 이용하고 측량할 수 있다고 믿고 산다.
클라이브폰팅도 그러했듯 유발 하라리도 인류종의 역사 최근에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사조 진보를 주목한다.
.
지난 세기까지 인류는 가난, 질병, 노화, 죽음의 문제는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인간이 노력한다면 세상은 좋아질 거라는 낙관주의가 퍼졌고 실제 이는 여러면에서 실현된 것으로 보였다.
생물학적 가난은 근절되었고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기근은 여전하지만 ㅠ)
의학의 발달로 사망률은 확연하게 줄었다.
인간은 이제 죽음의 영역까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무시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 하나,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인류 태동부터 꾸준히 계속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관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의 기술의 발전 상태와 저자가 문제삼고 있는 근대이후의 과학발전은 천지차이로 다르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대로 무지의 인식으로 움직이는 환원주의적 관점이 출발선이 되었다는 것 하나요 둘째는 진정 인류의 삶을 바꾼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불과 몇백년 이라는 아주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그것이다.
때문에 인간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과학만물주의에 빠지게 된 것 같다.
이후 제국과 과학은 아예 결혼이란 걸 했다
제 15장 과학과 제국의 결혼에서 저자는 의미깊은 질문 두가지를 던진다.
첫째 제임스 쿡은 과학자였나? 정복자였나?
둘째 어쩌다 유럽이 세계를 제패했는가?
첫째 제임스 쿡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이 책 모든 이야기가 그런데 딱딱하고 집대성된 자료를 훑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사례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상세히 전해주는데 그렇게 쫄깃하고 재미질 수 없다.
'금성의 식' 현상을 통해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삼각측량법을 적용해보려고 영국은 엄청난 비용을 들여 탐사원정대를 꾸린다.
이왕 배 한척 띄워보내는 길이니 천문학자 달랑 한명 보내는게 아니라 각각 7개 분야의 과학자들을 동승케했는데 이의 책임자가 그 유명한 제임스 쿡이다.
제임스 쿡은 꽉막힌 군 관료가 아니라 항해에 경험이 많은데 또 당시 정서를 그대로 갖고 있는 학자였다고 한다. 문어발처럼 호기심 왕성한 . 분야도 지리학,민족지학이라고 한다.
제임스 쿡은 탐사원정을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갈땐 엄청난 천문학, 지리학, 기상학,식물학, 동물학,인류학 지식(과 그 자료)를 갖고 갔다.
그리고 제임스 쿡이 탐험하고 깃발을 꽂았던 땅의 원주민들은 이후 영국인들이 상륙하며 그들이 전한 병에 90% 이상이 절멸하거나 아예 민족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비극을 맞이했다고.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태즈메이니아 얘기다.
그러니 제임스쿡은 탐험가인가 정복자인가 묻게 되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둘 다 해당된다고 한다.
이것이 현대 과학과 제국의 모습이라고 한다.
번외로 제임스 쿡 이야기 중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과학자다운 예리한 촉을 지닌 이 훌륭한 선장은 그간의 원양항해선원들이 피하지 못한 죽음의 병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먼 바다에서 비타민 부족의 식단이 일으켰던 괴혈병을 말한다.
제임스 쿡은 그러나 이 괴혈병에 대한 작은 연구 실험 결과를 무시하지 않고 자기 배에 적용케 함으로써 그 실험결과를 증명함과 동시에 막대한 인명피해도 막아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두 번째 질문 '어쩌다 유럽이 세계를 제패했는가'에 대한 대답도 된다.
1500년대 이전까지 유럽은 세계에서 중국이나 이슬람이나 인도등과 견주어 봤을 때 과학기술이나 경제력 정치력 무엇을 봐도 내세울 게 없는 실정이었다고 한다.
신대륙을 발견했던 놀라운 항해술로만 비교한다면 중국 명나라시절엔 정화의 해외원정이 유명했다. 정화 장군은 중국에서 아프리카까지 배를 이끌고 다녀왔다고 한다. ㄷㄷㄷ
하지만 중국은 그걸로 끝이었지만 유럽인은 배를 타고 한번 나라 밖을 다녀오면 온갖 정보를 쓸어담아온다음에 그 지식을 무기로 삼아 방금 보고 온 그 땅들을 그대로 소유하고 짓밟고 탐닉해버린다는 것.
