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돈덕전 ftr 기념비전과 청계천
서울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
(서울 高宗 御極 四十年 稱慶紀念碑)
Monument for the 40th Anniversary of King Gojong's Enthronement, Seoul
지난 번 이상호 그림 전시회 다녀온 길에 스쳐 지나간 '기념비전'
이번엔 덕수궁 목적길이었음에도 근처 맛집에 일행을 소개시켜주려고 다시 만났다.
그 맛집의 상호를 몰라 여기 지나쳐 갔던 기억을 더듬어 가다보니 ^^;;;"
'기념비전'은 기념비를 보호하기 위한 전각이다.
비석은 귀부, 비몸, 이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몸 앞면에는 황태자인 순종의 글씨가 있으며,
비문은 윤용선이 짓고 민병석이 썼다.
비를 보호하기 위한 건물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정자(停子)형 건물로 건물 기단 둘레에 돌난간을 설치하였다.
이 건물의 남쪽에 설치한 문은 돌기둥을 세우고 철문을 달았는데,
문의 가운데칸에는 무지개 모양의 돌을 얹어 ‘만세문’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다.
이 문은 일제시대 일본인이 떼어 가서 대문으로 사용하던 것을 광복 이후 찾아와 복원한 것이다.
(출처 : 국가 문화유산 포털)
이게 그 안에 든 기념비다.
나는 이렇게 자세한 사진을 건질 수 없어서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사진 갖고 왔다.
고종 임금 재위 40주년과 춘추 50수를 기념해 만들었다고 한다.
황태자의 글씨, 윤용선의 글과 민병석의 글씨라.
황제를 위한 글과 글씨라면 당대 얼마나 대단한 문장가이자 서예가였을꼬
사진을 똑바로 못찍어 미안하다 ㅠ
일행이 빨리가자 다그쳐서 각을 제대로 못잡았다.
그래도 이케 사진으로 보니 대단히 화려한 문이다.
그러니 일본놈이 이걸 뜯어다가 지네 집 대문으로 썼다고 한다.
해방후 찾아와 다시 갖다 붙였다고 한다
희한한 조합의 문 디자인이다.
아치형 대리석(?) 문틀에 보조문 기둥과 철제 문장식은 딱 서양식이다.
그런데 기둥 위와 아치 끝단에 자리잡은 조선왕조의 상징 해치
그리고 대리석 기둥과 정문 문틀 안에 꼼꼼히 들어찬 문양.
넘넘 예쁘다
나는 사실 이 태극문양이 신기해서 주목한거다.
찍고나서 보니 철제 문도 참 아름답다.
더 넓게 찍을 걸!
암튼!
이 태극문紋은 이태극도 아니고 삼태극도 아니고...뭐라 하는지?
색이 두가지니까 이태극이라고 해야 하나?
이걸 갖다가 자기 집 문앞에 박아놓은 그 일본노무 쉐끼 생각할 수록 분하네
이 안에 그 비석이 이렇게 담겨 있었다
계속 해서 가는 길에 내 발걸음을 잡아 채는 것들
일대 재개발 공사 과정에서 발굴된 조선시대 유적 현장일부가 통유리로 덮여 보존되어있다.......
그리고 다시 한블록 더 건너 드디어 도착한 메밀국수집
30분 이상 대기하다.
난 처음 와서 먹었던 그때처럼 냉모밀을 시켰는데 일행은 비빔을 시켰다.
이 집은 냉모밀이 예술이고 기본이다.
기다리는 중에 이 통로 양쪽을 가로막고 있는 홍살문이 눈에 띄었다.
나와서 가게 가는 통로를 다시 사진 찍어두었는데 그 이름 '피맛골'이라고 한다.
피맛골에 대한 내 기억은 정말 가물가물하다.
번화한 종로거리 한 귀퉁이 빽빽한 골목에 들어서면 골목 양쪽 촘촘히 들어선 식당가.
그때 거기서 뭘 먹었더라? 곱창 먹으러 갔었나?
지금도 인사동 6번출구길을 나서 거기 식당가를 거닐면 피맛골과 느낌이 비슷하다.
그러니까 여기가 청진 2,3지구 재개발로 사라진 그 옛날 피맛골이었구나!
얼핏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피맛골 재개발을 하려고 땅을 팠는데 조선시대 생황유적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더라고.
그때가 불도저 귀신 이명박이 서울시장 하던 때라
이 '돈안나가고 공사기간 잡아먹는 ' 유적발굴에
서울시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역사학계의 우려를 샀다던 그런 기사 말이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49996
관련기사다
우리 역사가 이렇듯 안아픈데가 없다 ㅠ
이제 다시는 이 골목 가기 싫어졌다 ㅠㅠ
점심 먹고 난 뒤 청계천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 다리는 청계천 두 다리중 첫번째 모전교.
