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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요즘책방 02 징비록. 유성룡

혜성처럼 2021. 4. 5. 17:09


징비록
임진왜란 발발 전부터 정유재란 종료까지 임금 선조의 최측근으로 당시 난세의 중심에서
모든 것을 기록한 역사서.
그래서 주제도, 소재도 모두 전쟁이다.
서프펜스, 스릴, 스펙타클 이 모든게 없을래야 없을 수 없다!
저자 유성룡은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꼼꼼하면서도 절도있게 기록했다.
이에 대한 번역도 매끄럽고 지적인 느낌 가득하다.
때문에 몰입하기 어렵지 않아 술술 읽어나가면 그만인데
나는 손에 땀이 나고 숨이 막힐 듯해서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어려웠다.

한국의 역사 중에 특히 조선은 사료가 많아서
(우리 조상님들은 정말 기록의 민족이시다 ~♡♡♡)
진득허니 앉아서 들여다보면 그 어떤 드라마보다 스펙타클하고 서스펜스 충만한 거 내 진즉에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원서’를 통해서도 그 감동과 리얼함이 생생할 줄이야!!
조선왕조 500년 동안 왕과 왕실의 수많은 종친들 , 그들과 엮였던 숱한 사족들과 그 언저리에서 역시 이들 지배층과 충돌하여 흔적을 남긴 기생, 노비, 중인들.
뭐 하나를 파고 파도 다 드라마틱하여, 영화와 드라마는 끊임없이 생산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읽는 내내
‘재밌어 재밌어, 영화보다 재밌어, 이러니 드라마를 왜 봐’
이런 감탄사가 계속 나왔다.

징비록이라는 이 리얼사극.
주인공은 유성룡인데 진짜 주인공은 조선이고 유성룡은 셜록 옆의 왓슨이라고 볼수도 있지만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아가사 크리스티 작) 의 화자가 연상되기도 한다.
저자는 겸손하게 자신의 활약을 가리고있지만 그는 전란중에 왕을 의주까지 호위하기도 하지만 경상도 진주나 울산에도 등장하며 말그대로 전천후의 활약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활약으로인해 선조나 명나라 원군의 장수들 그리고 조선 조정내 무수한 관료과 일반 백성들이 그를 의지하는 모습들을 볼수 있다.
때문에 임진왜란 당시 유성룡의 활약이 없었다면 조선과 왜 그리고 명을 상대하는 외교전과 국난 전시 행정에 조선이 얼마나 더욱 비참한 수렁에 빠졌을까 아차하는 거다.
고로 유성룡은 숨겨진 진주인공 맞다.
다만 이순신이나 그 외 비극적인 의병장들과는 직접 만남은 없었지만 유성룡은 이들의 전기적인 기록을 감동적으로 기록하여 주요 등장인물로 등장시킬 수 있었다.

그 외 조연들이 엄청 많이 등장하고 엑스트라는 이루 말할 수 없지.
그중에는 신스틸러 급의 단역들이 상당하다.
번역자는 기록이 남은 양반들의 생몰과 각종 신상과 이후 활약들을 주석을 달아 페이지 하단에 설명해준다.

나는 선조가 의주까지 몽진을 한 상태에서 남해에서의 이순신의 승전보가 뒤늦게 전해져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한줄기 빛같은 낭보와 더불어 이후 조선이 명 원군과 더불어 전열을 가다듬과 전세를 만회하려는 순간에 책을 접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이제 임진왜란 시작한지 한달도 안되어서 앞으로도 수많은 사건과 인물들을 만나게 되겠지만 지금 징비록을 읽고 있는 이 순간에는 선조시대 , 당파분열이 시작되었다던 당시의 어수선한 지배층의 모습 보다는 선조든, 조정관료들이건 유성룡이건 그들도 결국 전란 앞에 그저 연약한 인간일 수 밖에 없음을 볼 수 있었다.
여기 나온 조정신하들이 어떤 당파에 있었는진 알수 없지만 난세를 만나 그들의 타고난 성정과 신념을 무기삼아 각자의 능력과 기지를 발휘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을 받는 중이다.
한편은 지금까지의 역사서 속에서 위인 혹은 간신으로 평가받았던 이들의 실체를 볼수도 있었다.
우선 신립. 그간엔 탄금대의 비극으로만 알려진 충신으로 알았는데 당시 상황을 세세하게 보니 악의는 없었다 할지라도 무능한 것 또한 엄연한 범죄임을 알겠다.
자신이 무능한 줄 알았으면 인정하여 다른 사람의 지혜를 모을 줄 아는 겸손이 없는 그 교만함은 엄연한 유죄다!
그러나 이 교만의 죄로부터 자유로울 인간이 누가 있을까?
그리고 김성일. 그간 당파싸움 때문에 일본 정세보고를 그릇되게 보고한 역사의 죄인이었지만 그는 사실 누구보다 일본을 경계하고 임금에게 충성하던 고지식한 유자였다!