유럽인들의 이 희한한 과학정신은 제국주의 지배욕과 결합시켰을 뿐 아니라 풍부한 물질로도 보상을 받았다.
유럽은 신흥하는 자본주의가 화려하게 꽃을 피운 선구적인 대륙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사피엔스가 자신의 종특적 능력인 허구를 향한 믿음 곧 신용과 미래의 관념에 관해 창안한 아이디어였는데 이는 여러모로 종교와도 같단다.
이 신흥종교 자본주의의 내용과 교리를 살펴보자.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로 불리는 이유는 자본과 부를 구별한데서 나온다.
자본이란 생산에 투자되는 돈과 재화와 자원을 말한다.
반면에 부는 땅에 묻혀 있거나 비생산적 활동에 낭비된다 p 442
이 아이디어는 전근대시절까진 없던 개념이었고 이로 인해 세상은 이전까지의 왕이나 군인 , 귀족들 전통의 엘리트 집단에서 부르주아라고 하는 신흥 엘리트 집단에게 주도권을 넘기게 된다.
이들 부르조아 엘리트는 자본주의라는 종교를 통해 정치 문화 예술 모든 분야까지 장악해서 신도들의 정신을 개조해 나갔다.
유럽의 자본주의가 이렇게 발흥하여 폭발적으로 부흥한 데는 과학기술의 발전덕이었다.
아니 과학기술이 발전한 것은 또한 자본주의 덕분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앞서 우리는 과학과 제국의 결합을 살펴봤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제국주의까지 촉발시키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아는 바대로 서구의 자본주의는 제국주의 덕분에 말그대로 활짝 꽃을 피워 절정을 만날 수 있었다 . 그 파국은 두 개의 세계대전을 통해서 끝이났지만 그저 주도권이 미국으로 옮겨간것이지 자본주의가 파국을 맞이한 것은 아니다.
중간에 자본주의의 시련은 잠시 있었다.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 세력들의 발호였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대부분의 사회주의국가들이 종말을 맞으면서 자본주의는 더 이상 경쟁자도 없는 무소불위의 독점적 지위를 갖고 이제 신자본주의, 독점적 자본주의 등등의 변태적 변이를 거듭하면서 건재하고 있는 중이다.
책에서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까지 왕들의 자본을 투자받기 위해 애썼던 일.
유럽 그중에서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이 국제 금융의 허브가 된 사정들이 상세히 담겨있다.
그리고 루이16세가 프랑스 혁명을 만나 단두대에 오르게 된 것은 할아버지의 반 자본주의적 행태 때문이었다는 슬픈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진짜로 슬픈 일은 사람들은 애덤 스미스가 자본주의의 교주인 줄 알지만 애덤스미스가 오늘날 자본주의의 실태를 보고 있으면 국부론을 찢어버리고 싶지 않을까 싶다.
자본주의자들은 애덤스미스가 일러준 것처럼 수익이 늘었다고 고용을 늘리는게 아니라 자본을 축적하는데 열을 올렸다.
부당한 기업주는 경쟁의 원리에 의해 고사될 것이라고 했지만 순진했던 애덤 스미스는 기업주끼리 담합하여 노동자들 고혈을 짤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가장 끔찍한 일은 정부가 자본주의자들의 노동조합이 되어 (p 460) 부당한 전쟁을 일으키거나 남의 나라 전쟁의 승패에 깊숙이 개입하는 일들이다.
그래놓고 자본주의자들은 지금껏 그 많은 문제들이 전면에 드러나고 폭로되었는데도 여전히 경제가 덜 발달되어서라고 핑계를 대고 있다.
하지만 끝없는 성장의 추구를 위해서는 원자재와 에너지가 필요하다. (p 472)
그러나 지구에 원자재와 에너지의 사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다.
이어진 17장 산업의 바퀴에서는 자본주의 교리의 신봉자들의 행태를 보여준다.