광통교는 못 딛어봤다.
뭐 평소에 많이 밟아봤겠지.
순리를 거스르는 건 정말 어리석다.
청계천은 70년대에 진즉에 말라붙어버렸었다.
청계천의 원 물줄기가 중랑천인데 중랑천에서 청계천까지 다다르지 못하고 경로 곳곳이 끊어진 이유이다.
기본적으로 인구 폭발도 있었고 난개발도이유였고.
그러니 수원이 마른 개울에 수돗물을 퍼부으며 이런 공원을 만들 이유가 굳이 있었을까 씁쓸하다.
이 일대를 덮었던 무수한 군소 자영업자들도 어찌보면 시대가 자연 소개疏開시켜 주었을 걸
그 난리를 치고 쫓아내고 언론플레이하고
이케 보면 도시의 청정기능을 하는 것으로써의 가치도 너무 가성비가 없다.
이렇게 무자비한 고층빌딩 사이에 달랑 개천 두블럭의 물줄기로 ?
저 광화문 대로 맞은편에 덕수궁이 있다.
가서 보니 덕수궁 인근 조경에 더 신경쓰면 어떨까 싶다.
덕수궁 내부를 건드리는 거 말고 주위 돌담길이던가 덕수궁까지 가는길에 가로수를 더 많이 심는다던가.
암튼
맘이 아프다.
이런 곳은..
이제 다시는 여기도 좋은 시간 보내자고 오지 못하겄다.
그리고 여기 덕수궁 정문 앞이다.
감개가 무량하다.
서울 5대 정궁중 경희궁만 빼고 올해 4개 궁궐을 다 와본거다!
대한문!
신설 대한제국의 번영을 기리며 지은 이름 '대한'문!
광화문앞 확장과 번영으로 수차례 이전을 거듭해야 했던 서러운 문.
운명처럼 동쪽으로 났음에도 불구하고 왕궁의 정문으로 쓰임받다!
이게 다 1902년 건립당시 건축양식으로 지은 지붕이다.
처마부터 겹쳐마다!
그사이 촘촘한 서까래와 이를 장식한 화려한 단청
다포 양식의 공포에 익공들을 또한 화려하게 수놓은 문양.
그 색감의 현란함과 촘촘함이 궁궐 건물의 장엄함을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건물 들어서기전에 수문장이 지키고 섰는 정문 부터 이렇게 사람 혼을 쏙 빼다니 ♠
그리고 문을 들어서자 만나는 작은 교각과 그 아래 수로.
여기 이 다리에 대한 특볋한 이름은 없다.
하마비가 근처에 있다고 한다.
원래 이 동쪽 출입구가 정문은 아니었다고 하니
별 의미가 없는게 맞을 거다
수로는 말랐지만 다리 오른쪽으로 연못이 있다.
그 연못위엔 수련(?)이 빼곡하다
거기 드리운 햇살이 참으로 화사하고 밝다
덕수궁을 보려면 이 전경도가 필요하다.
왼쪽 가운데 널다란 박석을 깐 마당을 낀 정전 중화전과 그리로 들어가는 입구 중화문을 통해
들어가면 최상의 코스였을 걸
나는 뭐가 그리 급했는니 거기까지 가지 못하고 하마비 앞 다리를 바로 건너 오른쪽 광명문으로 들어갔다.
다리를 건너면 너른 마당이 나오고 이렇게 화려한 팔작지붕을 이고 통기둥 시원한 광명문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어서 들어오라고!
그러니 정전입구 중화문까지 못가고 내가 방향을 틀 밖에 ㅎㅎㅎ
광명문을 들어서면 이렇게 너른 행각이 쫘아아아아악~~~~
그리고 함녕전.
경복국엔 강녕전
고종이 여기서 승하했다고 한다.
사람이 하도 많아서 사람 없는 사진 건지기가 힘들었다 ;;;
그래도 날이 너무 좋아 이 똥손으로 건진 사진임에도 그저 황홀하다
자세히 못봐 아쉽다
여긴 그 옆에 덕홍전.
일종의 친목과 연회 장소로 쓰인 전각
단청과 겹쳐마와 그 사이 공포는 주심포같은데(맞나? 눈이 침침...나중에 자세히 가서 봐야지 )
워낙에 서까래며 창방 평방 할 것 없이 화려한 문양에 눈이 돌아간다 ㄷㄷㄷㄷ
덕홍전은 저 내림마루아래 면을 덮은 촘촘한 무늬도 인상깊다.
정말 구속구석 화려함의 극치다!
덕홍전을 끼고 뒤로 올라갔다
궁궐 소나무는 이렇듯 하늘로 일자로 쭉 뻗은 게 아니라
굽이굽이 휘고 늘어져서 또다른 운치를 자아낸다.