 

 참 정성스럽게 잘 만들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한문 원문의 번역이 참 매끈해서 읽는 데 막힘이 없다.
다소 낯선 어휘들이 많은데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에서 그 번역체를 읽다보면 이게 다 당시의 전문용어들이려니 하고 이해할 수 있다 .

그리고 삽화자료들이 많다.
대부분 옛날 사가들이 그린 그림자료들을 고대로 실었다.
물론 인물들 사진이나 역사유적지 혹은 유물 사진도 있지만.

무엇보다 칭찬하고 싶은 건
역자의 꼼꼼한 주석이다.
여기엔 대부분 인물 정보가 담겼는데 덕분에 진도가 더디긴 했다.
누굴 만나고 어떤 연락이 왔다더라 본문은 간단한데 주석에 설명이 엄청 길다 ㅎ
특히 이순신의 일대기를
주석에서도 보고 유성룡 저자를 통해서도 본다 ㅎ

그리고 매 장마다 징비록 원문(죄다 한문이다 ㄷㄷㄷ)이 실려있다 .
징비록 한권으로는 임진왜란 전쟁사를 전부 알수없지만
당시 조정의 분위기와
조선정부의 지배계층 혹은 각 지역 양반계급이 전란을 헤쳐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조선을 생각하면 사대주의 , 당파싸움, 세도정치를 떠올리며 그저 대한민국 이전의 흑역사로만 치부하는 시각들이 있는데
이는 대한민국 뿐 아니라 나 자신을 부정하는 아조 비생산적인 태도라고 본다.

특히 조선의 사대주의 .
임진왜란을 보면 바로 이 사대주의가 나라를 구했다!
징비록은 임진년에 왜란이 발발하기 이전부터 수상쩍은 왜의 움직임을 두고 내부의견 왕왕한 정세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는 명나라도 이미 파악하고 있었기에 조선이 아무말 안하고 있으니 오히려 조선이 왜와 내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공공연해 있던 차다.
그때 친조선 관료가 조선의 사대가 진실하다며 조선을 두둔했다.이걸 보고 또 어떤 이는
그래! 조선이 그렇게 뇌를 내어놓고 명나라를 섬겼다고 트집을 잡겠지.
아니다!
세종의 사대정책만 보아도 아니꼬운건 아니꼬와도 절대 책잡힐 일은 하지 않았던 왕.
기왕 사대하기로 한것,성실히 수행하면서 그저 만사에 조심 또 조심했던 것이 조선의 정책이었다.
여기 징비록선 언급되진 않았지만 훗날 청을 건국한 당시의 여진족 추장 누르하치가 조선에 원군을 제의한 것도 거절하고 오직 명나라에만 집중 의지한 것은
명이 조선 땅에 군사를 들여놓고는 이 땅을 탐내어 분탕질을 하진 않으리라고
그간의 외교적 성과에 대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조선이 명을 대하는 원칙은 개별 인간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하는 당시 지배계급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명이 대국이라해서 자신들이 소국인 것은 아니라고 얕잡아보이긴 싫었던 자존심의 발로 아니었을까?
여기 징비록에서 대표적으로 이순신이 명나라 제독 진린을 상대한 방법이다.
그 표독하고 안하무인이었던 진린조차 이순신이 양보하고 배려하는 모습에 감동하며 오히려 이순신을 어려워하고 존경하였다고 하니..
이순신은 순간의 자존심을 포기하고
더큰 평판을 얻은 것이다 .
사대주의라 하여 관념적 허상을 쫓은 것이 아니라
당시 국제정세속에 외부적으로는 실리를 챙기고 내부적으로는 유자로서의 명예를 지키려는 조선 유자들의 고지식함의 다른 이름이아닐까 한다
그렇게 사대주의의또다른 면을 통해서 조선 지배계급의모습을 보았다면
또 한편으론 그래도 배운 식자로써 백성을 인도하고 나라를 구하는 책임감을 보인 곳곳의 수많은 양반들의 모습이다.
비록 패전했어도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도 의기를 놓지않아 적장까지 감동시킨 동래부사 송상현 뿐 아니라 은둔해있던 낙향거사들이 의병을 일으켰다가 난리가 종식되자 다시 출사를 마다하고 향촌에 머문 사람.
결국 전란을 맞아서는 지배계층이나 일반 민중이나 비겁한 모습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함에도 지배계층 곧 엘리트들의 책임과 죄가 더 크다는 것을 알겠다.당시 하3도 수령조차 도망가고 제식구 보전하느라 바빴지만 그 와중에도 상부의 명령이 있으면 (불복종하는 일도 많았지만) 나름 그명령에 따라 그제서야 부랴부랴 일을 꾸려가는 모습들 .수령이라는 자들도 이런더 하물려 '어리석은' 백성들은 오죽했을까
그러나 백성들도 지방 양반이 의병을 일으키거나
유성룡처럼 중앙조정에서 관원이 파견되어 나라의 행정력이 서는 모습을 볼라치면 금새 거기에 의탁하며 모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리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만일 내가 그런 전란을 만난 경상도 수령이었다면
그냥 정신줄이 나갔을 것이다 .
나같은 자는 결코 수많은 백성들의 생사고락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으면 큰일난다 ㅎ