자본주의가 발흥한 이래 자본의 교리는 막강한 재현력을 보여주었다.
자본주의는 에너지와 원자재에 자본을 투자해서 이윤을 남기는 구조다.
그래서 에너지와 원자재가 이 자본의 순환을 위해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는데 이것이 고갈되면 자본의 순환이 막힌다는 원리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에너지와 원자재는 결코 부족해져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뭐 하나 부족해질 것 같으면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다른 대체제가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단지 몇백년 동안의 모습이지만 환경에 미친 폐해는 이전 시대까지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오면서 끼쳐온 것 이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 진보와 이 신화가 앞으로의 세월동안 또 몇천년 혹은 몇만년 계속되야 한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자본주의는 소비지상주의라는 부가종교를 창안했다.
17장은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 불교 혹은 공자의 유교를 대체한 아주 효과적인 종교가 되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예수를 모방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불교도는 부처를 따르는 데 실패했으며, 대부분의 유생들은 공자를 울화통 터지게 했을 것이다.
이와 대도적으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본주의-소비지상주의이념을 성공적으로 준수하며 살아간다.
새로운윤리가 천국을 약속하는 대신 내놓은조건은 부자는 계속 탐욕스러움을 유지한 채 더많은 돈을 버는 데 시간을 소비할 것, 그리고 대중은 갈망과 열정의 고삐를 풀어놓고 점점 더 많은 것을 구매할 것이다. p 494
그러나 이 종교하에 지구상의 무수한 생명체들이 신음하고 있다.
하라리가 적나라하게 묘사한 상업적 부화장의 수컷 병아리들의 신세와 돼지와 송아지들의 겪는 반동물적 생육실태.
아, 할로의 고아 원숭이 실험 ㅠㅠㅠㅠ
끝없는 혁명
책의 마지막을 향해가면서 내용은 점차 광범위해지고 주제는 더욱 선명해진다.
오히려 클라이막스 직전의 위기처럼 상황을 더 꼬아놓은 듯하다.
여기서는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달라진 모습 이것 저것을 보여주는데 많이 놀랐다.
몰랐던 것을 알게되서도이겠지만 지금은 내가 익숙한 삶이 몇백년전에는 전혀 생각지 못한 모습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구상의 인구폭발로 현재 사피엔스 단일종 70억의 무게는 코끼리,고래 등 지구상의 모든 대형 포유동물의 무게보다 3배나 많이 나간다 !!!
생산일정에 맞추기 위한 기차시각표의 정확성을 추구하던 산업혁명의 발상지 영국은 그로인해 세계 표준시각의 기준점도 탄생시켰다. 그리니치 천문대!
세상의 모든라디오가 매시각 정각을 알리는 시보를 방송할 수 있게 되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공동체가 무너졌지만 이는 달리 말하면 개인의 해방이라고 평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소속감을 갈구하는 개인을 위해 국가는 그들의 가정사를 챙기는 것 뿐 아니라 상상의 공동체를 제공하는데 하나는 소비지상주의 또하나는 민족주의다.
이 장에서 이렇게 현대사회의 모습을 묘사한 것중에 가장 놀라운 것은 현대사회가 실상은 대단히 평화로운 시대였다는 점이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인류는 두 개의 세계대전과 곳곳의 크고작은 국지전들을 숱하게 겪었지만 반면에 동시에 완전히 평화로운 시절이기도 하였다는 이 모순적 정리는 무엇?
특히 21세기로 들어서서는 폭력에 의한 사망자보다 자살로 인한 사망자가 더 많았다는 거!!
이는 대체적으로 국가가 강해지면서 자국내 방만한 공동체들을 단속한 공을 부인할 수 없다고 한다.
무엇보다 1945년 이후 국가대 국가간의 폭력이 확실하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물론 국가 내 내전과 쿠데타는 있었다.
하지만 전쟁을 통해 남의 나라를 지배하겠다는 시도들은 더 이상 없게 된 것이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전쟁의 가성비가 떨어져서라고.
어찌되었건 양차세계대전의 교훈은 교훈일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많이 놀랐다.