덕홍전 뒤편에 아마 원수부인가보다
그저 내 눈엔 월대를 깔고 앉아 쉬는 사람들 전경이 눈에 띄었다.
아직은 햇볕이 따가웠는지 곳곳에 처마 아래 그늘로 피해 보인듯 보이는 사람들
그 이름 정관헌!
스타일과 재질 모든 것에서 서양과 조선의 조화로운 만남.
구석구석 넘 예쁘고 우아하다.
고종 임금이 여기서 커피마시는 걸 그렇게 좋아했다더라고 ㅎ
나도 그랬을 거 같다 ㅎ
그리하여 나온 영화가 '가비'였다 ㅎ
흥행은 모르겠다
나도 안봤다 ㅎ
정관헌에서 왼쪽으로 틀어 이 문을 통과하면
중화전 뒤뜰
중화전 뒤뜰길은 그대로 덕수궁 북면 담장을 타고 석조전 돈덕전으로 계속 이어진다.
말그대로 뒤란길이다.
거기 한적하고 그늘진 숲길을 걷는 맛이 또 예술이었다
석어당
즉조당
그리고 준명당
여기는 모두 정전 중화전 뒷편으로 펼쳐진 공간인데
오늘의 목적지 돈덕전 찾아가는 길이 바빠 중화전은 들러볼 생각조차 못했다 ㅠ
그리고 석조전
여기가 덕수궁에서 제일 큰 건물일 것이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두 임금이 살았던 시대에 지어진
고대 그리스 파르테논을 떠올리게 하는 유럽풍 양식의 거대한 석조건물
드디어 도착한 오늘의 내 목적지
그 이름 돈덕전!
아직 구글링을 해도 지도에 돈덕전이 표기된 곳이 없다.
그만큼 핫하고 또 핫한 곳!
서양식 복도인데 창문의 색은 온통 옥색이다.
일제 강점기 1930년대 어드메쯤에 화제로 무너졌는지 , 다 뜯겨 묻혀버린 건지
그 몰락의 기록이 확실하지도 않은 이 건물을 어떻게 복원해낼 수 있었을까?
수원 화성을 복원시킨 의궤같은게 여기도 있었을까?
1층은 이렇듯 건물 구조와 색감 감상이면 그만일듯.
그 외는 주로 사진과 홀로그램 , 동영상 등으로 볼거리를 잔뜩 마련해 놓았다.
이 화장대와 거울 셋트가 두 개 있었는데
사진 찍기 힘들었다 ㅎ
사람이 하도 많아서 ;;;
2층 올라가는 계단 아래 또 중간 통로문이다.
2층은 도서관으로 꾸며져 있다.
여기도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구석만 겨우 건졌다.
원래는 이 곳을 황제의 침실로 썼다고 한다.
창가에 책상을 놓고 앉아 눈앞에 펼쳐진 청명한 하늘과 푸른 나무 그리고 그 위에 깃들어 노닐 새들을
바라보는 황실의 사람들 기분이 어떠하였으려나 ㅎㅎㅎㅎ
이게 1층에 있었나? 2층에 있었나?
임튼
당시 구한말 대한제국 역사와 관련한 주요 인사들 사진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냥 사진이 아니라 gif 영상이다 ㅎ
박정양이란 분의 움직임을 포착하기가 힘들었다
미묘한 입꼬리 움직임이다 ㅎ
돈덕전 프로그램의 극치는 여기 도서관에서 상영되는 영화
위 두개는 알고보니 영화 가베장면이었다.
난 또 구미호뎐인줄 알았다 ㅎ
그리고 세번째 영화는 뭔지 모르겠다.
70년대 방화일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선 구한말 당시 황실 관료들의 의상과 대한제국군 군복을 알수 있다.
그리고 박희순의 고종황제는 역시나 커피를 계속 마셔댄다 ㅎ
30분 남짓 머물렀나?
넘 아쉬운 시간이다.
덕수궁은 정말 오래 오래 머물며 누리고 볼 곳이다.
아름답고 정갈한 우리의 고궁
구석구석마다 서린 아픈 역사만큼이나
오늘날 우리 후손들에게 선물하는 조상님의 미적 센스의 향기가 놀랍다.
그리고 점심먹은지 두시간도 안되었는데 굳이 또 치즈케익과 아포가토라니 ㅎ
덕수궁 돈덕전 관림기
창덕궁의 미니 버전이랄까
궁궐의 정갈함과 운치가 딱 그랬다.
작으니까 하루에 구석구석 실컷 돌아다닐 수 있을 것도 같다.
한편으로는 동서양 콜라보 버전인거지.
정관헌 , 오늘 보고 온 돈덕전.
여기말고 석조전과 중명전도 있다.
석조전은 예약 안하면 입장조차 안되더라 ㅠ
이 가을이 가기전에 덕수궁 다시 가고 싶다.
꼭 기회가 허락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