징비록을 읽고 있으면
당시 파발꾼들 혹은 보발꾼들의 엄청난 활약상을 본다
곳곳에 소식이 끊긴 지역도 많이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지역에선 중앙과 지역간 소통이 원활했음을 보여준다.
중앙의 왕 선조는 도처에서 전해오는 모든 소식들의 집결지가 된다.
왕은 현지 장수들의 전투 개시 하나하나 윤허해야 한다.
영화 명량의 그 유명한 대사
'신에게는 아직 배 열두척이 있사옵니다'
이 말도 다 이순신이 그 정신없는 정유재란 와중에 한양 선조에게 전투개시 승락을 요청하며 올린 상소문이다.

조선이 이렇듯 왕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촘촘한 행정력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조선의 관료체계가 그만큼 체계적으로 잘 짜인 덕이리라!
조선왕조가 500년간
반정과 사화가 그렇게 많았음에도 왕정 자체가 되바뀌는 혁명은 없었던 것이
이 고지식한 충신들이 사회 곳곳에 잡초처럼 뿌리 박힌 덕 아니었을까?
어쩌면 일본만 아니었다면 우린 오늘날까지도 왕 혹은 황제를 모시고 살았지 않을까?
유자들의 고지식함은 유전이 되어서
오늘날 우리 민족이 전통하면 꼼박 죽게되었거등
김치, 한복, 장, 한글 등등
이거 다 '반만년 유구한' 그런거 아니고
다 조선시대 500년짜리 전통이다.
그걸 마치 우리 민족의 유전자 코드인것마냥 숭배하고 있는 후손들.
그러니 영국의 엘리자베스만큼이 우리의 Sir.LEE도 숭앙하는 문화 안생기고 배겼을까

헬조선 헬조선 하는데 이 징비록 당시 최고의관료가 그 어려운 한문으로 쓴 우리의 보물이다.
그리스 로마문화는 노예들에게 험한일 시켜놓고 한가했던 엘리트들이 이뤄낸 업적들이다.
지배계층은 여러모도 책임막중한 존재들이다.
그들이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한건 욕먹어 마땅하지만
그들과 함께했던 역사도 우리 역사다 .
그들의 세계 없이 우리 역사의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

징비록은 그래서 난세를 만난 우리에게 깨우침을 줄 뿐 아니라
일생을 사는 데 있어 한 인간이 주체성을 잃지 말아야 할것을 가르쳐주는 도덕교과서이기도 하다.

이런 책을 읽은 나 , 장하다 ^^