녹색 세계사는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는데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의 현대의 상황은 과거에 비하면 여러 가지 면에서 긍적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하라리는 인류의 종말에 대해 아직 결정을 내려서는 안된다고 한다. (p 529)
일련의 우연들이 인류를 어디로 굴러가게 만들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내가 이 책 서문을 통해 궁금해 했던 질문 두 개중 첫 번째 것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그렇다고 대답을 ‘인류가 하기 나름’이라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19장의 제목,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
여태껏 인류의 수만년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산업혁명과 현대 문명사회를 돌아보았는데 막판에 다다가서 나는 지금 무슨 책을 읽고있지 잠시 혼돈에 빠졌었다 .
앞서 우리는 저자가 제시한 충격적 현황을 보았는데
현대세계는 여러모로 이전 삶과는 다른 혁신을 이루었고 무엇보다
세계 도처에서나 가까운 내 주변에서 크고 작은 폭력이 줄어 현저히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었음을 일깨워줬었거든.
그래서 이어진 다음장의 주제는 인류는 그럼 행복해졌는가이다!
경제, 식량, 의복, 질병, 성역할, 정치, 사회 여러면에서 과거보다는 나아진 상태인 것은 분명하지만 사피엔스라는 단일종의 입장에서야 그런거지 수백억 마리의 동물들 입장에서는 결코 진보된 세상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p 535)
(특히) “ 지구 전체의 행복을 평가할 때 오로지 상류층이나 유럽인이나 남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잘못이다.
인류만의 행복을 고려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잘못일 것이다. ” p 535
이쯤에서 저자는 행복에 대해 ‘과학적’ 계산을 시도해본다.
소위 ‘주관적 안녕’의 상태를 평가하기 위해 설문지를 작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은 객관적인 조건과 주관적 기대 사이의 상관관계에 의해 결정된 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물학자들은 행복의 요인을 생화학 시스템에서 찾는다.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 등이다.
세 번째는 불교에서 갖고 온다.
부처가 처방한 방식대로 행복을 저해하는 불쾌한 일이던지 행복을 일으키는 기쁜 일이던지 그저 파도가 왔다갔다 하는 일처럼 바라보라는.
이쯤에서 나는 이 책의 의도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는다.
아니 내가 잊고 있었던, 지금껏 저자가 현재 시점 560쪽이 되도록 중간마다 슬쩍 슬쩍 흘렸던 질문들을 내가 간과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저자는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기존의 역사서들처럼 사회적 구조나 제국의 흥망, 혹은 시굴의 발견과 확산에 대해서 말하려는 게 아니라고 .
즉 사피엔스라는 종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있는 바로 너, 그리고 나 한 사람의 행복에 관해 관심이 있었던 거라고. (p 560)
그러니까 나는 환경과 인류라는 거대담론의 사회과학책을 읽은게 아니라 자기계발서를 읽었단 말이지?
이렇게 반전은 계속되고 있다.
아직 모른다
아직 20장이 남았다.
20장 호모사피엔스의 종말이다 ! ㄷㄷㄷ
그리고 전체 4부 과학혁명의 마지막 장이다.
저자는 프랑켄슈타인 신화를 비판했다.
인류같은 생명체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인데 어떻게 설계될수 있을 것이냐는 대다수 평범한 이들의 입장.
특히 정신의 영역을 어떻게 복사해낼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이 그걸 이뤄낼 날도 오지 않겟느냐는 것이다.
이건 저자의 자기모순같다.
언젠가는 우리가 희망하고 노력하는대로 잘될거야 이 진보 개념은 산업시대인 최근들어서 고안된 것이라 말해놓고..
그 신상 이데올로기로 앞으로의 인류의 상황까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니겠느냐 주장한다 건.
게다가 저자는 또 인류는 망해도 자연은 영원하다고 말했다.
네안데르탈은 멸망했지만 호모사피엔스가 살아남아 새로운 생태계를 이루었듯
호모사피엔스는 망했어도 설치류가 갑각류가 새로운 주인공이 되어 이룬 생태계의 승자가 될 수도 있는 거라고.
그러니 정신까지 생성해낼 과학의 도래를 낙관한다는 건 내가 그 소리를 듣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논리 오류라는 것이다.
맞다 . 지금 저자의 주장인줄 알고 많이 흥분했다.
하라리의 진술 방식이 지금껏 이랬다 ㅎㅎ
진지하게 말해놓고 잠시 띄웠다가 바로 “미래는 모르는 일”이라고 부정한다. ㅎㅎ
진짜 하라리의 본뜻은 언제 어디서 나올지 모른다.
하라리는 그냥 모든 이야기, 상황, 팩트 들을 그냥 전할 뿐이다.
이걸 모르고 첨엔 진화론, 다인류설, 빙하이론 줄줄 말할 때 그렇게 거슬렸었다.
중간에 기독교 얘기도 나오고 방금 뇌구조 디지털화 프로젝트도 나오는데 절대 흥분하면 안된다. ㅎ
심지어 이 유태인 저자는 히틀러 얘기 할때조차 나치 당원처럼 얘기한다 .
마지막 장이다.
저자의 진짜 고민은 호모사피엔스의 현재 시도들이 호모사피엔스라는 종 자체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소위 인간의 의식과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금 앞서 말한 정신의 디지털화, 디지털화한 ‘인간성’의 문제가 실현 될수 도 있고 안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미래는 모르는 일이다.!
중요한 건 이런 시도들이 있다는 자체다.
호모사피엔스가 지금껏 해온일들이 그랬듯이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이 미친 듯이 달려왔기 때문이다. !
잊고 있었는데 상기하자면 지금 이 20장의 제목은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이다.
한마디로 과학연구는 모종의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제휴했을 때만 번성할 수 있다. p 389
과학과 제국과 자본 사이의 되먹임 고리는 논쟁의 여지는 있을지언정 아마 지난 5백년 역사의 가장 주요한 엔진이었을 것이다. p 389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인종주의가 차지하던 자리는 이제 ‘문화주의’가 차지했다는 것을 말이다. p 428
은행을 살아남게 하고 꽃피게 만드는 것은 미래에 대한 우리의 신뢰다. p 434
생산에 따른 이윤은 생산 증대에 재투자해야 한다. 는 아이디어는 근대 이전에는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다. p 443
천연자원이 엇더라도 평화를 유지하며 , 사법제도 공정하고 자유정부를 가진 나라는 신용을 높게 받을 가능성이 크다 p 463
모든 정치적 편견에서 자유로운 시장같은 것은 원래 없는 법이다. p 465
며칠동안 정신없이 사피엔스를 읽어오면서 달려온 길 이제 끝에 도착했따.
저자의 후기 “신이 된 동물”은 이런 내게 지금껏 배배 꼬았던 저자의 진심을 단 두장에 깔끔히 정리해준다.
사피엔스라는 종의 역사를 7만년전까지 올려 버린다.
그 긴 세월 동안 사피엔스는 지구를 정복하고 종의 삶의 조건들을 개선시키긴 했지만 지구 환경에나 다른 생물종에나 엄청난 해악을 끼쳐왔다고 한다.
물론 사피엔스 각 개체의 복지가 특별히 나아진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이보다 더욱나쁜 것은 인류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무책임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친구라고는 물리법칙밖에 없는 상태로 스스로를 신으로 만들면서 아무에게도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의 친구인 동물들과 주위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든다. 오로지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움 이외에는 추구하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p588
비로로 나는 이 책 처음에 가졌던 두 번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
이 책은 확실히 자기계발서는 아니다 ㅎ
녹색세계사와 같은 반열에 오를 만하다고 인정하리라
지구별의 무법자 우리 사피엔스의 결말이 결코 낙관적이지는 않다는 전망.
새겨들어야 한다!
먼 훗날( 가까이 올수도 있다 ) A.I 에게 구원의 손길이 되어준 그 시커먼 유선체의 신인류가 우리의 흔적을 찾아 우리가 매머드 사체때그러했듯 시베리아 얼음벌판을 뒤져댈 날이 오기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